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공여자’ 김경, 美 출국 이후 텔레그램·카카오톡 재설치…증거인멸 의혹
‘김병기 의혹 탄원서’ 수령 김현지, 은폐 의혹 중심에…野 “특검 수사 불가피”
집권여당을 강타한 공천 헌금 의혹 수사가 출발과 동시에 ‘동력 상실’ 기로에 섰다. 경찰이 권력형 비리 가능성을 내포한 중차대한 사건 핵심 피의자의 출국을 사실상 방치한 게 드러나면서 ‘매관매직’과 ‘공천 부패’ 사슬의 정점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스텝 꼬인 경찰의 권력 수사를 직격한 야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겨냥한 특검 출범 필요성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명수배가 아닌 지명통보?…경찰 수사 의지에 의구심
공천 헌금 의혹이 수면 아래에 있던 2025년 8월, 김경 서울시의원의 장남 A씨가 서울 강남의 한 5성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91년생으로 미국 유학파인 A씨의 결혼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 명의의 화환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의 축하기가 놓였고, 정치권 인사도 상당수 참석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시의원 자녀 결혼식에 청와대나 국무총리실에서 화환을 보내는 게 낯선 풍경은 아니다”며 “다만 김 시의원이 재선에다 대선 때도 지역구 국회의원인 강선우와 함께 다니며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러 보직을 맡았기 때문에 다른 시의원에 비해 존재감이 비교적 더 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주당 서울시당 안팎에서는 김 시의원의 입지가 커진 배경에 공개된 것만 65억원에 달하는 자산 규모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력가이니만큼 정치활동을 하며 뒤따르는 여러 경제적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보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시의원이 강 의원에게 1억원의 공천 헌금을 전달한 것이 사실로 규명되면 비례대표 시의원에서 지역구 시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출발점도 결국 ‘돈’이 된다.
김 시의원은 서울 평창동 단독주택과 방배동 아파트, 상가 5채 등을 보유하고 있다. 아들인 A씨 역시 조모로부터 물려받은 주택 등 총 11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컷오프’가 거론됐던 것도 김 시의원 모자의 다주택 보유 이력 때문이다. 비례대표였던 김 시의원은 연고가 없고, 주 활동 무대도 아니었던 강 의원의 지역구인 강서구에서 재선 출사표를 냈고 공천 컷오프 위기 때 1억원의 공천 헌금을 강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매관매직을 시도했던 김 시의원은 그러나 컷오프되기는커녕 단수공천을 따냈다. 녹취록에서 강 의원은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회 간사이던 김병기 의원에게 “살려 달라”고 했는데, 하루 만에 김 시의원이 기사회생하면서 ‘제3자 개입’ 여부와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는지에 대한 의혹도 함께 커지고 있다.
‘1억원 공천 헌금’과 윗선 개입 여부를 규명할 키맨인 김 시의원은 지난해 12월31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강 의원이 2022년 4월21일 김 시의원으로부터 공천 헌금을 받은 것을 김병기 의원에게 실토하는 ‘자백성’ 발언 녹취록이 공개된 지 이틀 만이다. 12월29일 녹취록 보도 당일 경찰에 고발장이 접수됐고, 강 의원의 민주당 탈당과 김 의원의 원내대표직 사퇴가 연쇄적으로 이뤄졌다. 수사망이 좁혀오던 그 시각에 의혹의 핵심 축인 김 시의원은 출국을 준비했다. 김 시의원은 녹취록 파문과 무관하게 미국에 거주 중인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리 비행기 표를 구입한 것이라고 했지만, 핵심 피의자로서 고강도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모두 인지한 공직자가 출국을 강행하면서 ‘도피성’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 시의원의 출국은 경찰의 ‘뒷북’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찰은 고발장 접수 이틀 만이자 김 시의원이 출국한 당일에 사건을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했다. 김 시의원의 출국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수사팀은 1월5일에야 법무부에 ‘입국 시 통보’를 요청했다. 김 시의원이 입국하면 경찰에 통보해 달라는 의미다. 범죄 혐의를 밝힐 ‘골든타임’인 초기 경찰 수사에 사실상 ‘불출석’ 의지를 드러낸 김 시의원을 상대로 지명수배가 아닌 지명통보를 하면서 1차 뒷북 조치에 이은 2차 부실 대응까지 도마에 올랐다.
