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육아로 터울이 크게 나지 않는 두 아이를 집에서 키울 때, 저는 살림과 육아가 제 성격에 잘 맞지 않는 건지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늘 찌들어 있었고, 피곤하고, 힘들고, 우울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일하는 동안 문자나 톡을 보내도 답장이 잘 안 온다고 서운해했고, 그 문제로 많이 다투기도 했습니다.
둘째가 두 돌쯤 되었을 때 일을 시작하며 맞벌이를 하게 되었어요. 회사에서 치열하게 일해보니, 제가 남편에게서 받는 연락에 답장을 못 하고 있더라고요.
전업이던 당시에 남편은 점심시간마다
양재천에 핀 꽃 사진, 하늘 사진을 찍어 보내주곤 했습니다.
“계절이 바뀐다, 좋은 계절인데 아기만 보느라 밖에 못 나가네”
이런 말들도 함께요.
그땐 사실 큰 위안이 되지 않았는데, 제가 직접 일을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일하다가 밥 먹고 잠깐 쉬는 그 시간에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도, 상대를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요.
경력단절을 끊고 재취업을 하면서 최저임금부터 다시 시작했고,
이공계 출신으로 전공살려 일하며 기술 자격증도 따고 스펙업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남편 급여만큼 받게 되었습니다.
막상 그 돈을 받아보니 결코 많은 돈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그 돈으로 세 식구, 나중에는 네 식구를 먹여 살리고
편찮으신 시부모님 의료비까지 감당하려면
남편이 얼마나 숨이 막혔을지 그제야 이해가 됐습니다.
아이는 어리고 사주고 싶은 건 많고,
맞벌이는 못 하는 상황에서 생활비가 부족하니
스트레스를 받았던 제 마음도
그땐 나름 정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 마음 역시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러다 남편이 번아웃이 왔는지
정말 어렵게 “회사를 그만두고 쉬면 안 될까”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기계도 20년 돌리면 고장 나거나 폐기하는데, 사람은 오죽하겠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내가 벌어올 테니까 당분간 쉬어 말은 그렇게 했습니다.
실업급여로 몇 달을 버텼지만 그래도 빠듯했고,
그 사이 남편은 다시 취업을 했습니다.
그때는 제 급여로 네 식구가 산다는 게 솔직히 많이 불안했어요.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도 컸고요.
맞벌이 시작 후 남편은 주말에 하루는 저에게 외출을 권했고 하루는 도서관에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결과로 취득한 자격증을 저에게 주며 이건 당신이 딴거나 다름없어 라고 할때에도 사실 저는 별감흥없이 나는 일하는데 주말에도 힘들게 애돌볼시간에 본인은 자기개발한다고 서운하기도 했었네요. 부모가 둘다 일하고 아이들도 어린이집 가다보니 요즘같이 추운겨울은 감기 한사람이 걸리면
돌아가면서 감기걸리고 아이들은 돌아가며 중이염에 수족구에 아이 데리고 출근하고 회사 이사님이 아이업어주고 재워준적도 있네요...ㅎㅎ 지금 돌이켜보면 추억이기도 하고 민폐끼친것같아 죄송하기도 합니다.
역으로 어느순간엔 제가 3주동안 교육받고 시험을 봐야했고 그 역시도 압박감과 시험에 대한 부담에 짓눌리면서 쉬운일이 아니였구나 체감했었습니다.
이런저런 시간들이 다 지나고, 저도 40대 초반을 지나며
아이들은 많이 컸고 시간적 여유도 생겼습니다.
남편과 저 모두 직급이 오르고 급여도 오르면서
지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는 사는 것 같아요.
카페나 커뮤니티에 보면
외벌이, 맞벌이, 전업, 워킹맘 이야기가 늘 뜨거운 화두인데,
겪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의 처지를
100%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겪어봐야 그제야 느껴지고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시기마다 다른 힘듦과
끝없는 고민의 연속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쉬워 보이고 여유로워 보여도
각자의 고충은 다 있었습니다.
아이 성향에 따라 육아 난이도는 천차만별이기도 하고요.
서로를 조금만 더 너그럽게 바라보면서
“아, 저 사람도 힘들 수 있겠구나”
“저 상황에서는 어려울 수 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