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작품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 못해, 그릇마저 깨져 있는 형국이다.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흥행 불패의 공식을 모두 갖췄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마자 작가들의 이름값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웠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
작품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는 놀라울 정도로 납작하고 빈곤하다. 로맨스 장르의 낡은 클리셰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상상력이 고갈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극 중 주호진과 차무희가 소통의 오류로 엇갈리고 오해를 쌓았다가 다시 봉합하는 과정만을 지루하게 반복한다. 이미 수많은 로맨스물에서 질리도록 소비된 이 구태의연한 ‘오해와 화해’의 공식은 작가들의 게으른 상상력을 숨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드러낸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소모적인 갈등을 지속하기 위해 가져온 설정들마저 개연성을 상실한 채 부유한다는 점이다. 주호진의 직설적인 화법과 진심을 감추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차무희의 소통 방식은 로맨틱한 긴장감을 유발하기보다 답답함만을 가중시킨다. 두 사람이 엇갈리는 지점마다 작가는 그럴싸해 보이는 설정들을 투입하지만, 이는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한 채 기름과 물처럼 겉돌 뿐이다.
특히 차무희가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 속 캐릭터 도라미의 환영을 보는 설정이나 주호진의 복잡한 가정사와 형의 연인을 짝사랑하는 설정 등은 작가들의 게으른 작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러한 장치들은 대부분 초반에는 두 사람을 갈등하게 만들고, 이후에는 오해를 풀며 가까워지게 만드는 전형적인 전개를 위해 사용될 뿐이다. 무거운 설정들이 캐릭터에 입혀졌을 때 개연성이나 논리적 흐름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그저 필요한 장면에 맞춰 억지로 주입된 인상이 짙다.
후반부 전개는 기시감을 넘어 당혹스럽다. 차무희의 트라우마와 가족사를 다루는 방식은 드라마 ‘킬미힐미’의 인격 형성 과정이나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모녀 관계를 노골적으로 연상케 한다. 타 작품의 독창적인 설정을 차용해 오면서도, 그 안에 담긴 치유와 성장의 메시지는 소거한 채 자극적인 조미료로만 활용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창작자로서의 직무 유기다.
캐릭터의 매력도 또한 현저히 떨어진다. 트라우마를 겪는 상대에게 막말에 가까운 충고를 던지는 주호진은 냉철함이 아닌 무례함으로 비치고, 이는 설렘을 줘야 하는 로맨스 작품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비호감으로 이어진다. 또한 사랑에 매몰되어 자존감마저 잃어버리는 차무희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주인공들의 서사가 힘을 잃으니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리 만무하다. 메인 요리가 부실한데 곁들이 찬이 맛있게 느껴질 리 없는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들과 연출진에게서 나온다. ‘붉은 단심’을 통해 탁월한 미장센을 선보였던 유영은 감독은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등 해외 로케이션의 풍광을 감각적인 영상미로 구현해 냈다. 스토리의 빈틈을 메우는 압도적인 비주얼은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며 무너져가는 개연성을 간신히 지탱한다.
무엇보다 김선호와 고윤정의 존재감은 눈물겨울 정도다. 두 배우는 비호감으로 전락할 수 있는 캐릭터의 결점을 본인들이 가진 고유의 매력과 호감도로 상쇄시킨다. 납작한 대사조차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눈빛을 거치며 그나마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들의 아쉬운 필력에 관객이 잠시나마 속아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캐릭터가 아닌 배우 자체가 가진 힘 덕분이다.
배우들의 열연과 화려한 연출이 빚어낸 아름다운 포장지를 걷어내면, 남는 것은 홍자매의 한계뿐이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고민 없이 써 내려간 대본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기만하는 수준이다. 만약 ‘홍자매’라는 이름표를 떼고도 이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무너지는 개연성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배우들의 열연과, 빈곤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해 낸 연출의 힘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결국 홍자매는 자신들의 이름값보다 더 빛나는 증명을 해낸 배우들과 연출진에게 갚지 못할 큰 빚을 졌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티브이터일리 최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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