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지현은 변하지 않고도 성장하는 법을 아는 배우다. 그 성장은 튀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내밀하기에 더 단단하다. 눈에 보이는 요란한 변신 대신 단단한 눈빛과 탄탄한 발성으로 장면의 공기를 휘어감아 중심을 잡고, 내면에 쌓아온 다단한 감정의 결로 장면을 떠받친다. 그 축적은 매 작품마다 묵직한 신뢰로 돌아온다.
이러한 남지현의 힘은 KBS2 토일 미니시리즈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도 선명하다. 그가 '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 연기하는 은조는 낮과 밤, 의녀와 도적이라는 상반된 얼굴을 오가는 인물이다. 남지현은 은조의 행동이 왜 필연이었는지, 그 윤리가 어디에서 비롯했는지를 차분히 쌓아 올리며 인물을 설득한다. 선함과 결기, 연민과 단호함이 한 인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는 이유다.
남지현은 이 작품의 네 주연 배우 가운데 가장 긴 연기 경력을 지닌 배우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극적 서사의 판을 흔들기보다, 판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친다.
상대역 문상민을 비롯해 홍민기, 한소은, 이승우 등 비교적 젊은 배우들이 포진한 주요 배역 캐스팅에서 남지현의 안정된 호흡은 사극 특유의 무게감과 로맨틱 코미디의 경쾌한 리듬을 자연스럽게 지탱한다. 자신이 도드라지기보다 장면이 먼저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번 작품에서 남지현에게 가장 감탄하게 되는 지점이다.

특히 사극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배우들의 호흡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장면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 중심과 단단한 안정감으로 장면을 이끌어 간다. 감정을 끌어올리기보다 받아내고, 앞서기보다 기다리는 방식으로 상대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살려낸다. 그 결과 드라마는 불필요한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드라마와 채널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은애하는 도적님아' 분당 최고 시청률은 5.7%다. 지난해 토일 미니시리즈를 새로 편성하고 세 작품 연속 다소 씁쓸한 성적을 받아들었던 KBS2로선, 초반 출발로 나쁘지 않은 수치다. 방송 첫 주 만에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가 발표한 TV 드라마 화제성 순위에서도 5위에 오르며 저력을 보였고, 넷플릭스에서도 국내 많이 본 TV 시리즈 톱10 2위(8일 오전 10시 기준)까지 올랐다.
남지현이 15세에 연기한 '선덕여왕' 덕만의 단단함을 떠올리면, 지금의 은조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후 '수상한 파트너', '백일의 낭군님', '작은 아씨들', '하이쿠키', '굿파트너'에 이르기까지 그는 매 작품에서 서사의 무게를 감당해 왔다. 정의롭지만 완벽하지 않은 인물, 선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얼굴, 그리고 언제나 선택의 윤리를 품은 주인공들. 모두가 염원하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서, 그는 늘 어려움을 뚫고 나아가는 단단한 인물들을 설득력 있게 완성해 왔다.
'은애하는 도적님아'는 아직 1, 2회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남지현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미더움을 품게 된다. 서사를 단단히 붙드는 힘, 그 축적된 내공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분명한 무게로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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