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국민의힘이 주도한 행정통합 추진 과정을 살펴보자. 이장우 대전시장은 24일 김태흠 충남도지사와의 긴급회동 자리에서 "그동안 시·도를 순회하며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양 시․도의회 의결을 통한 숙의 과정도 거쳤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가? 대전시와 충남도를 순회하며 열린 주민설명회가 얼마나 내실 있게,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며 이루어졌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지난 7월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문화일보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7월 11일부터 14일까지 대전·충남 거주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방식의 여론조사를 벌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였다.
뭔가 이상한 야당의 '여론조사'
대전·충남 행정통합 민관협의체는 지난 7월 18일, 대전·충남 주민 10명 중 6명(약 65%)이 통합에 공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하다. "귀하께서는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를 법적․제도적으로 하나의 광역자치단체로 합치는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라는 응답이 무려 37.8%에 이르렀는데, 통합에 공감한다는 의견은 65%란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거나 '들어본 적은 있다'라는 응답이 62.2%에 불과했다는 사실, 즉 열에 넷은 알지도 못한 채 여론조사에 답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민들에게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온라인 패널을 이용한 여론조사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었다.
뭔가 이상한 여당의 '공론화'
더불어민주당은 24일 충남·대전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청래 대표는 "충남․대전 통합은 여러 행정 절차가 이미 진행돼 국회에서 법이 통과하면 빠르면 한 달 안에도 가능한 일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 상임위원장 황명선 최고위원은 "특위에서는 1월 한 달 동안 충남 도민과 대전 시민의 충분한 의견을 듣는 공론화 과정, 숙의 절차 과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고, 박정현 의원은 "지역위원회 차원의 추진단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캠페인 서명 운동을 할 것이며, 광역시도당을 통한 공청회, 타운홀 미팅으로 시민 의견을 적극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달여 만에 '충분한 의견'을 듣는 게 가능하다는 인식이 놀랍다. 캠페인 서명 운동이나 시도당 주관 공청회를 통해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다는 발상 역시 비민주적인 건 마찬가지다. 국민주권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절차적 민주주의도 제대로 안 지킨다면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주민투표 못하면 여론조사라도 제대로
대전과 충남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행정통합을 위해서는 주민투표 절차가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동안 달성군·대구시, 창원·마산·진해 등의 통합 사례는 있었지만, 광역자치단체간의 통합은 처음이라 그만큼 숙의와 주민 의견 청취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시와 충남도를 합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주민들에게 상세히, 그리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게 최선이다. 6·3지방선거에서 통합시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대전과 충남 360만 주민 삶의 질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 아닌가.
앞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둘러싼 여야의 샅바싸움이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을 씨름판의 관중으로 전락시켜선 안 된다. 주민투표를 실시할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객관적이고 타당한 문항을 구성하여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라도 벌여 주민 의견을 물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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