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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더 싸게, 더 많이…부메랑으로 돌아온 ‘값싼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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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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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033/0000050322?cds=news_media_pc&type=editn

 

정부 고용정책이 저임금 악순환으로 변질된 조선업계

노동자들이 경남 거제의 한 조선소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자들이 경남 거제의 한 조선소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적 조선 경기 침체로 지난 10여년 동안 굉장히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이다. 정부 역할은 기업인들을 방해하는 걸림돌과 규제를 제거하는 것.”(2022년 4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

2022년 오랜 수주 절벽에 신음하던 조선업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터졌다. 불황기에 인력이 반 토막 나, 일감이 있어도 일할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돈 받고 위험한 조선소에서 일할 사람이 없었다. 2021년 기준 제조업 노동자의 평균임금이 100이라면 조선업 임금은 99로 평균 이하였다. 기업은 노동집약적인 조선업의 인건비를 억제하고 싶었고, 정부는 이주노동력을 늘리는 게 답이라고 봤다. 문재인 정부 말기부터 조선업에서 용접공, 도장공으로 일할 외국인 기능인력(E-7 비자)의 고용 폭을 늘리기 시작하더니, 윤석열 정부에서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이 이주노동력을 더 빨리, 더 많이 들여올 수 있게 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이민 정책은 인류애를 위한 것이 아니다. 비자 정책은 평등이나 공정의 영역이 아니라 국익의 영역이다.”(2023년 7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그래서 우리는 국익을 달성했을까. 국익이 기업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은 지난 2월 9일 울산 조선업 타운홀미팅에서 “2025년 한국조선해양은 3조9000억원, HD현대중공업은 1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런데 이 막대한 이윤이 노동자의 삶과 지역경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했다. 대형 조선소 두 곳이 위치한 거제시의 변광용 시장도 “조선업 르네상스라는 표현을 하는데 기업에만 르네상스가 온 것 같다. 지역이나 노동자나 시민은 추운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다.

근시안적 정책이 남긴 여파를 살펴봤다. 경제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권이나 평등 등의 가치가 과도하게 제약될 때 시장과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따져봤다.
 

국내에서 쓸 돈이 없다


과거 조선업 호황기, 대형 조선소가 있는 울산 동구나 경남 거제시에서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월급날이면 번화가가 불야성” 같은 얘기가 심심찮게 들렸다. 조선업 경기와 지역 경기가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호황 때는 연결고리가 끊겼다. 지난해 4분기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전국 평균 13.8%. 그런데 거제시 옥포동의 공실률은 35.3%, 울산 동구 전하동은 16.7%로 평균을 웃돌았다. 울산 동구와 거제시 모두 10년 전보다 아파트 거래량은 줄었고, 전셋값은 크게 하락했다.

HD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의 소상공인협회 사무장 이선동씨는 지난 2월 9일 조선업 타운홀미팅에서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인구는 늘었지만, 소비는 지역에 남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조선소 기숙사나 합숙소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회사 식당이나 외국인 대상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지역 소상공인 상권에 소비자가 유입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했다.

본국으로 돈을 보내느라 소비 여력이 없는 이주노동력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호황기 이전에 조선업에 이주노동자가 가장 많았던 건 수주 절벽이 시작된 2015년이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이때 처음으로 조선소 내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가 이후 불황기에 1만명 선이 무너졌다. 2015년에도 전체 조선업 노동자 중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넘지 못했다. 그러다 2023년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이주노동력 도입 정책에 힘입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24년 조선업 이주노동자의 규모가 2만5000명에 육박하고, 대형 조선소에서도 이주노동자의 비중이 25~30%까지 늘었다.

지역에서 소비가 늘지 않는 이유는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일반기능인력(E-7-3 비자)’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비전문취업(E-9 비자)’ 이주노동자들과 체류자격 등이 다르다. 예컨대 후자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로 들어오는데, 선발·교육·취업 관리 등 전반이 정부에 의해 관리된다. 반면 전자(E-7-3)는 조선사들이 모인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이주노동자들의 모국에서 기량검증 등을 진행해 한국으로 보내고, 법무부가 체류자격을 심사한다. E-7-3는 민간에서 선발 등의 업무를 담당하면서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가 커졌다.

