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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아르헨티나는 왜 가난할까…한국·일본·대만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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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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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가 가난한 이유
 
-토마스 푸에요 작가
 
 
image.png 아르헨티나는 왜 가난할까…한국·일본·대만에 답 있다

아르헨티나는 왜 가난할까. 이 답을 찾는 일은 경제학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아르헨티나의 저조한 경제 성과는 국제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주제다. 필자는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아르헨티나의 발전 과정을 한국, 일본, 대만, 중국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르헨티나와 이들 아시아 국가는 매우 유사한 정책을 펼쳤지만 결과는 극명하게 달랐다. 여기에는 몇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다. 
 
1900년경 아르헨티나는 일본보다 2배, 대만·한국·중국보다는 4배 이상 부유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 모두가 아르헨티나를 앞질렀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호랑이)'을 한국, 일본, 대만으로 한정한다. 홍콩과 싱가포르를 포함하고 일본을 제외하는 일반적인 정의와는 다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항구 기반의 금융 중심 도시국가라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인구, 문화를 관리해야 하는 대국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반면 일본의 발전 과정은 한국, 대만과 궤를 같이한다. 아르헨티나와 아시아 호랑이들의 경제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흥미를 끈다. 하지만 아시아의 성장과 아르헨티나의 정체를 가른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아시아 국가들의 행보를 먼저 살펴보고, 아르헨티나와 비교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짚어보자.
 
◇아시아 국가는 어떻게 발전했나
 
1. 농업
 
대만, 일본, 한국의 토지는 소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토지 개혁이었다. 많은 이에게 일자리가 생겼고, 자기 땅에서 땀 흘린 만큼 수확을 얻게 된 농부들 덕에 농업 생산성이 치솟았다. 농부들은 기계, 더 나은 비료와 종자에 투자했고 땅을 혹사하지 않았다. 
 
생산성 향상은 농부들의 자산 축적으로 이어졌다. 국가는 식량 자급을 이뤘다. 정부는 농부에게 세금을 걷으면서도 농산물 최저 가격 보장, 비료 및 종자 지원 등으로 보조금을 지급했다. 식량 수출은 적었지만, 엄격한 통제와 과세가 이뤄졌다. 덕분에 각국은 두터운 농민층을 형성하고 저축을 늘리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2. 산업
 
농업이 안정되자 남은 자본을 산업 발전으로 돌렸다. 핵심 산업을 선정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보호 대상인 유치 산업과 경쟁하는 외국 기업에 수입 관세를 매겼다(유치 산업 보호주의).
 
세금을 깎아줬다. 저금리 대출을 제공했다. 수입 면허를 발급해 낮은 세금으로 물자를 들여오게 했다. 결정적인 점은, 빠르게 성장하며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만 혜택을 줬다는 것이다. 도태된 기업은 자금줄을 끊고 합병이나 파산을 유도했다.
 
3. 금융
 
저금리 대출 재원은 어디서 났을까. 맘대로 돈을 굴릴 수 없었던 농민과 일반 시민의 주머니다. 이들은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할 수도, 해외로 돈을 빼돌릴 수도 없었다. 낮은 이자로 은행에 돈을 묶어둬야만 했다. 이 돈이 고스란히 기업 대출로 흘러갔다. 
 
환율은 낮게, 물가는 안정적으로 통제했다. 수출에 세금을 매기지 않아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기업들은 외화(주로 달러)를 벌어와 필요 물자를 사고 남은 달러를 현지 통화로 바꿨다.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 달러를 사들였다.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저금리 채권을 발행하고 은행이 이를 강제로 사게 해 시중 자금을 흡수했다(불태화 정책).
 
외국인 투자를 제한했다. 외국 자본이 유입되면 자국 통화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노동조합도 이에 협조하도록 압박해 인플레이션을 막았다.
 