법조계에서는 핵심 피의자의 출국을 막지 못한 경찰이 지명통보만 해둔 것 자체로 수사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김 시의원이 공천 헌금 1억원을 강선우 의원한테 교부한 사실은 당사자의 녹취로 확인된 사안으로, 혐의도 상당하고 사안도 중하다”며 “이런 사건 피의자의 출국을 막지 못했다면 체포영장을 발부해 지명수배를 하는 것이 통상적 절차인데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입국과 동시에 체포하지 않겠다는 경찰의 결정은 이번 사안이 경미하고 혐의도 입증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드러낸 것이고, 이는 곧 수사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집권여당을 겨냥해야 할 경찰의 수사 의지와 수사력이 본격 시험대에 오르자마자 헛발질을 하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경찰 관계자는 봐주기 수사 의혹에 선을 그으면서 “연말, 연초를 끼고 공천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접수됐고, 배당부터 출국금지와 신병 확보 필요성을 검토하는 데 있어서도 물리적 시간이 필요했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입국할 것을 김 시의원에게 요구하고 있고, 차질 없이 수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진술 속 증거인멸 우려 현실로
그러나 김 시의원의 출국으로 이미 초기 수사에 상당한 차질과 균열이 생겼다. 수사 동력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선 사건 전모를 밝히기 위한 핵심 단서인 ‘1억원’의 행방이 묘연하다. 강 의원은 “보좌관이 김경에게 돈을 받았지만 반환을 지시했고 돌려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목된 보좌관은 “받은 적도, 돈의 행방도 모른다”고 엇갈린 진술을 내놓았다. 김 시의원은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공천을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는 반환 여부와 상관없이 받는 그 순간 혐의가 성립한다. 강한 거부 의사를 나타내며 즉시 반환하지 않았다면, 관련자들에 대해 뇌물죄나 공직선거법 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
핵심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의자들의 진술은 어긋나고 있다.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사의 1차 관문인 공여자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강제수사도 열흘 넘게 공전 상태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뇌물이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금품을 준 사람을 먼저 조사해 진술을 확보하는 동시에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최대한 빨리 착수해 물증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번엔 김 시의원을 놓치면서 수사가 상당히 꼬이게 됐다”며 “그사이에 증거인멸과 말맞추기가 이뤄질 개연성이 상당히 크다. 경찰이 피의자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셈”이라고 짚었다. 경찰은 1월8일 현재까지 강 의원과 김 의원, 김 시의원 측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 한 건도 진행하지 않았다.
경찰에 1월10~11일께 입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김 시의원은 미국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그는 1월7일 밤 10시49분쯤 텔레그램에 재가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시의원은 이전까지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존 대화 내역을 모두 삭제하기 위해 탈퇴 후 재가입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카카오톡에서도 김 시의원이 새 친구 목록에 등장한 것을 보면, 이 역시 탈퇴해 기존 메시지 내역을 모두 비운 뒤 재가입한 것으로 의심된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경찰이 권력자 눈치를 봐 출국금지를 미적거리는 동안 유유히 미국으로 출국한 김경 시의원이 증거인멸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말 맞추고 증거인멸 할 시간을 번 것이다. 김병기·강선우 의원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경찰 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 의원은 이어 “(경찰이) 증거는 확보 안 하고 관련자 소환만 수사팀이 흘리는데, 증거인멸 하라고 광고하나”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서는 공천 헌금 특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김병기 금품수수 의혹’ 탄원서 덮은 경찰…민주당 수뇌부도 관련됐나
경찰의 ‘늑장·봐주기’ 수사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시의원은 지난해 10월 불교 신자 3000명을 입당시켜 김민석 총리의 서울시장 경선을 지원하려 했다는 의혹으로 이미 고발당한 상태지만, 경찰은 고발인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경찰은 고발인인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을 조사하지 않다가 이번에 공천 헌금 의혹이 불거지자 1월13일로 조사 일정을 잡았다.
‘탈당’ 압박을 받고 있는 김병기 의원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도 경찰 수사를 향한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김 의원 부인인 이아무개씨가 조진희 동작구의회 부의장의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의혹은 기초적인 현장 확인이나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3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내사종결 처리됐다. 김 의원의 전직 보좌관들은 2024년 5월 김 의원이 또 다른 보좌관을 통해 법인카드 유용 의혹 내사 관련 서류를 전달받았다며, 경찰 수사 무마를 위한 김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전직 구의원들로부터 총 30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는데, 서울 동작경찰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 담긴 탄원서를 확보하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구의원들이 작성한 탄원서가 2023년 말 당시 이수진 전 의원 측을 통해 이재명 당시 당대표 보좌관이었던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게 전달됐고, 김 실장이 이를 당사무국에 전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청와대도 수사선상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전 의원은 “당시 보좌관이 갖고 있는 녹취록에 김 실장이 탄원서를 언급하며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됐다’고 말하는 내용이 있다”며 “통신비밀보호법상 녹취를 공개할 순 없지만 수사기관에는 제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