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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인터뷰] 과감하게 상상하되, 지켜야 할 선을 지키다 – <왕과 사는 남자> 감독 장항준 (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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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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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1년의 시간을 들여 각색 과정을 거쳤다고. 어떤 방향을 중요하게 여겼나.

각색하며 달라진 점은 단종 이홍위에 대한 묘사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 일병 한명을 구하기 위해 1개 소대가 피를 흘리지 않나. 그때 누군가가 말한다. “제발 라이언이 우리가 목숨을 걸 만큼 좋은 애였으면 좋겠다”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단종이 단지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많은 이가 그의 복위를 준비하다 희생될 만큼 가치를 지닌 사람이길 바랐다. 그래서 좀더 강인하고 백성을 위해 고뇌하는 매혹적인 인물로 표현했다. 금성대군(이준혁)이 이홍위에게 복위 운동의 중심에 서달라고 서찰을 보내는 장면, 한명회(유지태)가 금성대군의 속내를 눈치채고 엄흥도에게 밀고하라 고하고 엄흥도가 생존과 우정 중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 등 후반부의 서사가 주로 추가됐다.



- 금성대군을 등장시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 정치는 탐욕에 기반해 서로 먹고 먹히는 일이 자행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희생된 자가 이홍위고 희생된 정의를 다시 복구시키려 노력하는 자가 금성대군이다. 역사를 알면서도 금성대군에게 기대를 걸고 그를 응원하게 되는 건 그가 우리가 항상 꿈꿔온 힘을 지닌 정의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힘을 지닌 정의이기 때문에 내겐 무척 중요했다.



- 단종이 무척 담대한 성품을 지닌 자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단종이 나약하다는 기록은 단 한줄도 없다. 총명하고 결단력이 있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신료들로 하여금 조선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조선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른, 경복궁에서 태어난 적통 중의 적통이기도 하다. 자기 편에 섰던 사람들이 참변을 당하는 걸 목격하고 무기력해졌던 그는 영월에서 처음으로 백성들을 마주한다. 그때 비로소 백성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깨닫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홍위가 영월에서 성장한 만큼 그를 지켜보던 엄흥도도 변한다. 연민을 느끼던 소년을 어느 순간 진짜 왕으로 보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 엄흥도에 관한 사료가 많지 않아 여러 가설을 세워야 했겠다.

단종의 시신을 건져내 아들 셋과 같이 장사를 치르고 숨어 살았다는 게 실상 거의 전부다. 그러다 <연려실기술>에서 단종이 그를 모시던 통인(하급 관리, 심부름꾼)에 의해 교살됐다는 설을 발견했다. 만약 이 통인과 마지막에 시신을 수습한 이가 같은 사람이면 어떨까. 게다가 단종과 통인의 우정이 한층 깊어진 이후라면. 그 아이러니함이 극을 더 풍부하게 만들 것 같아 설정을 추가했다.



- 한명회와 단종이 면 대 면으로 대적하는 장면이 반복된다. 첫 대면은 초반부 주눅 든 단종에게 한명회가 찾아오는 신이다.

단종은 왕이지만 작아 보이고, 한명회는 신하임에도 공간을 압도한다. 한명회가 수그린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다. 한명회는 무서운 교장 선생님이 신입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단종을 똑바로 내려다본다. 아마 그 순간엔 한명회가 세조의 마음으로 단종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유지태 배우에게도 예를 갖추지 않은 듯 행동해달라고 했다. 반면 단종은 수그린 채 눈도 잘 못 마주친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느냐”고 물을 때만 겨우 한명회를 올려다본다.



- 반면 영월에서 엄흥도의 아들 태산(김민)이 곤장을 맞을 때 그를 처벌하는 일을 두고 한명회와 이홍위가 서로 언성을 높인다.