◇아르헨티나는 어떻게 표류했나
 
1. 농업
 
아르헨티나의 지리적 조건은 축복에 가깝다. 1880~1910년 농업 호황기에 이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농지가 빠르게 늘어났다. 기계화와 이민자 유입에 힘입어 방대한 목장이 농경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여기에 아르헨티나의 원죄가 있다. 토지 소유가 여전히 극소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초기에는 지주들이 생산과 수출을 늘리려 했기에 토지 생산성에 큰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혜택을 나눌 광범위한 농민층이 없었다. 극소수 지주가 막대한 경제, 사회, 정치 권력을 독식했다.
 
짙어진 불평등은 아시아 국가에선 볼 수 없던 정치적 반발을 불렀다. 정부는 여론에 밀려 아시아보다 훨씬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농업에 세금을 매겼다.
 
아시아 국가들도 농산물 수출에 세금을 매겼지만 규모가 작았고, 그 수입 대부분을 농장에 재투자했다. 농업에서 산업으로의 부의 이전은 '은행 저축 강제 후 산업 대출'이라는 간접적 방식으로 이뤄졌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농산물 수출에 직접 과세했다. 예컨대 아르헨티나 무역진흥연구소(IAPI)는 농산물 수출을 법적으로 독점했다.
 
1950년대 정부는 모든 소고기와 곡물을 세계 시장 가격보다 60~70% 헐값에 사들였다. 이를 2차 대전 이후 수요 폭발로 치솟은 국제 가격에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1946년부터 1951년 사이 밀 수익의 44%, 옥수수 수익의 40%를 국가가 챙겼다.
 
시간이 흘러 세율은 낮아졌지만, 이 징벌적 과세는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반복됐다. 현재 대두 수출세는 약 25%, 옥수수는 약 10%다. 밀레이 정부가 외환 보유고를 늘리려 지난해 9월 농산물 수출세를 한시적으로 폐지한 것만 봐도 이 세금이 외화 확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가혹한 수출세는 아시아의 방식보다 훨씬 해롭다. 투자의 씨를 말리기 때문이다. 80 달러(10만4000원)를 들여 밀 1톤을 생산해 해외에 100 달러(13만원)에 판다고 가정해 보자. 20 달러(2만6000원)의 이익을 사업 확장에 재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가 매출의 30%를 떼어가면 70 달러(9만1000원)를 쥐게 돼 곧바로 적자 전환, 파산에 이른다. 원가가 60 달러(7만8000원)라도 마진율이 40%에서 14%로 급락해 투자를 지속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생산과 수출, 투자를 동시에 무너뜨린다.
 
2. 산업
 
한국, 일본, 대만, 산업 브랜드는 몇 개나 떠오르는가. 아르헨티나 브랜드는 어떤가. 그렇다. 아시아 국가는 성공했고 아르헨티나는 실패했다. 왜일까.
 
아시아 국가들은 저금리 대출, 감세, 수입 관세로 유치 산업을 보호했다. 아르헨티나도 비슷한 '수입 대체' 정책을 폈다. 하지만 결과를 뒤바꾼 치명적 차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농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국제 시장이 호황일 때뿐이었다. 세계 대전과 1929년 대공황으로 수요가 급감하자 원자재 가격과 국가 수입이 곤두박질쳤다. 외화가 마르니 공산품 수입도 막혔다. 국가는 살길을 모색했다.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 수입을 대체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미묘하지만 치명적인 차이가 숨어 있다. 목적이 '산업 수출 확대'가 아닌 '수입품 대체'였다. 국내 기업을 세계 무대에서 경쟁시키는 대신 외부로부터 철저히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수출 성과는 속일 수 없다.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최고라는 방증이다. 하지만 내수 시장에서의 승리는 다르다. '온실 속 화초'처럼 국가의 보호막 아래서 경쟁 없이 기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다음과 같은 카드를 꺼냈다.
 
도구는 아시아와 같았지만, 사용법이 달랐다.
 
-수출 규율
 
가장 결정적 차이다. 아르헨티나의 지원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를 조건으로 달지 않았다. 기업들은 경쟁 없이 내수 시장에 안주했다. 높은 가격을 유지하며 지대를 챙겼다. 반면 국민들은 해외에서 더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두고도 바가지요금을 감수해야 했다.
 
