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내 수학여행 비용이 60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뉴스에 올라온 이후
여기 게시판에서도 많이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들 키우는 입장에서 부담이 되는 가격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업계 현황을 어렴풋이나마 아는 사람으로서 이번 논란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댓글들을 살펴봐도
"국내여행이 60만원이라니 학교가 너무하는 거 아니냐"는 말씀들을 많이들 하십니다.
오른 물가 이야기도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수학여행비가 이렇게 오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차량: 합승 버스에서 프리미엄 전용차로
30대 이상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관광버스 한 대에 40명 넘게 꽉꽉 채워 타고, 맨 뒷자리 5인석에 비좁게 앉아서도 노래 부르며 가던 낭만 말입니다.
지금 그런 식으로 운영했다가는 바로 민원 폭탄 맞습니다.
- 반을 쪼개서 다른 반 버스에 합승시키면: "왜 우리 애 반만 나눠서 재미없게 보내냐"
- 담임이 안 타는 버스가 생기면: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 거냐"
- 옆자리에 멀미하는 애가 앉으면: "우리 애가 냄새 때문에 여행 망쳤다"
낡은 차 타다 사고 나면 큰일나니까, 버스 회사의 정비 기록과 타이어 교체 일정까지 학교에서 확인해야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매일 매일 기사 음주측정은 당연한 이야기고요.
그래서 지금은
- 한 반에 무조건 버스 1대 (합승 불가)
- 좌석 여유 있게 배치 (꽉 채우기 금지)
- 연식 짧은 최고급 프리미엄 버스만 대절
- 정비 기록까지 철저 확인
학생수는 적어졌지만 버스 대수는 더 늘어나고, 단가는 배 이상으로 뛸 수밖에 없습니다.
5월 단체여행 최성수기에, 최근 유가 인상까지 생각하면 우리가 깜짝놀란 그 가격이 지금 업계에선 평균적인 가격 맞습니다.
* 식사: 단체급식에서 호텔 조식+프랜차이즈 뷔페로
예전에는 식판에 김치찌개에 제육볶음 나와도 그냥 맛있게 먹었습니다. 싫으면 옆 친구 줬고요.
지금은 메뉴 하나 정하는 게 지뢰밭이랍니다.
- "우리 애는 매운 거 아예 못 먹어요."
- "돼지고기 안 먹는 아이라서 먹을게 하나도 없었대요."
- "왜 우리 아이한테 순대 먹였어요. 우리 교회에서는 동물 피 들어간 음식 먹으면 안돼요 "
- "아토피라서 특정 재료 빼달라고요"
지역 맛집 섭외하면? "교사가 그 집에서 뒷돈 받았냐"는 의심까지 받는답니다.
결국 학교의 선택은
- 아침 : 호텔 조식 -> 아이들이 골라서 먹도록 하겠습니다.
- 점심·저녁 : 애슐리, 쿠우쿠우 같은 프랜차이즈 뷔페 -> 전국체인이라 그래도 민원 덜옴
식비는 단체급식 대비 3-4배 폭증하는 거죠.
* 숙박: 연수원 다인실에서 3-4성급 호텔 소인실로
수학여행 하면 연수원에서 10명 20명이 한 방 쓰면서 베개싸움하고 밤새 떠들던 그 추억, 그게 수학여행의 진짜 묘미 아니었나요?
지금은 베개싸움 = 학교폭력입니다.
베개에 맞은 애 부모가 "우리 애가 집단폭행 당했다"며 학폭 신고하는 세상입니다.
- 요즘 코로나 세대는 단체활동 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
- 여럿이 재우면 "한숨도 못 잤다", "코 고는 애 때문에 여행 망쳤다" 민원 폭주
- 여럿이 놀다가 술 마시거나 밤새 게임하면 "교사가 감독 안하고 뭐 했냐" 민원
- 그렇다고 가방 검사하면 "학생 인권 침해" 신고
그리고 방 배정도 지옥인게... 방 명단 나오면 바로 민원 러시 들어옵니다.
- "왜 우리 애만 친한 친구랑 떨어뜨렸냐"
- "어색한 애랑 같은 방이라 스트레스받는다"
- "○○이랑 방 바꿔달라"
교사는 인간관계 최적화 알고리즘을 돌려서
너무 친하지도(작당 모의로 사고 유발), 너무 어색하지도 않은(재미없었다 어색했다 민원 유발) 절묘한 조합을 찾아야 합니다.
그 결과 요즘은 대개 3성급 이상 호텔 2-4인실이 기본으로 숙소가 결정됩니다.
숙소 안좋았다 불편했다 민원나왔던 학교에서는 4성급 2인실로 조식 포함하면
성수기엔 1박에 10만원 이상도 가능한 가격입니다.
* 안전 : 이게 진짜 핵심 문제입니다
앞의 것들은 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안전 문제는 학교 존립이 걸린 문제입니다.
안전사고 = 교사 형사처벌 가능성 때문에 사실 아예 수학여행 포기하는 학교가 대다수인 추세입니다.
올해도 수학여행 추진했던 학교들은 이런 부담 감수하고도, 학생들 추억 만들어주겠다고 사명감 가지고 추진하는 학교였을텐데.. 이번 논란 이후에는 이런 학교도 사라지게 될 것 같아 안타깝네요.
- 담임 혼자 30-40명 통제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반에 1-2명씩 전문 교육을 받은 안전요원을 유급 고용
- 안타까운 일이지만 얼마 전 체험활동 중 대열에서 뒤처진 학생 교통사고 사망 사고 이후 이동시엔 대열 앞에 1명, 뒤에 1명 안전요원이나 교사가 배치하여 행렬을 지도합니다.
- 그리고 밤에 이성 친구 방 가서 밤새 술파티 하려는 학생들이 있는 경우 추후 밝혀지면 엄청난 민원이 되고, 만에 하나 성추행 등 사고라도 나면 끝장입니다. 그래서 안전요원들이 밤새 보초를 서며 복도에서 방 밖으로 나오는지, 창밖으로 탈출하는지 (이거 의외로 많아서 학교는 베란다 없는 숙소를 선호한다고 하더군요.) 감시한답니다.
마음 아팠던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체험학습 사고가 터질 때 마다 안전 비용은 날로 증가했고,
이 모든 주간, 야간 안전요원 인건비가 수학여행 비용에 고스란히 포함됩니다.
예전이 쌌던 이유?
모든 불편함과 리스크를 학생과 교사가 그냥 감내했고,
학부모도 단체생활이니까 그러려니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불편함 하나하나에 전부 가격표가 붙었습니다.
수학여행이 비싸진 게 아니라,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ㅊㅊㅂㅂㄷ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