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역사학계가 월성에서 나온 비석 잔편의 정체를 놓고 술렁거리고 있다. 중국 만주 지안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비가 배경에 있다. 신라 땅에서 고구려 사람이 이 비석의 ‘신라판’을 만들었는지를 둘러싼 민감한 논란이 불거질 참이다.
2020년 12월11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의 장기명 학예사는 6년간 벌인 월성 해자 1~3호 발굴 작업을 마무리하다 놀라운 유물 하나를 발견했다. 해자 진입로 도로 유적 동쪽의 배수로 안 콘크리트 구조물을 들어내고 흙을 퍼내다가 4행에 걸쳐 12개의 예서체 한자를 새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깨진 석비 조각(비편)을 찾아낸 것이다. 이 비편은 가장 넓은 곳 기준으로 가로 16.47㎝, 세로 16.58㎝, 두께 13.67㎝에 무게는 약 2.7㎏에 불과했다. 누가 봐도 장중하고 정교한 비석의 일부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새겨진 글자가 5세기 고구려 광개토왕비의 예서체를 빼닮은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판독된 글자를 살펴보면 확실한 것은 貢(공), 白(백), 渡(도), 不(불), 天(천) 등 다섯 글자였는데, 모두 광개토왕비에 등장하는 엄정한 예서체의 한자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은 짚었다. 예서체는 신라 비문이나 문자 자료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글씨체이며, 광개토왕비 등 고구려 금석문에 주로 사용된 서체다.
지난해 6월24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두 비석 조각을 잇대어 붙여놓고 3디(D) 입체 스캔 기기로 투사해 살펴보니 아귀가 딱 맞고 각각 새긴 글자들도 서로 연결되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박물관이 소장해온 비석 조각은 글자를 새긴 명문 뒷면의 먹글씨 기록을 통해 신라유산 연구 선각자였던 향토 사학자 최남주(1905~1980)가 1937년 월성 서쪽에서 찾아 수습한 유물로 확인된다.
고구려 석비로 공인될 경우 광개토왕비에만 나오는 5세기 고구려의 신라 남정 기록을 확실한 사실로 입증하는 구체적 실물 자료가 처음 신라 왕성 유적에서 확인된다는 획기적 의미가 있다. 고구려의 남정은 400년께 백제·가야·왜 연합군에 포위당한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광개토왕이 5만 대군을 보내 임나가라의 종발성(오늘날 김해·부산)까지 파죽지세로 치고 내려오면서 가야·왜의 군대를 격퇴하고 신라를 수십년간 속국으로 삼았다는 것이 골자다. 관련 내용은 ‘삼국사기’ 등 문헌 사서에는 나오지 않고 광개토왕비의 비문에만 나온다.
더욱이 비편들의 세부를 보면, 광개토왕비에 자주 나오는 不(부), 渡(도), 貢(공) 등의 글자들이 광개토왕비 특유의 고구려풍 예서체를 쏙 빼어닮은 형태로 새겨졌다. 이런 맥락에서 신라에 진출한 고구려인의 기념비일 가능성에 좀더 큰 비중이 쏠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구려군이 경주를 사실상 점거·주둔하면서 신라를 속국화한 당대의 정황을 짚는 단서가 될 것이란 추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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