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당시 항간에서 떠도는 왕실루머들에 관한 책을 냈는데 거기 적힌 소문들 중 하나인 정조-의빈성씨 이야기
정조가 어제비문에서 묘사한 의빈성씨의 인품과는 너무 다른 뉘앙스인걸 알 수 있음
왜 이런 차이점이 발생한걸까에 대해 추론하는 글
https://x.com/i/status/2026653511916912981
https://x.com/i/status/2026655539686769150
https://x.com/i/status/2026656786980417628
https://x.com/i/status/2026658090884686007
https://x.com/i/status/2026659752319861134
https://x.com/i/status/2026661942497329178
즉, 투기가 심한걸로 유명했던 조선 정조의 후궁 화빈윤씨 측+정조의 파격대우(의빈의 아들이 2살 됐을 때 바로 세자로 책봉)를 달갑지 않게 여긴 세력들이 의빈성씨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렸었고 그게 150여년이 지난 시점까지 잔존했을 가능성이 있음
정조가 어제비문에 강조했던 "의빈은 날 2번이나 거절했음에도 내가 굳이굳이 후궁으로 삼은 것이다" "의빈은 거절할때도, 죽는 순간에도 중전과 나의 후사를 걱정해주었다" 는 내용의 목적 역시, 의빈을 향한 안 좋은 소문에서부터 의빈을 변호해주기 위한 게 크지 않겠냐는 것
어제비문 내용을 곧이곧대로 진실이라 믿기보다는 그 속에서 유독 강조하는 부문이 의도하는 바를 당시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는 방법도 필요한듯
새로운 시각이 흥미로워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