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아기를 가졌어요
“저는 지금 아기를 가진 상태고 3주 후에 출산 예정입니다. 아이 아빠는 외국인이고 성직자입니다. 아기 아빠가 맨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성직 생활을 계속할 수 없으니 내려놓겠다고 말을 했어요. 그런데 한 달 전쯤에 말이 바뀌었습니다. 자기는 계속 성직자로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서 제가 한국에 있다가 놀라서 아기 배냇저고리랑 젖병 몇 개만 들고 유럽으로 급하게 온 상태입니다.
아기 아빠와 그 어머니까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같은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자신이 친부모라 할지라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다면 친자 등록을 강요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최악의 경우 저 혼자서 아기를 키워야 하는 상황인데 아빠 없이 어떻게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별일 아니에요.”
눈물을 흘리며 질문을 하던 질문자는 스님의 한 마디에 옅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스님은 왜 별일이 아닌지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어떤 여자 연예인이 결혼은 안 하고 애기만 갖고 싶어서 정자를 정자은행에서 구입하고 인공수정을 해서 아기를 낳았다는 기사를 보신 적 있지요? 그 여성은 아이 아빠가 없다고 질문자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울까요, 기뻐할까요?”
“그분은 기뻐하겠지요.”
“그분과 질문자를 비교했을 때 질문자가 불리한 게 뭐가 있어요? 질문자가 훨씬 더 유리합니다. 그분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정자를 가져와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질문자는 그래도 한 때는 좋아했던 사람과 관계를 가진 거잖아요. 짧은 순간이었다고 해도 좋아해서 만났고 그 결과 아기를 가졌잖아요. 그러나 그분은 정자은행에 가서 정자를 사기 위해 몇 천 유로를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한 푼도 내지 않았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아기를 가졌잖아요. 아기를 낳아서 질문자가 키우면 되지 왜 구질구질하게 그 남자에게 가서 매달리나요?
남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는 게 마땅하지만, 그 남자는 그렇지가 않은데 어떡합니까. 하나님께 성직을 맹세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어쨌든 그 남자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들먹이든 부처님을 들먹이든 무엇을 들먹이든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아기 때문에 결혼하자고 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남자한테 계속 매달릴 이유가 뭐 있어요?”
“아기 아빠는 프랑스인이에요. 일반적인 프랑스인이라면 ‘그래,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사제가 어떻게 생명을 그런 식으로 바라볼 수 있나요?”
“그 사람은 질문자와 만났을 때 그냥 한 남자였어요. 이제 와서 ‘신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고 분노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간에 질문자를 만났을 때는 그냥 한 남자였을 뿐이에요. 이미 아이는 생겼고, 그 남자가 함께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만, 그 남자는 책임을 안 지겠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이제 질문자가 어떻게 할 거냐를 선택해야 해요.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에 아기를 낳아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를 정해야 합니다. 자꾸 지나간 과거를 따지는 건 바보예요. 질문자가 아기를 낳아서 키우기 어려우면 아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면 됩니다. 그것도 큰 복을 짓는 일이에요. 그리고 질문자는 자기 생활을 하면 돼요.”
“그 남자가 부모님과 함께 와서 저에게 한 얘기가 황당했었어요. 아기 아빠는 아기를 키우지 않기로 선택을 했고, 아기를 키우기로 선택한 것은 저라는 얘기였습니다. 낙태를 할 수도 있었고, 아기를 입양 보낼 수도 있었지만, 저는 아기를 낙태하거나 입양 보내는 건 모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면 질문자가 아기를 키우는 것을 선택하면 되죠. 그 남자와 부모님은 자기들의 책임을 면하려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 속 보이는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삼자가 봤을 때도 결국 모든 것은 다 자기 선택입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해요.”
“하지만 아기를 낙태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고, 아기를 입양 보내는 것은 내 아기를 누군가에게 주게 되는 거잖아요.”
“아이를 왜 줘버린다고 생각을 해요? 나를 기준으로 보지 말고 아이를 기준으로 봐야 해요. 내가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 키울 수 있다면 아무리 가슴 아파도 그 아이가 잘 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이에요. 자기가 아이를 키우는 게 좋겠다면 자기가 키우면 되지 요즘 같은 세상에 못 키울 이유가 뭐가 있어요?”