-규모의 경제
 
수출 기업은 전 세계라는 거대 시장을 갖는다. 초기 비용이 막대한 산업일수록 이는 필수다. 제철소를 지으려면 수백만 톤을 팔아야 본전을 뽑는다. 아르헨티나처럼 내수 시장이 비좁으면 규모의 경제는 불가능하고 비용은 치솟는다.
 
라틴 아메리카의 자동차 공장 생산비는 미국보다 60~150% 높았다. 제지 공장 292곳 중 경제성을 갖춘 곳은 단 25곳뿐이었다. 화학 산업 역시 선진국 공장 규모와 좁히기 힘든 격차를 보였다.
 
-무차별 지원
 
저금리 대출, 비용 보조, 수입 관세 인상은 모두 국민 세금이다. 국가는 신중해야 한다. 모든 산업을 살릴 순 없다. 핵심 산업을 골라 자원을 쏟아부어야 한다.
 
보통 국가 미래를 좌우할 기초 산업이 타깃이다. 일본과 한국은 자동차 등 중공업의 뼈대인 철강을 택했다. 도요타, 현대자동차는 알아도 닛폰제철이나 포스코는 모르는 이가 많은 이유다.
 
아르헨티나도 승자만 솎아내 집중 지원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정리해야 했다. 작은 회사 여러 개보다 덩치 큰 한 곳을 밀어주는 게 낫다. 초기 10개가 넘던 자동차 회사를 합병으로 키웠어야 했다.
 
과도한 다각화, 유휴 설비, 수입 통제에 따른 재고 더미, 자금 조달난은 중전기기 산업의 고물가를 불렀다.
 
-비교 우위
 
아르헨티나가 잘하는 것에 집중했어야 했다. 막강한 농업 경쟁력을 살려 농기계 산업을 키우는 건 어땠을까. 존 디어(John Deere) 같은 세계적 기업을 배출할 수도 있었다. 육류 가공, 철도, 조선, 야금 등 선택지는 많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전자 산업을 택했다. 전자는 마진이 박하고 규모의 경제가 필수라 아르헨티나엔 승산이 없는 게임이었다. 국민들은 질 나쁜 TV를 비싸게 샀고, 국가는 이 산업을 연명시키는 데 GDP의 1%를 쏟아부었다. 섬유나 의류도 마찬가지다. 초저임금으로 무장한 인도, 방글라데시와 무슨 수로 경쟁하겠는가.
 
-고임금
 
아시아 국가는 생산 단가를 낮추려 오랜 기간 저임금 기조를 유지했다. 노동조합도 고통 분담에 동의했다.
 
아르헨티나는 정반대였다. 농업 수출로 불평등을 뼈저리게 겪은 이들은 부의 재분배를 원했다. 산업 발전은 그저 세금을 뜯어낼 새로운 현금창구에 불과했다. 고임금, 고비용 구조가 굳어지며 경쟁력은 추락했고 글로벌 기업은 탄생하지 못했다.
 
페론 정권 시절, 기업은 근로 조건 개선, 퇴직금, 산재 보상을 강요받았다. 해고는 막혔고 노동 법원이 들어섰다. 근로 시간은 줄고 유급 휴가는 늘었다. 연말 보너스제(아기날도)와 최저임금도 도입됐다. 1943~1946년 4% 오르는 데 그쳤던 실질 임금은 페론 집권기인 1948년까지 50% 폭등했다. 에너지, 식량, 주택, 교통 보조금까지 더해져 체감 임금은 더 올랐다.
 
주택 문제를 보자. 정부가 집을 수십만 채 지었다. 허울은 좋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소수에게 집을 안겨준 꼴이다. 그 집은 누구 차지였을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갔을까. 재원은 농업 호황에 기댄 탓에 지속 불가능했다. 게다가 정부가 건설 시장의 블랙홀이 되면서 건축비가 폭등해 일반 국민은 집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건축비 자체를 낮추는 것이었다.
 
주택, 휴가, 복지는 훌륭한 목표지만 시기상조였다. 일한 만큼 버는 게 순리다. 생산성이 턱없이 낮은 발전 초기 단계에 섣불리 샴페인을 터뜨린 대가는 참혹했다. 기업은 비용을 감당 못 해 쓰러졌고, 정부는 농업에서 쥐어짠 세금으로 비생산적인 산업 노동자의 밥그릇을 챙겨야 했다.
 
