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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 x 론진 보그 코리아 3월호 화보

무명의 더쿠 | 02-22 | 조회 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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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케 쇼(Miyake Sho) 감독의 <여행과 나날>(2025)을 관람한 날이 선명하다. 겨울의 극장을 나오면서 차가운 공기가 싫지 않았다. 어서 극 중 이(심은경)처럼 인생의 설원을 걸어가라고 정신을 깨우는 듯했다. 심은경은 그 장면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이자 자세 같았다”고 말했다. “대본을 처음 읽을 때부터 나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본 듯했어요. 미야케 감독님은 적정한 거리에서 이 시대의 사람들을 조명해요. 애써 가까워지려고도 외면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타인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지 이야기하죠. <여행과 나날> 역시 그런 의미에서 크게 다가왔어요.” 관객 대부분이 “내 이야기 같다”고들 한다. 자기 확신 없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이는 우리와 닮았다. 심은경 역시 극에서 “저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읊조리는 이에게 이입했다. 그렇기에 영화 곳곳에 자리한 ‘좀 서툴러도 괜찮다’는 메시지에 안도했을 거다. “평생 한번 닿기 쉽지 않은 이 작품을 30대에 만났어요. 인간으로서, 직업에서 한발 나아가게 해주었죠. 지금뿐 아니라 계속 이야기할 작품이기에, 제 삶의 시기마다 어떻게 존재할지 궁금해요.” 자기 확신이 없을 때 어찌해야 할지 묻자, 심은경은 자기 역시 그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결국은 그 시간을 안고 견뎌야 하더라고요. 20대에는 한없이 헤맸고, 30대에도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조금은 선명해지기도 해요. 앞으로도 답을 갈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고민을 안고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지를 생각하기로 했어요.”



이 작품으로 심은경은 한국 배우 최초로 ‘키네마 준보 베스트 10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19년에 창간된 영화 저널 <키네마 준보>가 영화와 연기의 예술적 성취에 주는, 일본의 중요한 영화 시상식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그녀가 ‘자기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 생경하다. 영화 <신문기자>(2019)로 일본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수상한 그녀>(2014)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어린 제가 받아서 어떡해요”라고 울먹이던 소녀가 기억난다. “지금보다 어린 데다 당시 현장에서 발표를 듣는 순간 압도되어서 많이 울었어요. 이번엔 받아들이는 온도가 조금 달랐어요. <여행과 나날>은 삶을 어떻게 사유할지 느린 속도로 그려내는 작품이죠. 그래서인지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흘러가는 삶의 일부이자 경험으로 겸허히 받아들였어요. 들뜨기보단 차분하게 열심히 하고 싶어졌어요.”



심은경은 영화, 클래식, 책 등에 깊고 넓은 취향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내보이기 위한 취향이 아니라 예술가와 작품에 기꺼운 찬사를 보내고 습득한다. 그 덕분인지 그녀와 대화하면 정제된 언어 구사, 겸손한 태도, 다양한 인용에 놀라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따라온 고민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예술을 탐미한 면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그저 연기를 위한 소양을 쌓기 위해서라고 한발 물러선다. “예술을 접하면 나를 발견하고 사유하는 자세가 길러져요. 사유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태도 같아요. 취향이라기보단 배움의 한 부분이에요.”



심은경은 오는 5월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반야 아재>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두 번째 연극 무대다. 2019년 일본에서 극작가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음악극 <Every Good Boy Deserves Favor>에서 아홉 살 소년 역을 맡았다. 여전히 연극이 두려워 망설였지만 <반야 아재>는 운명 같았다. “조광화 연출가께서 연극에 담대함은 없고, 그저 함께 찾아가는 거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인간적인 분과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고 싶었어요. 또 고등학생 때 읽은 희곡이 지금 저를 다시 찾아온 데는 운명적인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탐구하려고 두려움을 넘어서기로 했어요.” 심은경이 연기하는 소냐의 마지막 대사는 작품 전체를 압축한다.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 긴 낮과 밤을 끝까지 살아가요.” 어쩌면 <여행과 나날>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한 듯하다. 정작 자신은 이 대사를 내뱉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연기로서 이루고 싶은 이상이 있어요. 목표라기보단 그 너머의 보고 싶은 풍경이랄까요. 하지만 두려움에 회피하면서 같은 자리만 맴돌았죠.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을 기꺼이 껴안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이 작품은 지금 제게 주어진 과제 같아요.” 목표가 아닌 풍경이라니, 그곳을 그려달라고 했다. “아마 연기를 하면서 만족감은 평생 못 느낄 거예요. 연륜이 쌓이지 않아서 정확히 묘사하기 어렵지만, 나를 기다리는 어떤 풍경을 향해 직업의식을 갖고 성실히 해나가고 싶어요.” VK



https://www.instagram.com/reel/DVDfF2YCe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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