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주말 오후, 학원에 가 있는 줄 알았던 내 아이가 사고를 쳤다며 합의금을 요구한다면,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최근 부모의 불안 심리를 악용해 AI(인공지능)로 조작된 자녀 목소리를 들려주는 신종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는 최근 성행하는 AI 보이스피싱의 교묘한 수법과 실제 피해 사례를 공개하며 주의를 당부했다.
"00이 엄마시죠?" 이름·학원 다 아는데 어떻게 안 속나
범죄자들의 수법은 치밀했다. 이들은 주로 초·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타깃으로 삼는다. 범행 시간대는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어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주말 늦은 오후나 저녁이다.
유승민 작가는 "내 자녀의 목소리와 닮아서 속는 경우도 있겠지만, 울음소리 자체가 발음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가 당황한 틈을 타 범인들은 "지금 당신 아이가 내 차를 망가뜨렸다", "술값이라도 좀 해 달라"며 합의금을 요구한다. 요구 금액은 50만원 안팎.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소액을 부르는 지능적인 수법이다.
문제는 범인들이 아이의 신상 정보를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 학부모 A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와이프 입장에서 '누구누구 엄마시죠?'라는 말을 먼저 들으니, '어? 왜 애 이름을 알지?'라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너네 죽여 버린다"... 온 가족 멍들게 하는 공포
금융감독원은 "자녀 목소리를 들려주며 돈을 요구하면 일단 전화를 끊고 자녀에게 직접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A씨의 사례를 보면, 범인이 아이 엄마를 협박하는 동안 아빠가 옆에서 자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학원 수업 중이라 연결되지 않았다.
유 작가는 "연결되기까지 그 몇 분이 부모에게는 말 그대로 숨 막히는 시간"이라며 "핸드폰이 없거나 무음으로 해둔 경우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2차 피해다. A씨의 경우, 범인들이 통화 중 옆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자 "지금 신고하냐, 너네 죽여 버린다"며 험악한 욕설을 퍼부었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어린 둘째 자녀는 극심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A씨는 "둘째가 그걸 듣고 겁을 엄청 먹었다. 트라우마가 안 생겼으면 좋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뚫린 개인정보, AI 기술과 만나 '괴물' 됐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를 넘어, 우리 사회의 개인정보 관리 실태에 심각한 경종을 울린다. 범인들이 어떻게 자녀의 이름, 다니는 학원, 부모의 연락처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 작가는 "아이의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유출됐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피해 가정은) 통화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통신사의 보이스피싱 탐지 앱 등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마저도 모든 기종에서 작동하지 않는 등 한계가 뚜렷하다. 기술의 발전이 범죄의 진화를 이끌고 있는 지금, 개인정보 보호와 AI 범죄 예방을 위한 법적·제도적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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