“당연히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키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자가 아이를 키우세요. 프랑스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산 후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고 키우는 여성들이 꽤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이에게 아빠가 없어서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할까요?
엄마 혼자 아이를 키워도 엄마가 당당하면 아기에게 아무런 상처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남자한테 구걸을 하고 원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되니까요. 그런 자세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사제가 여자와 관계해서 아기가 생기면 사제직을 박탈당하잖아요.”
“그 남자를 원망하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걸 보니 젊은 사람이 시원하질 못하네요. 질문자가 보기에 ‘그는 사제로서 자격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바로 교구에 신고해버리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는 것도 다 자기 선택이에요. 그런데 신고로 인해 그 남자가 사제를 그만둔다고 해서 질문자와 결혼할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질문자가 신고해서 사제 자격이 박탈된 사람이 왜 질문자와 결혼을 하겠습니까.
‘이 사제가 나한테 피해를 준 건 차치하고, 또 다른 여자한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건 막아야겠다.’
이런 생각이라면 바로 신고를 해야죠. 그것은 아기 키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신고를 해야 하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 프랑스에 왔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어쨌든 아기 아빠인데 문제를 키워서 좋을 게 뭐가 있냐고 하면서 만류하더라고요. 일단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른 후에 일을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아직 신고는 안 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이야기한들 무슨 결론이 나겠어요? 내가 좋아서 그 남자를 만났고, 결국 아기가 생겼어요. 그 남자도 같이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책임을 안 지겠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해요.
첫째, 나는 나 혼자라도 낳아서 키우겠다.
둘째, 나는 생명을 해칠 수는 없으니 아이를 낳겠다. 하지만 내가 키울 형편이 안 되니까 입양을 시키는 게 좋겠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을 살겠다.
셋째, 그 남자로 인해 나와 똑같은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생길 수 있으니 예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신고를 해서 이런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 외에 눈물 흘리고 원망하고 헤매는 건 장부답지 못한 태도예요. 장부가 되세요.”
“알겠습니다.”
“자기 삶에 중심이 서야 해요. 이 일 자체는 불행이 아니에요. 질문자가 지금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불행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그 여자 연예인은 혼자서 아기를 낳아서 기뻐하면서 키웠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자기는 훨씬 더 유리하다.’
울고만 있지 말고 이 이야기를 기억하세요. 먼 훗날에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자 혼자서도 얼마든지 아기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제가 그 남자한테 ‘너는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냐?’라고 물어봤어요. 그 남자가 대답하기를, 본인은 조그만 수도원에서 사제 생활을 하고, 저랑 아기는 그 근처에서 살면, 본인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살겠다고 해요.”
“정신 좀 차리세요. 그런 말에 또 속으면 안 됩니다. 한 번 실수했으면 여기서 딱 끊어야지요. 그렇게 질질 끌려가면서 수도원 옆에 붙어서 살고 싶어요? 공개할 수도 없는 상태로 그렇게 숨어서 살려고 그래요? 질문자의 엄마가 그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혼자서도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고 살든지, 입양을 시키든지, 선택을 하세요. 그 남자와의 관계는 딱 끊으시고요. 혹시 나중에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빌면 그건 그때 결정할 일이에요. 그렇게 자기중심을 딱 잡고 살면 어떨까요?
그 남자는 잘못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인생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 기분 나쁘면 교구에 신고하면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허비하지 마세요.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과거에 자꾸 연연해서 계속 불행을 연장시키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실수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여기서 딱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서 다음 한 발을 잘 내딛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이 육십이 되어서 돌아보면 이것이 무슨 큰일이겠어요. 별일 아니에요. 그러니 조금 더 장부답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기 인생을 이렇게 낚시 밥에 물려서 허비하지 마세요. 그러면 죽을 때까지 을로 살아야 돼요. 젊을 때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 이렇게 교훈으로 삼으면 돼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이후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가 중요해요.
출산이 3주밖에 안 남았으니까 낙태는 못하잖아요. 아기를 낳아서 혼자 키워도 되고, 아기를 데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되고,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도 돼요. 다른 선택의 길도 많다는 것을 직시했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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