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새벽노동 중 숨진 송모씨
허혈성심장질환으로 진단금 등 지급
과로 사실 알았지만 "산재 아니다" 주장
유족 요구 자료 안주며 산재 은폐 의혹
별도 지급된 질병사망보험금 1억 원
"유가족 입막음 장치로 악용 의심"
2020년 5월 27일 새벽, 쿠팡의 수도권 물류센터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인천4센터 4층 화장실에서 40대 계약직 노동자 송모씨가 쓰러진 채 동료에게 발견됐다. 119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사인은 허혈성심장질환. 대표적인 과로사 유형 중 하나지만, 쿠팡은 그 가능성을 부인하며 송씨의 죽음을 질병 탓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쿠팡 측이 송씨의 과로사 가능성을 인지하고 유족들을 회유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고 직후 유가족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1억1,000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새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쿠팡, 허혈성심장질환 진단금 주고도 "산재 아니다"
28일 한국일보가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유족보상금 상세내용' 내부 문건에 따르면 쿠팡은 2020년 7월 21일 송씨 유가족에게 질병사망보험금 1억 원, 허혈성심장질환 진단금 1,000만 원을 지급했다. 송씨가 사망한지 채 두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를 두고 쿠팡이 공식 입장과는 달리 송씨의 산재 가능성을 이미 알고 유족을 입막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허혈성심장질환은 협심증과 심근경색 등을 뜻하는데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업무 스트레스 등이 클 때 유발될 수 있다. 송씨는 허혈성심장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는 새벽노동을 하던 중 숨졌다.
실제 송씨가 사망 직전 과로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쿠팡 내부 자료도 있다. 당시 쿠팡 소속 변호사가 인사 업무를 총괄하던 해럴드 로저스(현 쿠팡 한국 대표) 등에 보낸 이메일에 따르면 송씨는 그 해 5월 한 달 동안 UPH(시간당 생산량) 인센티브 수당이 20만5,000원이 지급됐다. UPH 인센티브는 노동자 개인의 업무처리 성과지표로, 하루 기준 목표를 달성하거나 넘어섰을 때 지급된다. 장씨는 같은 해 4월 UPH 인센티브를 1만원 받았는데 사망한 5월에는 20배 넘는 수당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높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쿠팡은 송씨가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는 걸 인지하고도 산재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2023년 1월 25일 쿠팡이 공지한 '근로자 안전에 대한 허위 진술에 관한 사실들' 문서를 보면 "지난 10년 간 쿠팡에서는 단 한 건의 산재 사망사고도 없었다. 같은 기간 업무관련 사망자는 단 한 명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심장 및 뇌혈관 질환은 한국에서 각각 2위와 4위 사망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송씨의 죽음을 개인 질병 탓으로 규정해 산재 가능성을 배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질병사망보험금 1억 원 지급…유족 회유 노렸나?
쿠팡 측은 노동자가 일하다 숨졌을 때 합의금 조로 사망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며 유족을 회유하려 한 전력이 있다. 지난해 5월, 관리자에게 "개처럼 뛰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새벽배송을 하다 숨진 고 정슬기씨 장례식장에서도 쿠팡 측은 보험금을 합의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제안했었다.
정혜경 의원실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정슬기씨가 일했던 쿠팡 대리점 관계자는 유족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 보험이나 산재보험 가운데 택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산재 신청하면) 개인 보험은 못받고 2억 원이고, 이거(쿠팡 측이 제시한 합의금)는 개인 보험 처리하고 1억5,000만 원"이라며 "1억5,000만 원은 송금해 드리겠다. 세금 없이 합의금이라 상속세 등이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산재보험과 별개인 개인보험을 합의금처럼 악용한 것으로, 송모씨 유가족에게 지급된 보험금 금액(1억원)과 유사하다.
만약 보험금이 보상금 명목으로 쓰였다면 쿠팡 측이 유족에게 '사건을 외부에 알라지 않겠다'는 별도의 합의서를 요구해 작성했을 수도 있다. 2020년 10월 숨진 경북 칠곡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 씨 어머니인 박미숙씨는 본보 통화에서 "(보상금 논의 당시) 합의서에 비밀유지 조항이 있었다"며 "저희에게 선택권은 없었고 사측이 합의서를 준비해오면 서명만 하는 순서였다"고 전했다. 또 "쿠팡이 내미는 합의서에는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며 "많은 산재 유족들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혜경 의원은 "쿠팡은 대부분의 산재 사망사고를 돈으로 은폐하고 있다"며 "보통 사람들은 산재 관련법, 행정절차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산재 승인이 어렵다는 말로 유족을 꼬드기고, 산재를 신청하면 개인보험 적용이 안된다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유족이 합의하게끔 유도한 정황도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직적 산재 은폐 시도로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고용노동부 차원에서 산재 은폐 사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쿠팡 풀필먼트 측은 "직원 복지 차원에서 임직원 단체보험에 가입해 있으며, 단체보험은 산재와 관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905569?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