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 하였으며 중세 시기에도 당연히 마찬가지였다
노예를 뜻하는 말인 slave는 슬라브(slav)에서 유래했다
이슬람 세계에서 백인노예를 부르던 말 사칼리바(saqaliba)또한 슬라브족을 일컫는 말이었다

백인 노예들을 부리는 주 수요처는 당연히 이슬람 제국이었다.
이 시절만 해도 유럽보다 이슬람이 훨씬 강대하고 발전된 세력이었고
주로 바이킹들에게 사냥당한 백인 노예들을 돈으로 사서 부려먹었다.
백인 유럽 노예들은 1000디나르에 팔렸고
이는 다른 노예들보다도 대게 비싼 가격이었다
아름다운 여성 노예는
첩이나 성매매종사자 혹은 연예인으로 거래되었고
'흉측한' 노예들은 가정부로 거래되었다
남성 노예는 군인으로 거래되거나 궁정환관으로 거래되었는데
이슬람 동부에서는 군인으로서의 쓰임새가 강조되었다면
이슬람 서부(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환관으로 부려먹는 비율이 높았다
군인으로 쓰기 위해서는 거세할 필요가 없었지만 궁궐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거세를 해야 했다.
일단 거세를 하고 나면 궁궐의 수많은 가사, 기타 임무에 사용할 수 있었고 하렘의 경비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 행정 관료나 지방의 총독으로 쓰일 수도 있었다.
이 경우 후손을 남기지 못한다는 점은
권력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지배자들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10세기 코르도바에는 13000여명의 슬라브족 백인 노예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특히 환관이 된 노예 사칼리바는 당시 이슬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노예 무역로는 다른 상인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대인들이 주로 이 무역로를 담당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노예 무역에 필요한 국제교역망도 잘 갖추고 있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을, 이슬람인은 이슬람인을 노예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장거리 교역망을 갖추고 있는 것은 큰 이점이었다
즉,
어린 슬라브족 소년들은 동유럽에서 가족들과 강제로 이별하게 된 후
프라하의 노예시장에서 팔리고
베르됭에서 거세 당한 후
유대인들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동하여
코르도바의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아지고
이윽고 높으신 분의 눈에 들게 되어
이슬람 제국의 궁정에 도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백인을 노예로 부리는 이슬람 제국의 전통은
훗날 오스만 투르크 시절에도 계속되어
오스만의 주 정복지였던 동유럽의 슬라브족들이
포로로 잡히거나, 전쟁 중에 납치되어
오스만 궁정에 노예로 많이 끌려갔다.
오스만 제국의 태후까지 올라간 전설적인 인물인
휴렘 술탄(터키판 기황후라고 보면 됨) 역시
동유럽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오스만 제국으로 노예로 끌려가서
결국 입지적인 출세를 이뤄낸 백인노예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