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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노조위원장 출신 셰프가 시골 한옥서 만든 돈가스

무명의 더쿠 | 11:08 | 조회 수 5699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792536?sid=103

 

전북 진안 레스토랑 ‘모래재너머’
특급호텔서 일하던 조철 셰프
11년간 노동운동 하다가 해고
장수군 육십령휴게소 운영하다
진안 식당서 ‘편안한 맛’ 선사

조철 셰프의 명성을 높인 ‘사과소스 돈가스’. 박미향 선임기자

조철 셰프의 명성을 높인 ‘사과소스 돈가스’. 박미향 선임기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설레기 마련이다. 어떤 맛일까. 화려한 접시에 휘몰아치는 우주의 감성을 담은 맛일까. 최고급 식재료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한입만 먹어도 감탄사가 폭죽 터지듯 하게 하는 맛일까.

지난달 23일 전주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전북 진안으로 향했다. 이곳엔 레스토랑 ‘모래재너머’(전북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141-1)가 있다. 진안의 대표 관광 명소인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나면 나타난다. 나무로 짠 소담한 문짝이 정겨운 모래재너머의 주인은 조철(66) 셰프다. 그는 아내 김성숙(64)씨와 딸 예슬(35)씨, 사위 김현수(38)씨와 함께 레스토랑 ‘모래재너머’와 농가민박 공간 ‘셰프의 정원’을 운영한다. 모래재너머는 진안 대표 관광지 마이산 인근에 있지 않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인적이 드문 데였다. 손님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모래재너머를 열기 전에 그는 ‘휴게소 셰프’로 불렸다. 2010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진안에 귀농한 그는 2013년부터 5년간 장수군의 공개입찰에서 낙찰받은 육십령휴게소를 운영했다.
 

2013년부터 5년간 운영했던 육십령휴게소 시절의 조철 셰프(왼쪽)와 그의 아내 김성숙씨. 박미향 선임기자

2013년부터 5년간 운영했던 육십령휴게소 시절의 조철 셰프(왼쪽)와 그의 아내 김성숙씨. 박미향 선임기자

조철 셰프(맨 왼쪽)와 그의 딸 예슬씨(왼쪽 둘째), 사위 김현수씨(왼쪽 셋째), 아내 김성숙씨. 조씨 가족이 레스토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미향 선임기자

조철 셰프(맨 왼쪽)와 그의 딸 예슬씨(왼쪽 둘째), 사위 김현수씨(왼쪽 셋째), 아내 김성숙씨. 조씨 가족이 레스토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미향 선임기자
육십령휴게소는 전북 장수군 장계면 700m 고갯마루에 있는 쉼터다. 조씨의 제2의 고향 진안 인근이다. 겨울이면 쌓이는 눈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는 휴게소다. 옛날엔 길이 험하고 도적이 들끓어 장정 60명이 모여 넘었다고 해서 ‘육십령’이라 이름 붙여진 데다. 이런 곳에서 그가 차린 밥상은 나물이나 국밥 등 한식이 아니었다. 파스타, 돈가스 등이 메뉴였다. 그 맛이 소문이 났다. ‘미쉐린 가이드’ 별 3개 레스토랑처럼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도 그럴 만한 게 그는 본래 서울 특급호텔 요리사였다. 대학에서 프랑스 음식을 전공한 그는 졸업하기도 전에 용산 미8군 내 ‘멤버스 클럽’에서 일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여러 서울 특급호텔에서 일하며 그저 평범한 호텔 셰프로 인생을 이어가려 했던 그는 뜻밖의 선택을 한다.

1991년 그는 근무하던 호텔의 노조위원장이 됐다. 1997년엔 호텔 노조들이 연대해 결성한 민주노총 산하 민주관광연맹의 연맹위원장도 맡았다. 2000년엔 특급호텔 최초 연대파업도 이끌었다. 비정규직의 정규화 등이 요구사항이었다. 수배령이 떨어지고 6~7개월간 명동성당에 피신해 있다가 자진 출두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해고됐다. 요리사로서 본능이 결국 그를 다시 주방으로 이끌었다. 그는 11년간 투신한 노동운동을 접고 7~8년간 서울 여러 레스토랑의 요리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곧 자본과 수익이 우선인 외식 시장에 회의를 느꼈다. 그는 연고도 없는 진안으로 향했다. 조씨의 고향은 경남 사천이다.