정부가 2022년부터 E-7-3의 조선업종 할당을 지속 확대한 결과, 지난해 4분기 기준 울산 동구에 등록된 E-7-3 노동자는 3600여명으로 E-9(2800명)을 넘어섰다. 거제 역시 E-7-3 노동자가 4800여명으로 4000명인 E9보다 많다. 그간 직영 노동자는 뽑지 않고 사내하청 노동자만 늘려왔던 조선 대기업들조차 E-7-3 이주노동자들을 직영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브로커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에 비해서도 생활이 쪼들릴 가능성이 크다. 모국에서부터 브로커 비용을 내기 위해 빚을 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강민형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해 6월부터 대형 조선소가 있는 울산, 거제, 전남 영암에서 진행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E-7-3 이주노동자들의 58.1%가 1000만원 이상의 브로커 비용을 지출했다고 답했다. 20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답한 이들도 13.1%나 있었다. 반면 E-9 노동자 중에서는 1000만원 이상의 브로커 비용을 냈다는 응답이 6.6%에 그쳤다. 강 교수는 “2023년 금속노조의 실태조사에서는 브로커 비용 시세가 800만~1200만원이었는데, 최근에는 1500만~2000만원으로 오른 것 같다”고 했다.
 

스리랑카 출신 조선소 용접공들의 손. 이들은 E-7-3 비자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조해람 기자

스리랑카 출신 조선소 용접공들의 손. 이들은 E-7-3 비자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조해람 기자

윤용진 금속노조 전남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브로커 비용으로 수천만원 빚지고 온 분들이 많다. 빚을 갚아야 하니까 많아야 50만원 남기고 본국으로 다 보낸다. 쓸 돈이 있어야 맛있는 것도 먹을 텐데, 편의점에서 깡소주 마신다”고 했다.

애초 월급 자체도 적다. 제도 취지를 돌이켜보면 의아하다. ‘비전문취업(E-9)’ 계통과 별도로 E-7 비자를 둔 건 기술 전문 인력을 우대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업 용접공 등은 숙련이 필요한 직종인 만큼 E-7 비자를 통해 입국한 이들을 숙련 기능인력으로 양성하고 장기적으로 국내에 거주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정부 복안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처음 내건 임금 기준도 최저임금보다 많은 국민총소득(GNI)의 80%였다. 그런데 2023년 이 기준을 GNI의 70%로 후퇴시키더니, 이듬해에는 최저임금 기준으로 바꿨다. 강민형 교수의 실태조사에서 월급이 25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은 E-7-3 비자에서 66.2%, E-9 비자에서 38.1%로 차이가 컸다. 기능인력 우대 취지와는 무관하게 현실에서의 대우는 역전된 셈이다.
 

바닥으로의 경주


문제는 저임금이 이주노동자들만의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싼값으로 대량 공급된 노동력은 조선업계 전반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강 교수는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상여금이나 휴가 관련 차이는 있지만, 내국인 하청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두 열악하다”고 했다.

2023년 외국인 기능인력의 정주를 유도하는 비자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정부는 “기업인들을 시장 외부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시장 내부의 룰이 반드시 지켜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 정책의 핵심”(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라고 했다. 그런데 노동자의 임금에 있어서만은 이 시장의 룰이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의 룰’대로면 조선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올랐어야 한다. 2022년 전남 영암 대불산단의 조선소들은 일감은 있지만, 일손이 없어 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자연히 일손 유치 경쟁이 벌어졌고, 매일 저녁 업주들은 내국인과 이주노동자 가릴 것 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 웃돈을 얹은 품삯을 제시했다.

불황기에 임금 삭감으로 7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조선소를 떠났듯, 임금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노동자가 이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장의 룰에 부합할 것이다.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이 극도로 제한됐다는 데 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E-9 이주노동자들은 3회까지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지만 휴업·폐업, 임금체불, 폭행 등 사업주에게 귀책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E-7-3 노동자들에 비하면 그나마 상황이 낫다. E-7-3의 경우는 애초 조선소에서만 일할 수 있고, 업체가 휴업·폐업한 경우에만 다른 조선소로 옮길 수 있다. E-7-3 비자를 모태로 지자체가 이주노동자를 선발·관리하는 광역형 비자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거주지역 변경에도 제한을 두고 있다.

이주노동자 중 일부는 임금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이른바 ‘불법체류자’라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E-7-3 노동자들에게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브로커 비용으로 많은 빚을 지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들은 사업장을 이탈하지 않겠다는 이탈금지 각서를 쓰고, 돈을 갚지 않으면 가족 등이 대신 갚는다는 연대보증을 하고 들어왔다.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 대표는 “이탈을 하면 상당한 비용의 벌금을 보증인이 낸다. 시작부터 끝까지 회사에 묶여 있다. 이게 강제노동이 아니면 뭐냐”고 했다.

(중략)

이주노동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는 그들의 인권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민간에 맡겨진 선발 과정은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를 키웠고, 높은 수수료 비용과 사업장 변경 제한, 저임금은 조선업 전반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시키고 지역 소비를 위축시켰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추진된 이주정책의 결과다.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9일 울산 타운홀미팅에서 “E-7-3 비자 관련해서는 이재명 정부에서 최대한 멈추려고 노력하겠다. 올해 용역을 통해 울산 동구, 거제, 영암에 이주노동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확인하고, 순차적으로 줄여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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