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이 영화는 여기서 방향을 분명히 한다. 정치적 복권도, 역사의 재해석도 아닌, 함께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시간을 택한다. 유배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왕과 신하, 권력과 백성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하루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집중한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단종은 그저 ‘비극의 아이콘’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보호 받기만 해야 하는 상징도, 애도의 대상만도 아닌, 함께 숨을 쉬고, 서로를 보다 듬고, 어려움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로 배치된다. 이것이 감독이 힘을 준 가장 분명한 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화는 분명한 두 개의 톤을 지닌다. 유해진이 이끄는 광천골은 인간적이고 코믹하며 정이 넘친다. 백성들의 일상, 유배지의 소소한 온기,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결이,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반면 유지태(한명회 役)가 중심이 된 조정은 근엄하고 진지하며 살벌하다. 권력의 냉기, 비극의 예고, 역사극이 지녀야 할 무게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두 톤이 단짠처럼 어우러지지 않고, 아예 따로 논다는 데 있다. 편집은 뚝뚝 끊기고, 감정의 호흡은 이어지지 않는다.
두 세계가 합쳐져 유배 이후의 삶을 그려내는 순간에서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지만, 연출은 내내 세련됨을 갖지 못한다. 특히 호랑이 CG나 비극을 암시하는 천둥·번개 같은 장치들은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방식 또한 단조롭고 직선적인데, 그 직진은 종종 감정의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유해진은 체감상 8할 가까이를 혼자 책임진다. 박지훈 또한 기대 이상으로 안정적이면서 신선하다. 유지태, 전미도, 이준혁까지 주·조연 할 것 없이 제 몫 이상을 해낸다. 과장이 아니라, 이 영화는 배우들이 메가폰의 허점을 스스로 메우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야기 플롯은 단순하고, 사극이 지닌 단단함은 장점이자 동시에 뻔함이라는 약점을 동반한다. 그 빈틈을 채우는 건 배우들의 다채로운 고군분투다. 배우들은 다 했다. 정말로 다 했다. 매 신의 중심이 달라 보일 정도로. 그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어우러지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왕과 사는 남자’는 정치극이 아닌 관계극을 택한 사극이고, 비정함 속에서도 착하고 따뜻하다. 그 선택은 뭉클하고도 성실하지만, 끝내 결정적인 한 방에는 닿지 못한다. 장면 장면은 매혹적이나, 영화 전체가 매력적으로 완성되진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오래 곱씹히기보다는, 본 순간의 온기로 남는다. 그것이 관객들에겐 어떤 입소문으로 퍼질지는 미지수다. 추신. 만약에 우리 감독님만 더 잘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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