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서래마을에 유명한 프랑스 부부 영아살해 사건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의 신원을 철저히 비공개로 하였기 때문에 누구인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이들의 본국인 프랑스에서는 실명과 사진이 그대로 보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의 인터뷰까지 모자이크 없이 보도가 되었다. 이것을 보고 나는 ‘우리나라가 서양보다 프라이버시를 특별히 더 보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각종 사건과 관련하여 당사자의 실명과 신원을 공개하는데 별 거리낌이 없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판결문 공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하급심의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심지어는 대법원 판결도 일부는 비공개로 처리된다. 물론 사건번호 등을 확인해서 법원도서관에 열람신청을 하는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만 공개가 되지 않은 사건의 내역을 확인하여 열람신청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원에서 관리하는 부동산등기부는 해당 주소를 확인하여 유료로 열람을 할 수 있지만, 행정부에서는 이미 모든 행정정보는 공개로 전환하였기 때문에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등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무료로 볼 수 있고, 이를 취합하여 각종 프로그램 개발과 이용에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빅데이터의 시대라고 하는데,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으면 분석을 할 수 없고, 이와 관련한 분야들이 발전할 수가 없다. 요즘 이슈가 되는 리걸테크와 관련해서도 우리나라는 판례와 등기부의 폐쇄성 때문에 그 분석기술이 제대로 발전하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판결문의 비공개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판결문은 하급심 판결을 포함하여 모두 공개하는 것이 선진화된 국가의 일반적인 원칙이다. 심지어 이들 국가에서는 비실명처리도 하지 않는다. 프라이버시의 보호가 필요할 때에만 예외적으로 제한이 이루어질 뿐이다. 공개된 판결문과 사건의 기록은 각종 법리의 발전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우리는 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직까지 구체적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에 답답할 때가 많다. 세계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앞으로 전진하는데 우리는 뭔가가 정체된 느낌이랄까.
이현곤 대표변호사(새올법률사무소·전 서울가정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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