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그 봄날이 생각나네
혼자뿐인 밤
위를 보며 걷자
하늘에 번진 별을 세면서
그 여름날이 생각나는구나
혼자뿐인 밤
행복은 구름 위에
행복은 하늘 위에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울면서 걷는
혼자뿐인 밤
슬픔은 별 그늘에
슬픔은 달 그늘에
위를 보며 걷자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울면서 걷는
혼자뿐인 밤
혼자뿐인 밤
https://www.youtube.com/watch?v=_UIn3lufcZ0
1960년 일본은 '안보 투쟁'으로 온 나라가 시위와 데모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쳐 있었죠. 그때 사카모토 큐가 TV에 나와 "슬픔이 넘쳐흐르지 않도록, 위를 보며 걷자"라고 노래했습니다.
겉으로는 밝은 멜로디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이 가사는, 당시 전 국민의 힐링송이자 국민 가요가 되었습니다. 힘든 퇴근길에 포장마차에서 <위를 보며 걷자>를 흥얼거리게 만든 서민들의 친구이자, 마침 일본 가정에 TV가 보급되던 시기에 브라운관 속에서 항상 웃고 있는 큐짱은 '고도 경제 성장기'의 마스코트이기도 했죠.
당시 스타들은(이시하라 유지로 등) 범접할 수 없는 '은막의 스타'였지만, 사카모토 큐는 여드름 자국이 있는 평범한 얼굴로 벙글벙글 웃으며 대중 곁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키도 작고, 얼굴도 곰보 자국이 있었지만 항상 웃고 있었죠. 그가 눈이 없어질 정도로 활짝 웃는 모습은 전후의 우울함을 날려버리는 햇살 같았습니다. 당시 로커들이나 배우들이 좀 불량한 이미지가 있었다면, 사카모토 큐는 자녀들이 좋아해도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을듯한 이미지의 연예인이었습니다.
이 시기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이 노래를 듣고 음반을 사가기 시작했고, 이것이 1963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라는 기적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일본 미군방송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던 미국 라디오 DJ가 이 노래를 방송에 틀었는데 노래를 듣던 청취자들이 이 노래가 뭐지 하는 궁금증이 점점 커져 노래가 서서히 인기가 높아갔다고 하며, 또 1963년 영국 재즈악단 '케니 볼 앤 히즈 재즈멘'이 위를 보고 걷자를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해 영미권에 알렸고, 얼마 뒤 현지 음반사가 원곡을 정식 발매한 것도 위를 보고 걷자의 역주행에 한몫했죠. 결국 1963년 6월, 일본 뉴스 속보가 타전됩니다. "사카모토 큐의 <위를 보며 걷자(미국명: 스키야키)>가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왜 그 노래가 미국에서는 갑자기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불리는지 의아해했지만, 그보다는 너무나도 익숙한 국내의 스타가 미국의 차트에서 1등을 했다는 놀라움이 더 컸습니다. "우리 큐짱이 미국을 정복했다니!" 이것은 단순한 가요계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안방의 TV에서 웃고 떠들던 그가 미국을 제패했다는 스토리는, 엄청난 국가적 자부심을 심어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미국 최고의 쇼인 에드 설리번쇼에 나가 노래하는 모습은 온 국민의 눈물겨운 자랑거리이자 국뽕거리였습니다.
이 노래는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UK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전세계적으로 1300만 장이 팔리는 매우 거대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63년 미국에서 밀리언셀러에 등극하여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미 레코드협회로부터 골든디스크를 받기도 했죠. 훗날 80년대에도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기도 합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개막식 즈음, 사카모토 큐의 위상은 단순히 연예인을 넘어섰습니다. 그는 미국 빌보드 1위라는 기적을 쏘아 올리며, 일본의 전후 부흥을 상징하는 국민적 영웅이자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세계 무대로 뛰어오르던 '희망의 얼굴'로 각인되기에 이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4hh28_hdD8
tmi :
원래 '위를 보고 걷자'라는 멀쩡한 제목이었던게
미국인들이 지들한테 일본 하면 생각나는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바꿔버림
우리나라로 치면 '거위의 꿈'같은 희망적인 가사의 노래가
뜬금 미국 진출당하더니 'Kimchi'라는 제목이 되어버린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