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모가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재용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87학번이다. 당시는 학력고사를 치른 뒤 나온 점수를 가지고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원서를 넣는 방식이었다. 어디에 접수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그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당시 삼성의 계열사였던 중앙일보는 사회부장의 지휘 아래 서울대 출입기자(먼 훗날 청와대의 홍보수석이 된다)와 몇명의 기자를 현장에 투입했다. 이들이 대학 당국자를 붙잡고 밀착 취재한 결과 6시 마감 직전 동양사학과가 가장 유리하다는 걸 알아낸다.
급하게 연락이 오고갔고, 이재용은 접수 창구가 문을 닫기 직전 원서를 내는 데 성공한다. 당시 서울대를 출입했던 다른 언론사의 고참 기자로부터 들은 얘기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의 정보가 이재용 당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정보는 부차적인 것이고, 제일 중요한 건 학력고사 점수였다.
최소한 이재용의 학력고사 점수가 서울대 인문대에 지원할 정도는 됐던 것이다. 이재용도 다른 학생과 똑같은 조건에서 학력고사를 치렀으니 게임의 룰은 공정했다고 할 수 있다. 천하의 이건희라도 그 학력고사 점수까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링 안의 선수와 링 밖의 코치 사이에는 엄격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661087.html
저땐 정말 오프라인 눈치작전이라 미달도 나고 그랬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