-노동조합
 
임금이 생산성을 훌쩍 뛰어넘은 배경엔 노조가 있다. 합법 노동자의 40%가 가입된 노조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페론은 권력을 쥐기 전 노동부 장관으로 노조와 결탁했다. 직능대표권(Personería Gremial)을 앞세워 산업별로 단 하나의 합법 노조만 허용했고, 이들을 모두 단일 상급 단체(CGT) 산하로 모았다. 그 권력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페론은 단체 교섭권까지 쥐여줬다. 노조의 권력 집중은 정치 권력화와 부패로 곪아 터졌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고용 보호법이 가장 깐깐하다.
 
아시아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념 대립을 겪은 한국과 대만은 노조를 엄격히 통제했다. 일본은 기업별 노조 체제였다. 노조가 사측을 견제하되, 회사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겨 억지 생떼를 쓰지 않았다.
 
-농업 생산성 저하
 
비싸고 질 낮은 국산 농기계는 아르헨티나의 밥줄인 농업의 숨통을 조였다. 수입 대체 정책 탓에 우수한 외국산 기계를 들여오지 못해 생산성 혁신과 수출 확대의 기회를 날렸다.
 
-후방 통합 저항
 
아시아 국가는 철강 등 기초 산업을 다진 뒤 자동차 등 완제품으로 뻗어나가는 '수직 계열화'에 성공했다. 외국 기업의 기술 이전도 적극적으로 끌어냈다.
 
아르헨티나는 손쉬운 소비재 수입 대체에 매달렸다. 소비재를 만들려면 부품과 기계를 수입해야 한다. 이를 국산화하면 질은 떨어지고 단가는 치솟는다. 기업들은 국산 중간재 개발을 결사반대했다. 정부마저 손을 놓으면서 가치 사슬 구축은 물 건너갔다.
 
이토록 치명적인 헛발질의 연속이니 글로벌 챔피언 기업이 나올 리 만무했다.
 
3. 금융 및 재정 관리
 
실책은 금융과 재정에서도 이어졌다.
 
-상실된 토지 생산성
 
막대한 농산물 수출세는 농민의 투자의지를 꺾었다. 비료, 기계, 관개 시설에 투자할 돈이 말라붙으니 장기 생산성이 곤두박질쳤다. 아시아 국가는 세금을 거둬 농업에 다시 쏟아부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엉뚱한 곳에 돈을 썼다. 미국과의 농업 생산성 격차가 벌어진 결정적 이유다.
 
-낮은 투자 수익률
 
그 많던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가 부채를 갚고 은행, 철도를 국유화했다. 공공 사업, 에너지 인프라 투자도 벌였다.
 
부채 상환이나 에너지 인프라 확충, 중앙은행 통제는 타당하다. 하지만 은행 시스템의 전면 국유화는 최악의 악수였다. 현장의 식견은 무시됐고, 돈을 제대로 굴릴 인센티브도 사라졌다. 자본 수익률은 바닥을 쳤다.
 
페론 정권 초기, 산업 활동 자금의 절반 이상(최대 78%)을 국책 은행이 댔다. 정부에 돈이 집중되니 부패와 낭비가 판을 쳤다. 한국과 대만도 은행을 국유화했지만, 관료들이 효율적으로 자금을 배분했다. 반면 포퓰리즘에 찌든 아르헨티나는 전략 산업 대신 정치적 동지들에게 돈을 뿌렸다.
 
-외국인 직접 투자
 
아르헨티나의 철도, 금융 등 주요 인프라는 영국 자본이 깔았다. 양모 산업 붕괴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초기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다.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자금줄이 마르자 페론은 이를 '제국주의'라 비난하며 외국 자본을 쫓아냈다. 합리적 투자는 실종되고 입맛대로 돈을 주무르는 포퓰리즘만 남았다.
 
