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막다 전사한 고 김오랑 중령에게 무공훈장을 주는 절차에 착수했다.
31일 국무회의에서 2014년 김 중령에게 추서된 보국훈장 삼일장 수훈이 우선 취소 의결됐다. 이는 김 중령에게 무공훈장을 새로 수여하기 위해서다. 보국훈장은 전투 이외 공적을, 무공훈장은 전투 중 세운 공적을 대상으로 하는 훈장이다. 김 중령은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던 반란군에 맞서 총격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국방부는 “고인에게 무공훈장 추서를 검토하였으나, 상훈법상 ‘중복 수여의 금지’에 따라 동일한 공적에 대해 훈장을 거듭 수여할 수 없는 법적 제약이 있다”며 “기존 보국훈장을 취소하고 무공훈장을 재추서하는 방안을 행정안전부와 협의하여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국가안보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쳐 소임을 다한 고 김오랑 중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공적에 부합하는 최고의 예우를 다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1979년 12월13일 새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특전사) 2층 사령관실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제3공수여단 부대원 10여명이 들이닥쳤다. 반란군들은 군사반란을 진압하려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고 했다. 특전사 사령부엔 원래 전투 병력이 많지 않은데다, 특전사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유사시 특전사령관을 지켜야할 3공수가 반란군에 가담하는 바람에, 정병주 사령관은 고립무원이었다.
이날 새벽 정병주 사령관 곁에 남은 건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이 유일했다. 김 소령은 당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사령관실 문을 안에서 걸어잠근 채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반란군의 엠(M)16 소총에 난사 당해 숨졌다. 정 특전사령관도 엠16 소총에 왼팔을 맞았다.
당시 35살이었던 김 소령은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고 군사반란에 맞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 1980년 육군참모총장 명의로 김 중령을 ‘순직자’로 통보했고 반란 우두머리 전두환이 대통령에서 퇴임한 이후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다. 2014년에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국방부는 2022년 11월 김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이는 2022년 9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가 김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재심사할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요청한 뒤 이뤄졌다.
군 인사법을 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이다. 위원회는 김 중령이 반란군에 대항하다 사망한 사실이 명백하므로 전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1997년 대법원이 12·12 사건을 군사반란이라고 확정 판결한 지 약 25년이 지났지만 당시 국방부는 김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은 김 중령이 군사반란 세력에게 피살됐음을 확인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사망 전후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기재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기존 군 기록에서는 “출동한 계엄군에게 대항하다가 김오랑 소령이 먼저 사격하자 계엄군이 응사하는 상호 총격전이 벌어져 계엄군이 발사한 엠16 소총에 맞아 현장 사살”됐다고 적혀 있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한 결과, 반란군이 김 중령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고 총기를 난사하며 난입하자 김 중령이 권총을 쏘며 대항하다가 숨졌다는 선후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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