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8월25일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로 데뷔. 2002년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한국 가수 최초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고, 2009년에는 영어 앨범 ‘보아’(BoA)로 한국 가수 최초 빌보드 200에 진입했다. 홀로 일본과 미국을 아우르는 생존과 증명의 여정은 ‘아시아의 별’이라는 이름을 남겼지만, 그는 명예로운 이름에 안주하지 않았다. 보아는 2010년 ‘허리케인 비너스’(Hurricane Venus) 앨범 수록곡부터 본격적으로 자작곡을 썼다. 자작곡 ‘온리 원’(Only One) 무대에서 같은 소속사 남성 아티스트들과의 페어 안무를 선보이는 건, ‘핑크 블러드’(에스엠을 좋아하는 팬을 이르는 말)에게 일종의 케이팝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동시에, 퍼포먼스에 대한 관객의 높은 기대치와 잦은 무릎·발목 부상이 충돌하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보아는 오직 춤 없이 노래만을 들려주는 ‘보아 더 라이브’로 자기만의 공연 형식을 정착시켰다. 2018년 ‘우먼’(Woman)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도입부부터 거꾸로 하늘을 걷는 듯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는가 하면, 2022년에는 에스엠의 프로젝트성 여성 유닛 그룹 ‘갓 더 비트’ 멤버로 소속되며 데뷔 이래 처음으로 동선 이동이라는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긴장하는 의외성을 보였다. 부상은 고질적인 문제였고, 급성 골괴사로 단독 콘서트를 취소해야만 했던 시기에는 사무 공간에서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아 이동하며 신곡 ‘크레이지어’(Crazier)를 부르는 라이브 영상을 공개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보아는 언제나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최전방에서 나누는 사람이기도 했다. 에스비에스(SBS)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 스타’, 엠넷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와 ‘스트릿 맨 파이터’에서 각각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가수 지망생들의 참조점이 되었고 그 전까지는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댄서들을 호명했다. 2023년께 에스엠을 둘러싼 지난한 경영권 분쟁 끝에 결국 이수만 창립자가 “한 시대가 끝났고, 에스엠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소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날 때도 보아는 남아 있었다. 남아서, 2024년 엔시티 위시라는 신인 케이팝 그룹의 방향성부터 안무, 뮤직비디오 편집 단계까지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프로듀서로서 활약했다.
보아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언젠가 이 노랫말에 힘차게 그렇다고 화답할 것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나를 감당할 수 있겠니?”(보아 정규 9집 수록곡 ‘인카운터’(Enco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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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나간 뒤로 트리뷰트성 기사 계속 나오는중
보아의 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