“전형적인 농가 주택인데 따뜻한 느낌의 집이죠.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 자리에 삶의 보따리를 다시 풀게 된 이유를 그가 설명했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언젠가 지역 관광지 역할을 하겠다 생각했고, 그러면 그냥 자고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겠구나 했죠. 예상이 맞았네요.” 온화한 그의 표정에 자신이 지켜온 삶의 태도가 배어 있었다.
 

레스토랑과 농가민박 집이 함께 있는 조철 셰프 공간의 들머리. 박미향 선임기자

레스토랑과 농가민박 집이 함께 있는 조철 셰프 공간의 들머리. 박미향 선임기자

도톰한 ‘모래재너머’ 함박스테이크. 박미향 선임기자

도톰한 ‘모래재너머’ 함박스테이크. 박미향 선임기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철 셰프표 커리’. 독특한 향미와 맛이 일품이다. 박미향 선임기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철 셰프표 커리’. 독특한 향미와 맛이 일품이다. 박미향 선임기자
‘모래재너머’ 밥상의 대표 메뉴는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야채커리다. 육십령휴게소에서도 인기 만점이었던 돈가스다. 에스엔에스에 ‘역대급 돈가스’란 평이 올랐다. 고기 두 덩이가 사이좋게 포개진 돈가스. 자를수록 흰 눈 밟는 소리가 들린다. 사각사각! 제대로 튀겨진 돈가스에서만 나는 소리다. 조 셰프는 본래 소스의 달인이다. 돈가스 소스 역시 ‘역대급’이다. 건강한 단맛의 진수를 보여준다. “육십령휴게소 때와 같은 사과소스인데, 홍삼청이 조금 들어갑니다. 설탕은 넣지 않아요. 진안이 홍삼이 유명한데 홍삼청에 이미 설탕이 조금 들어가 있잖아요.” 직접 만든 사과주스와 양파도 소스 재료다. 고원지대인 진안은 질 좋은 채소가 생산되는 곳이다. 조리 과정에 얇게 자른 사과가 들어간다. 사과를 통째로 갈지 않는다는 얘기다. 단순한 과정 같지만 그만의 감이 발휘되어 탄생한 소스다. 요리사들이 추구하는 ‘맛의 조화’가 탁월하다. “간장도 조금 넣어요. 간장의 감칠맛을 활용하는 거죠.” 함박스테이크는 육십령휴게소 때와 달라졌다. 공기 틈이 적당히 있어 부드러운 듯 쫀득한 맛이다. “그때(육십령휴게소)는 수비드(저온에서 장기간 익히는 조리법) 했는데, 어르신들은 좋아했지만 젊은 층은 아쉬워했죠.” 이곳으로 와 탄생한 새 맛은 ‘야채커리’다. “본래 채식하는 분을 위해 만든 메뉴인데,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브로콜리, 호박, 연근, 당근 등 잘 익힌 진안 채소들이 커리 소스와 밥 사이에 놓여 있다. 매콤한 듯한데 달고, 단 듯한데 짭조름하다. 혀에 닿을수록 더 찾게 하는 신묘한 재주를 부린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철 셰프표 커리’다.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한국식 커리가 있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조씨의 모든 맛이 ‘극강의 편안함’을 선사한다. 맛의 최고봉은 ‘편안함’이다.
 

