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5알 먹고 뛰어요"… 여성 선수 '생리' 얘기는 아직도 '금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여자 피겨 국가대표 선수 앰버 글렌이 용기 있는 고백으로 스포츠계에서 '금기'로 여겨지던 여성 선수들의 월경권 문제를 공론화했다. 월경은 여성이 매달 겪는 지극히 당연한 신체 현상이지만, 남성의 몸을 기본값으로 설계된 스포츠 시스템 속에서 여성 선수들은 오랫동안 침묵해야만 했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앞두고 한국일보가 만난 전·현직 여성 선수들도 월경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충, 경기력 저하, 생리혈 비침에 대한 불안 등을 호소하며, 스포츠계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026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대한민국 국가대표 정민영(26·오타와 래피드 FC) 선수는 5일 서면 인터뷰에서 "생리통이 심한 편이지만 매번 아픔을 참고 경기를 뛰었다"며 과거 경험을 들려줬다. 2021년 추계대학여자축구연맹전 때 일이었다. 중요 경기가 있는 날 하필 월경이 시작됐다. 진통제를 두 알이나 먹고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세 알을 더 먹고 기어이 그라운드로 나갔다. 정 선수는 "경기를 마치고 나니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며 "다시는 이런 식으로 대처하지 않겠다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 선수가 무리하게 약을 복용한 건, 월경이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한 18년 경력 한 트레이너(42)는 "여자 100m 허들에서 평소 13초대를 기록하던 선수가 13초5 가까이 기록이 떨어지기도 한다"며 "기술 종목 역시 평소 능숙했던 동작을 실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운동복이 얇아 생리혈 비침에 대한 불안도 크다.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수영 금메달리스트 출신 조희연(43) 선수는 "물속에선 수압으로 생리혈이 새지 않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생리혈이 새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걱정한다"고 말했다. 또 "출발대에 섰을 때 뒤쪽 심판이 남자이면 더욱 신경 쓰인다"며 "때론 중계 카메라도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월경을 "남사스러운 일" "감춰야 할 일"로 치부하는 왜곡된 시선들도 여성 선수들을 옭아맨다. 조 선수는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생리 중에도 수영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알고 싶지 않다" "더럽다" 등 혐오 섞인 댓글 세례를 받았다.
여성 선수 비율이 증가하는데도 여전히 남성을 표준으로 삼는 스포츠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주희 국민대 아시아올림픽대학원 주임교수는 "생리는 여성 선수의 건강과 인권, 존엄과 연결된 문제"라며 "선수들이 이를 민망한 일이나 예민한 문제로 치부하며 숨기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대안으로는 △심리 프로그램에 월경 포함 △스포츠 의학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 △유니폼 색상 선택권 확대 등을 주문했다.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김준형 기자 (junbro@hankookilbo.com)
전문 https://naver.me/5bCbjb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