정부 지출
 
페론 이후 정부 재정은 공무원 월급, 공기업 적자 등 비생산적인 곳으로 줄줄 샜다. 2008년엔 정부가 민간 연금 수혜자의 77%에게 보조금을 퍼주는 촌극도 벌어졌다. 민간 연금의 본질마저 부정한 것이다.
 
-호황기의 과도한 지출
 
노르웨이는 석유 호황으로 번 돈을 국부펀드에 묶어두고 매년 수익금(약 3%)만 꺼내 쓴다. 유가가 폭락해도 끄떡없다.
 
아르헨티나는 반대로 갔다. 원자재 호황기마다 엄청난 흑자를 펑펑 써댔다. 1970년대 초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3년 새 공무원 수를 24%나 늘렸다. 막대한 투자가 단기간에 몰리며 물가 폭등과 효율성 저하만 낳았다.
 
-페소 과대평가
 
수출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면 자국 통화(페소) 가치가 뛴다. 수출 경쟁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달러가 시중에 풀리며 물가와 임금도 치솟는다.
 
아시아는 중앙은행이 달러를 사들여 미국 국채로 쌓아뒀다. 자국 통화 강세를 막아 수출 기업을 보호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수출세를 걷어 임금 인상, 보조금 등 현금 살포에 열을 올렸다.
 
-인플레이션
 
1970년대 중반 정부 적자는 GDP의 14%에 달했다. 세금으론 지출의 20%밖에 막지 못했다. 나머지는 돈을 찍어내거나 빚을 냈다. 초인플레이션의 서막이었다.
 
'원자재 호황 → 수출 및 세수 증가 → 정부 과소비 → 호황 종료 → 적자 폭발 → 돈 찍어내기 →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쳇바퀴 돌듯 반복됐다.
 
1980년대 후반엔 쌓인 빚과 이자 탓에 1년 만에 본원 통화를 40배나 늘려야 했고, 2010년대 키르치네르 정권 때도 판박이였다. 학습효과로 사람들은 미리 가격을 올리고 달러를 사재기했다. 화폐 가치는 휴짓조각이 됐다.
 
아시아 국가는 이런 지출 파티를 벌이지 않았다. 당장의 복지를 포기하는 대신 달러를 쟁여두고 생산성에 투자했다. 개미와 베짱이의 결말 그대로다.
 
-정부 디폴트 및 국영 기업
 
독립 이후 9번(21세기에만 3번)이나 빚잔치를 벌이며 디폴트를 선언했다. 시민의 돈을 은행에 묶어 산업에 투자하는 지렛대도 너무 일찍 꺾어버렸다.
 
국영 기업의 방만 경영도 한몫했다. 부패의 온상이자 비효율의 극치였다. 전화 개설에 10년이 걸리던 기막힌 현실은 1990년 민영화 직후 단 일주일로 단축됐다. 정부는 적자투성이 국영 철도에 지방 예산을 통째로 쏟아붓는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는 왜 가난할까
 
정리해 보자.
 
첫째, 비옥한 땅이 안겨준 부작용이다. 달러가 쏟아지며 페소화 가치가 뛰었고, 원자재 가격 변동에 국가 경제가 요동쳤다.
 
둘째, 극단적인 토지 집중이다. 재분배에 실패하며 불평등과 분노가 쌓였다. 정치권은 농산물 수출 통제와 징벌적 세금이라는 기형적 방식으로 부를 나눴다. 호황기엔 퍼주기 복지로 낭비했고, 불황기엔 국가 재정이 파탄 났다. 막대한 노동자 보상, 과잉 자금 조달, 공기업 양산이 낳은 참사였다. 초인플레이션과 디폴트는 정치·제도적 붕괴로 이어졌다.
 
셋째, 외국 자본(영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이에 따른 반발이다. 불안감에 휩싸인 아르헨티나는 극단적 보호주의와 수입 대체 정책으로 쇄국에 나섰다. 온실 속 기업들은 과도한 보조금과 고임금, 부패 속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모든 실책을 곱씹어 보면 맨주먹으로 일어선 아시아 국가들의 성취가 얼마나 위대한지 실감하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뼈저린 가난을 몰랐고, 국제 무역을 적대시했으며, 넘치는 부 속에서 불평등만 키웠다. 이것이 아르헨티나가 가난해진 경제적 논리다. 
 
