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재생)


왜 그런 날 있잖아. 햇살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는 날. 그런 날 있지 않니? 그 날 아침이 그랬어.


그래 그날은 참 이상했어. 그 사람을 보는데 왜 눈물이 갑자기 나는지. 뭔갈 예감 했던 걸까...


이야, 가방이 뭐가 이렇게 무거워 겨우 1박2일인데.
에이~ 그래도 명색이 해외 여행인데...
신주쿠에 발도장만 찍고 와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해?
발도장만 찍어도 해외 여행인데...
어쨌든, 영어 선생하고 가니까 든든하네. 통역 잘해~

그 즈음엔 우리 둘 다 매일이 잠 못드는 날들이었는데, 그래도 그 날은 참 설레이더라. 처음으로 둘이서만 가는 여행이었거든.


참, 친구집이 하라주쿠에 있다고 했죠? 와 거기 다음에 구경하면 재밌겠다 예쁜 펜시용품 엄청 많대.
아이고 또 다 사달라고 난리겠구만. 자기 유치한거에 환장하잖아.
맞아요. 환전 넉넉히 하는게 좋을거야, 이선생.
아파트 잠깐 들렸다 가.
왜요?
전화랑 인터넷 끊으러 온다고 해서 1시까지 오라고 했어.

여기서 기다릴래? 금방올게.

그때 왜 갑자기 올라가고 싶어졌는지. 올라가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도 한동안 했었어.

(벨소리)



여보세요.
저, 서울이죠? 여기 모스크바인데요.
예? 모스크바요?
수첩에 집이라고 써있길래 혹시나 해본건데 혹시 이민용씨 세요?
네 맞는데 누구...
아 다행이다. 저 신지 기숙사 룸메이트인데요. 어디로 연락해야할지 막막해서... 전 남편분 맞으시죠?
네 신지가 무슨 일 있습니까? ... 네?


그 친구가 우리에게 전해준 몇가지 소식이 있었지.
초청 받았다는 말도 거짓말이었고 돈도 없었고 밤마다 불면으로 힘들어했다고. 그리고 그날 밤 교통 사고가 났다는...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네...
꼭 운명처럼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선이 끊겼어.
전화국 직원이 좀만 빨리오지.
글쎄 그럼 지금쯤 어떻게 달라졌을까?

어떡해요? 가봐야죠. 보호자도 없다는데...
고비는 넘겼다잖아... 식구들 연락되면 가겠지. 늦겠다 가자.


정말 전화선이 조금만 빨리 끊어졌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미국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
전화선 이전에 그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더이상 숨길 수 없었던 어느 날 이미 그 말이 맞았어.
나한테 늘 미안해하던 사람이었어. 처음 만남도 도중의 헤어짐도 다시 만날 때도 프러포즈도... 난 그저 그 사람이 용기내서 결정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이젠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용기를 내야 할 때라는 걸 알았지.

나 목마른데 뭐 마실 것 좀 사다주면 안돼요?
목말라? 뭐?
아이스커피...


서민정씨 이민용씨 3시 40분 동경행이요.
네, 근데요...


모스크바행으로 바꿨어요. 4시 비행기니까 시간 얼마 없네. 신지한테 가봐야죠. 찾는다는데 안가면 정말 나쁜 사람이야.
미안한데 난 여기서 이선생 버리고 집으로 갈게요. 그래야 될 것 같아. 그래야 되는 거 알죠? 바람 맞혔다고 나 너무 미워하지 마요.

그 사람은 의식을 잃고 자기를 찾는 여자를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나 때문에 그래야 한다면 평생 마음으로 괴로워 했겠지. 또 그런 사람이라 내가 좋아했었고...


수속 해야할 것 같은데...
후회할걸...
후회하겠죠...
평생 후회할걸...
평생 후회하겠죠...


밤 비행기로 바꿨어. 5시간 정도 남았는데...
와 시간많다. 뭐할까요.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5시간, 이별여행으론 너무 짧은 시간이었어.











그 문으로 들어가면 마지막 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었지.


울고 있었어... 그 까칠한 남자가 눈물로 내 어깨를 다 적시도록 울고 있었어.






---
그 후 이야기


(시간이 흘러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민정)



(비 내리는 어느날, 민용은 멀리서 민정을 바라보고 감)

(서둘러 나와보지만 이미 자리를 떠난 민용)
아까 괜찮냐고 물은거였죠? 난 괜찮아요... 그러니까 잘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