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결혼식 축의금 13,000원 낸 친구
80,089 395
2025.12.16 21:04
80,089 395

[ 축의금 만삼천원 ]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 장수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 이철환 『곰보빵』중에서 

목록 스크랩 (17)
댓글 395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벨레다X더쿠💚] 유기농 오일로 저자극 딥 클렌징, <벨레다 클렌징오일> 더쿠 체험단 모집! 265 12.15 32,973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325,781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0,992,66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363,988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318,187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07.22 1,008,280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0 21.08.23 8,452,085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6 20.09.29 7,380,74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89 20.05.17 8,577,11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2 20.04.30 8,468,68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276,822
모든 공지 확인하기()
142101 이슈 ‘비혼 지나간 유행이고 요즘 다 결혼한다'의 현실 365 10:34 23,363
142100 기사/뉴스 한국서 유독 많은 쌍둥이 출산…산모·태아 건강에 '경고등' 56 10:20 3,861
142099 기사/뉴스 '일회용 컵값' 따로 낸다…보증금처럼 돌려주지 않아 195 10:17 8,316
142098 기사/뉴스 샤이니 키, 늦었지만 설명했고 사과했고 멈췄다 501 10:12 22,339
142097 기사/뉴스 “일본女 결혼해서 일본 갈래”…‘탈조선’ 韓남성들, 이유 봤더니 361 09:42 16,532
142096 이슈 아내 아일린의 작품을 훔치고 착취해서 성공한 조지 오웰 381 09:23 39,387
142095 기사/뉴스 대통령 앞에서 "한의학 과학적 입증 힘들어"…정은경 발언에 난리난 한의사들 320 09:16 21,543
142094 이슈 25년 서울시 9급 남자 신입 연봉 582 08:32 38,170
142093 기사/뉴스 '저속노화' 정희원, 사적 교류 있던 여성에 스토킹 당해 410 08:05 45,773
142092 기사/뉴스 [단독] 윤보미, 라도와 내년 5월 결혼…에이핑크 15주년 '겹경사' 275 08:01 59,141
142091 기사/뉴스 [단독] "아내·여친 능욕 신작"…'N번방 그 이상' 패륜 사이트 211 07:50 20,547
142090 기사/뉴스 [단독]이채민·타잔·도운·카더가든, 나영석PD 새 예능 499 06:31 60,304
142089 기사/뉴스 청각·지적 장애인 아내를 감금해서 굶겨 죽인 50대 한국 남성 징역 2년 452 02:53 42,792
142088 이슈 재평가가 시급한 쿠팡 관련 더쿠 글 213 01:56 84,328
142087 정치 민주당 사람들 발언 전부 칼차단 하는 이재명 대통령;;; 58 01:21 8,883
142086 이슈 핫게 보고 찾아본 박나래 키 비교 기사 제목들 298 00:58 70,110
142085 기사/뉴스 [단독] 쿠팡 노동자 사망하자…김범석이 남긴 충격 대화 437 00:45 60,846
142084 이슈 남자 중요부위 절단한 여자는 징역 15년 여자 떨어뜨려 숨지게 한 남자는 징역 4년 한국 남자들이 "법은 여자한테 유리하다"고 억울해하는데 법이 여자한테 유리한 나라는 어느 나라인거지.twt 289 00:43 32,660
142083 정보 네페 51원 82 00:05 7,072
142082 이슈 일본의 차세대 국보급 미남 1위에 뽑힌 이와세 요지 553 00:03 70,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