
풀케 베르나도트 , 비스보리백작
스웨덴 왕족(부모의 귀천상혼으로 계승권 없이 백작작위만 받음)
화이트 버스라고 불리는 작전을 수행하여 하인리히 힘러와 접촉해 독일군 수용소에 있는 북유럽 국적의 3만 1천명의 사람들을 협상을 통해 구출해 낸다. 그 가운데에는 450명의 유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건국선언으로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격화되자 유엔에서는 폴케 백작을 중재 대사로 파견한다. 홀로코스트 당시의 기억이 남아있던 이스라엘에서는 당연히 폴케 백작을 친이스라엘 인사로 보고 자국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해줄 것이라 기대해 유엔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폴케 백작은 친이스라엘 인사가 아닌 인권주의자였다. 그가 많은 유대인들을 나치의 추적으로부터 보호한 것도 그가 인권파였기 때문이지, 친유대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고 유엔에 이스라엘에 불리한 보고를 하게 되고, 이에 이스라엘에서는 배신자라며 앙심을 품는다.
예루살렘에거 UN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에 시오니즘 극단주의 무장 단체 레히의 습격을 받아 암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57호가 통과되는 등 외교적 파장이 발생하였고, 스웨덴이 이스라엘의 UN 가입을 반대하게 만드는 등 외교관계를 장기간 냉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 유대인을 구해냈던 그의 행적 때문에 그를 친이스라엘 인사로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게 폴케가 팔레스타인을 돕자 레히를 몰래 후원해 폴케를 제거했다는 의혹이 존재한다.
훗날 이스라엘의 수상이 되는 골다 메이어는 폴케가 암살당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변명했다. 폴케 베르나도테 암살 사건 때문에 스웨덴 왕실에서는 국왕을 포함해서 이스라엘을 매우 안 좋게 보며, 팔레스타인 지지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