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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자 지구 폭격 이후 이스라엘로부터 예루살렘상을 수여받고 쓴 글.txt

무명의 더쿠 | 18:35 | 조회 수 2697


벽과 알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한 사람의 소설가로서 이곳 예루살렘 시를 방문했습니다. 달리 말해, 능숙하게 거짓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이곳에 왔다는 뜻입니다.


 물론 소설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 아시겠지만, 정치가도 곧잘 합니다. 외교관이나 군인도 거짓말을 합니다. 중고차 판매원도 정육점 주인도 건축업자도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소설가의 거짓말이 그들이 하는 거짓말과 다른 점은 거짓말을 해도 도의적으로 비난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거짓이 크면 클수록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소설가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듣고 호평을 받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소설가는 뛰어난 거짓말을 함으로써, 현실에 가까운 허구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실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끌어내고 그곳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을 꾀어내 허구가 있는 곳으로 옮겨놓고, 허구의 형태로 치환하여 진실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으려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안에 진실의 소재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이 뛰어난 거짓말을 하기 위한 주요한 자격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거짓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최대한 정직하고자 합니다. 나도 일 년에 며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오늘이 우연하게도 그중 하루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나는 이스라엘에 와서 예루살렘상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수상을 거절하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혹시 간다면 책 불매운동을 시작하겠다는 경고까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최근에 가자 지구에서 있었던 격렬한 전투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봉쇄된 도시 안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제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이 어린아이와 노인 같은 비무장 시민입니다.




 나는 수상 통지를 받고서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에 가 문학상을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 행위일까, 분쟁의 한쪽 당사자인, 그것도 압도적으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국가를 지지하고, 사람들에게 그 방침을 시인하는 인상을 심어주는 행동이 아닐까 하고. 물론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전쟁도 인정하지 않으며 어떠한 국가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물론 내 책이 서점에서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전혀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심사숙고 끝에 나는 결국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소설가가 그렇듯, 나는 일종의 ‘심술쟁이’인지도 모릅니다. “거기 가지마” “그거 하지 마”라고 하면, 특히 그렇게 경고를 받으면,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어지는 게 소설가의 본성입니다. 소설가란 사람들은 제아무리 역풍이 불어 닥쳐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본 것만 진심으로 믿는 종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기에 왔습니다. 오지 않는 것보다 오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외면하기보다 무엇이든 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침묵하기보다는 여러분에게 뭔가 말을 건네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내가 소설을 쓸 때 늘 마음속에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종이에 써서 벽에 붙여놓지는 않았습니다만 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벽이 옳고 알이 그르더라도, 그래도 나는 알의 편에 설 것입니다. 옳고 그름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한 일입니다. 혹은 시간이나 역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혹시라도 소설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벽 쪽에 서서 작품을 썼다면, 과연 그 작가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요?


 


 자 그럼, 이 은유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떤 경우에는 단순명쾌합니다. 폭격기, 전차, 로켓탄, 백린탄, 기관총은 높고 단단한 벽입니다. 그것들에 짓눌리고 불타고 총상을 입는 비무장 시민은 알입니다. 그것이 이 은유의 한 가지 해석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 하나의 알이라고. 더없이 소중한 하나의 영혼과 그것을 감싸는 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알이라고.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높고 단단한 벽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벽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시스템’입니다. 본래 그 시스템은 우리를 보호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저 혼자 작동하여 우리를 죽이고,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살해하게 만듭니다. 냉혹하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를 요약하자면 단 한 가지입니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여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자,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역할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쓰고, 사랑의 이야기를 쓰고, 사람을 울리고 두려움에 떨게 하고 웃게 만들어 개개인의 영혼이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함을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설가의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진지하게 허구를 만들어나갑니다.


 


 작년 여름 내 아버지는 아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퇴직 교사였고, 간간이 스님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대학원 재학중에 징병되어 중국 대륙의 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매일 아침을 먹기 전 불단 앞에 앉아 오랫동안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느냐고. 아버지는 “전장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고. 아버지가 기도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거기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떠다니는 듯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그 기억도—그것이 어떤 기억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는 채로—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감돌았던 죽음의 기척은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몇 안 되는, 그러나 매우 소중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국적과 인종과 종교를 넘어서서 우리는 모두 개개의 인간입니다. 시스템이라는 굳세고 단단한 벽을 앞에 둔, 하나하나의 알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벽은 너무나 높고 단단하며, 또한 냉혹합니다. 혹시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이길 가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그리고 서로의 영혼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는 걸 믿고, 그 온기를 한데 모으는 데서 생겨날 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실감할 수 있는 살아 숨쉬는 영혼이 있습니다. 시스템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이용하게 놔둬선 안 됩니다. 시스템이 홀로 작동하게 놔둬선 안 됩니다. 시스템이 우리를 만든 게 아닙니다. 우리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그것뿐입니다.


 예루살렘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책을 읽어주는 분들이 세계 여러 곳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무언가를—매우 의미 있는 무언가를 공유했기를 희망합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2009년 2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2011),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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