질 좋은 진안 채소로 만든 샐러드. 박미향 선임기자

질 좋은 진안 채소로 만든 샐러드. 박미향 선임기자

‘모래재너머’에선 제철 과일로 셔벗을 낸다. 박미향 선임기자

‘모래재너머’에선 제철 과일로 셔벗을 낸다. 박미향 선임기자
“장인어른은 타고나신 거 같아요. 따라 똑같이 하는데도 맛이 달라요. 아직 배울 게 너무 많습니다.” 그의 솜씨를 이을 사위 김현수씨가 말했다. 조씨의 아내 성숙씨는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예슬·현수씨 부부는 본래 서울에서 살았다. 현수씨는 서울의 탄탄한 회사에서 영업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이 이곳으로 내려오게 된 건 지난해 성숙씨에게 닥친 유방암 판정 때문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수술이 잘되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예슬씨는 지금도 심장이 덜컥한다. 30대 부부는 뜻하지 않은 일로 내려왔지만 시골 생활이 좋았다. 치열하지 않아서 좋았고, 두 아이가 다닐 만한 근사한 혁신학교도 근처에 있어 마음에 들었다. 공부보다 놀이에 더 집중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주는” 초등학교였다. “아버지가 어깨가 안 좋아지셔서 요리를 잘 못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돈가스는 다른 데는 없는 돈가스라서 사라질까 걱정되었어요.” 예슬씨가 진안행을 결심하게 된 다른 이유다. “아버님의 음식이 사장되지 않고 누군가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현수씨의 말이다. 현수씨도 천생 요리사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접시가 비워져 오면 기뻤다. 장인의 훈련은 혹독했다. “자상하신 장인어른이 주방에서는 진짜 무섭습니다. 3개월 넘게 양파 까고 무 썰었죠. 쓸 데는 없는데도 계속 썰었죠.” 제대로 정리된 레시피도 없었다. “아버님은 감을 익히라고 하세요.” 예슬씨는 샐러드 담당이다.
 

레스토랑 ‘모래재너머’ 실내. 아늑한 한옥이 입맛을 돋운다. 박미향 선임기자

레스토랑 ‘모래재너머’ 실내. 아늑한 한옥이 입맛을 돋운다. 박미향 선임기자
(중략)

성숙씨는 발병 후 식단이 바뀌었다. 의사가 알려준 채소 위주의 밥상이다. “예전에 밥 위주로 먹었다면, 이젠 밥은 제일 나중에 후식으로 먹는 식입니다. 채소 먼저 먹고 그다음에 단백질 먹으면 포만감이 커지죠. 그다음에 잡곡밥 먹어요.” 한가지 깨달은 것도 있다. “이런 식사를 우리가 평소에, 건강할 때도 먹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신만의 치유 먹거리도 귀띔해줬다. “매일 두유를 먹어요. 쥐눈이콩을 두유 제조기에 넣고 갈죠. 정말 좋아요. 머리카락 나는 데도 좋고, 든든하고, 머리도 맑아지고. 내가 직접 체험하고 좋으니 맨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해요.”
 

농가민박 집 ‘셰프의 정원’의 외관. ‘건축탐구 집’(EBS)에도 소개됐다. 박미향 선임기자

농가민박 집 ‘셰프의 정원’의 외관. ‘건축탐구 집’(EBS)에도 소개됐다. 박미향 선임기자

농가민박 집 ‘셰프의 정원’의 실내 풍경. ‘건축탐구 집’(EBS)에도 소개됐다. 박미향 선임기자

농가민박 집 ‘셰프의 정원’의 실내 풍경. ‘건축탐구 집’(EBS)에도 소개됐다. 박미향 선임기자
이들 가족의 농가민박 공간 ‘셰프의 정원’은 레스토랑 옆에 있다. 60년도 넘은 낡은 도자기 공방을 개조해 만들었다. 성숙씨는 “옛날 집 그대로 살리고 따뜻하고 불편하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시골다움’이 있어야 한다”는 게 조씨의 생각이었다. 새소리도 소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공간이다. 달리기만 하다 지친 이들의 쉼터로 제격이다. 한국인만 찾지 않는다. 싱가포르, 튀르키예, 체코 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도 있었다. 글로벌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 덕분이다. 1인당 15만원이다. 코스 5개가 나오는 저녁 식사와 간단한 아침 식사가 포함된다. 조씨는 지역 제철 식재료로 식단을 짰다. 4명 한팀만 예약으로 받는다. 20명 좌석을 보유한 모래재너머도 완전 예약제다. 한옥 운치가 넘치는 레스토랑이다. 조씨의 이 공간들은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건축탐구 집’(EBS)에도 등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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