 
*토마스 푸에요는 실리콘밸리 기업인이자 작가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망치와 춤'이라는 글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 지리, 기술, 경제를 넘나드는 통찰력 있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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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본
 
 

핵심 내용 요약

  • 농업: 재투자 vs 징벌적 착취 :동아시아는 철저한 토지 개혁을 통해 다수의 자영농을 육성하고 생산성을 높여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소수 지주에게 토지가 집중된 불평등 구조 속에서, 정부가 농산물 수출에 가혹한 세금을 매겨 산업화와 복지 재원으로 끌어다 쓰면서 농업의 장기적인 투자와 생산성을 파괴했습니다.

  • 산업: 수출 경쟁 vs 내수 안주 :동아시아는 국가가 산업을 보호하되, 반드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수출 경쟁력'을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삼았습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글로벌 시장 진출이 아닌 단순한 '수입 대체'를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지원 조건이 없었던 아르헨티나의 기업들은 비좁은 내수 시장에서 지대만 추구하는 '온실 속 화초'로 전락했습니다.

  • 노동 및 복지: 인내와 투자 vs 시기상조의 샴페인 : 동아시아는 초기 자본 축적을 위해 장기간 저임금 기조를 유지하고 노조를 통제하며 성장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페론 정권의 포퓰리즘과 강력한 노조의 압력에 밀려 임금 폭등, 과도한 휴가, 주택 보조금 등 막대한 비용을 기업과 국가 재정에 떠안겼습니다.

  • 재정: 절제와 효율 vs 낭비와 초인플레이션 : 동아시아는 수출로 번 외화를 비축하고 시중 자금을 통제해 핵심 산업에 효율적으로 배분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원자재 호황기마다 방만한 공공 지출과 부패로 국부를 낭비했고, 적자가 쌓이자 돈을 마구 찍어내어 만성적인 초인플레이션과 국가 부도(디폴트)의 늪에 빠졌습니다.

 

 

구분 동아시아 발전 모델 (한국, 일본, 대만) 남미 발전 모델 (아르헨티나)
농업 정책 토지 개혁을 통한 부의 분배 및 자영농 육성 극소수 지주의 토지 독점 유지
농업 자본 세금 징수 후 농산물 가격 보장 등 농업에 재투자 가혹한 수출세 부과로 농업 자본을 강제 탈취
산업화 목표 수출 주도형 산업화 (글로벌 시장 경쟁력 확보) 수입 대체 산업화 (내수 시장용 소비재 생산)
기업 지원 수출 성과를 조건으로 승자에게만 선별적, 집중적 지원 성과 조건 없는 무차별적 지원 및 과도한 보호
핵심 산업 철강 등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중화학, 기초 산업 집중 육성 비교 우위가 없는 전자, 섬유 등 소비재 산업 중구난방 육성
노동 및 임금 초기 저임금 기조 유지 및 노동조합 통제 (생산성 최우선) 생산성 증가를 초과하는 고임금 및 막강한 정치권력화된 노조
복지 정책 경제 성장 이후 점진적 도입 발전 초기 단계에 시기상조의 퍼주기식 복지 도입
금융 및 환율 자국 통화 가치 억제(수출 유리), 민간 저축을 산업 자금으로 배분 자국 통화 과대평가, 국유 은행의 방만하고 부패한 자금 운용
재정 관리 호황기 달러 비축, 엄격한 물가 관리 및 재정 절제 호황기 공공부문 비대화, 적자 시 화폐 발행으로 초인플레이션 유발

 

 

결국 산업화 초반엔 어느 정도 국가의 강압력이 동원되더라도 기초적인 자본축적과 생산과정의 질적인 도약이 꼭 필요하고 그 과정을 감내할 수 있는 건 결국 교육+여기엔 없지만 문화적 기반인 거 같아. 

동아시아의 공통점인 유교, 입신양명 위주의 사회 풍조가 이런 점에선 도움이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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