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카 단종엔 피눈물도 없었지만…런던서 찾은 세조의 ‘부성애’

세종대왕(1397~1450)에겐 말년 사랑했던 두 손자가 있었다. 하지만 스무살도 넘기기 전에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사촌 형제였던 둘은 잇따라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이였다. 4대 세종과 5대 문종의 적장자로 훗날 6대 임금 단종이 되는 이홍위(1441~1457)와, 세종의 차남으로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빼앗은 세조(1417~1468)가 즉위 직후 의경세자로 책봉한 맏아들 이장(1438~1457)의 비극적 인연이다.
책봉된 지 2년 만에 건강이 나빠져 시름시름 앓던 의경세자는 직접 간병한 부왕 세조의 정성에도 1457년(세조 3년) 9월 세상을 떠났다. 한달여 뒤 세조는 영월에 유배된 조카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는 참극을 저질렀다. 왕위를 이을 자신의 후계자가 갑자기 죽었는데, 여전히 왕권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조카는 살아 있는 상황을 세조와 측근들은 용인할 수 없었다. 더욱이 세자의 병사 직전 사육신과 금성대군 등 왕족들이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된 터였다. 세조는 조카를 잔혹하게 제거하고 주검을 방치하게 하는 패륜을 저지르면서도 한편으론 불심에 기대어 죽은 세자를 더욱 지극정성으로 추모하는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였다.
실록과 불교사 문헌 등에는 세조가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후 대장경을 비롯한 다수의 불교경전과 문헌을 인쇄하고 펴내어 배포하는 대규모 불사를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최근 그 불사들 중 일부 자취가 영국 런던에서 확인됐다.
권력을 찬탈한 뒤 악몽에 시달리고 세자가 횡사하는 등 마음고생을 겪은 세조는 즉위 기간 내내 불사를 적극 지원했는데, 이런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희귀한 사료가 발견된 셈이다.
(...)
발문을 보면, 세자가 1457년 7월 발병하자, 세조는 신임하던 고관 8명을 시약제신(약을 바치며 간병하는 신하) 삼아 종친들과 간병하게 했다. 온갖 정성에도 9월2일 세자는 죽음을 맞았고, 선친 세종의 유언을 준행해 동궁의 명복을 비는 대규모 불사를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불사는 ‘화엄경’을 비롯한 대장경 서적과 불교문헌의 간행과 배포로 요약된다. 이때 ‘번역명의집’ 100건을 인쇄했는데, 그중 하나가 영국도서관 소장본으로 추정된다.
(...)
한겨레 노형석 기자
기사 전문: https://naver.me/54Ktcn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