그 신이 정말 중요해서 크랭크인 훨씬 전부터 유지태, 박지훈 배우를 불러 오랫동안 리딩을 했다. 서로 미친 듯이 공격도 하고, 톤을 눌러 보기도 하고, 호흡을 짧게 또 길게 가져가보면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유지태 배우야 워낙 베테랑이지만 20대의 박지훈 배우가 그 에너지를 받아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잘해줬다. 분노로 떨리던 입가가 지금도 생생하다. 간혹 이성적인 계산이 아닌 분노가 판을 뒤집을 동력이 되지 않나. 단종의 복위는 본래 금성대군의 뜻이었고 정작 본인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일이다. 그런데 태산이 곤장을 맞는 걸 보고 단종은 크게 분노해 왕권을 되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유유자적하며 남은 생을 보내느니 불리하더라도 자신의 정의를 실현해 보고자 한 것이다. 그걸 곁에서 목격한 엄흥도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엄흥도는 “누가 자신의 왕인지, 내가 누구의 명을 따라야 하는지 잊었다”며 한명회에게 조아리지만 속으론 ‘얼굴도 모르는 무서운 자가 아니라 저 이홍위가 내 왕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을 것이다. 되돌아가는 홍위의 얼굴숏 이후로 흥도의 표정이 잡히는데 그 얼굴엔 생존에 대한 불안감, 죄책감 등이 복잡하게 얽힌다.


- 박지훈 배우의 감정과 발성이 상당히 좋았다. 사전에 어떤 디렉션을 줬나.

배우들 중 나와 가장 많이 리딩을 한 사람이 박지훈 배우다. <약한영웅> 시리즈에서도 무척 잘했지만 거기서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터트리는 신은 거의 없었다. 이홍위는 대사도 많다보니 리딩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소화력이 좋았다. 나뿐 아니라 유해진 배우와도 아침에 현장에 나오면서 찍을 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하더라. 작품에 대한 몰입력이 좋았다.



- 엄흥도는 작품의 코미디부터 결말부의 감정까지 책임지고, 사건의 당사자이자 관찰자로서 극을 이끄는 존재다. 유해진 배우가 짊어져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 영화는 엄흥도가 무너지면 끝이다. 초반에는 웃기면서도 세속적인 면을 드러내며 친근감을 보여줘야 하고 동시에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능동적인 관찰자가 돼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요즘 이렇게 한 인물이 전부 짊어진 시나리오가 드물다. 그래서 유해진 배우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굉장히 열심히 준비해주었다. 여러 좋은 제안도 해줬다. 시신을 수습한 뒤 단종에 관한 엄흥도의 회상 신이 나오는 건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현장에서 한 분장팀 스태프가 박지훈 배우가 단종 의상을 입은 채 물놀이하는 걸 찍어 올린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유해진 배우가 울컥했다며 이 신을 추가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마지막까지 쓸 곳을 못 찾다가 마지막 편집 단계에서 제 자리를 찾았다. 과거 회상일 수도 있지만 일종의 판타지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그 천진한 소년이 차가운 시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현장에서도, 분장을 하다가도 울컥할 만큼 유해진 배우가 엄흥도 역에 깊게 녹아들었다. 감정적, 육체적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했을 텐데 잘해주어 고마운 마음이 크다.



- 단종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그의 눈 클로즈업숏으로 표현한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많이 보일수록 슬픔은 약화된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자세히 묘사하지 않으려고 했고 실제로도 영화에 보여진 정도만 촬영했다.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슬픔은 문 밖의 것이지 방 안의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었다.



- 단종의 시신을 수습할 때 카메라가 둘이 비친 수면을 바라본 것도 어쩌면 비슷한 의도였겠다. 시신을 쓰다듬는 엄흥도의 손길에 애정이 가득했다.

이홍위를 보는 엄흥도의 시선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것이지 왕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뒤에서 총부리를 겨누며 강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내 자식이 떠내려가고 있다면 가만둘 부모가 있을까. 총을 맞을 각오로 들어갈 것이다. 나와 유해진 배우 모두 그런 마음이었다. 영월에 장릉이라는 단종의 능이 있는데 근처에 엄흥도의 묘와 동상이 있다. 동상은 물속에서 단종을 꺼내는 엄흥도의 모습인데 그 눈빛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슬펐다. 그 동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원래 영화를 다르게 마무리 지으려 했다. 단종의 무덤 앞에서 태산과 흥도가 절을 하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쌀밥을 올린 뒤 태산의 과거를 보러 떠나는 장면이다. 시나리오에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찍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가장 슬픈 장면으로 끝내는 것이 이 작품에 어울렸다.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140/000005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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