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결혼식 축의금 13,000원 낸 친구
75,983 392
2025.12.16 21:04
75,983 392

[ 축의금 만삼천원 ]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 장수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 이철환 『곰보빵』중에서 

목록 스크랩 (16)
댓글 392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벨레다X더쿠💚] 유기농 오일로 저자극 딥 클렌징, <벨레다 클렌징오일> 더쿠 체험단 모집! 236 12.15 23,915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313,25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0,981,07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351,65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308,765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07.22 1,007,09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0 21.08.23 8,452,085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5 20.09.29 7,379,806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89 20.05.17 8,577,11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2 20.04.30 8,467,34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276,822
모든 공지 확인하기()
1632122 이슈 콘서트에서 멘트하는데 관객이 다른멤버한테 시선을 뺐겼을때👀 15:24 89
1632121 이슈 아빠 차 살짝 긁었는데 어떡해? 23 15:20 1,069
1632120 이슈 샤이니 키 인스타 88 15:20 5,597
1632119 이슈 느낌 좋은 샤이니 민호 핀터레스트 사진 2 15:18 293
1632118 이슈 이 배우 댄스 가수 활동 했던거 얼마나 아는지 궁금함 17 15:18 681
1632117 이슈 갤럽 소식 들은 아이유 반응.. 12 15:15 1,307
1632116 이슈 르세라핌, 일본 오리콘 연간 차트서 K팝 걸그룹 최고·최다 랭크 2 15:11 142
1632115 이슈 해외에서 요즘 한국이 이렇다고 욕먹고 있는 영상인데 145 15:06 12,731
1632114 이슈 1에서도 칼 같았지만 2에서는 그 이상인 것 같은 심사위원 7 15:04 1,317
1632113 이슈 올데프 베일리 우찬 쇼츠 업로드 - 언제나 I take that risk 2 15:01 116
1632112 이슈 어제자 기네스 펠트로 & 콜드플레이 크리스 마틴 딸 애플이 18 15:01 1,917
1632111 이슈 몬스타엑스 주헌 1월 솔로 컴백…2026년 스타쉽 첫 주자 [공식] 8 14:59 182
1632110 이슈 CHAT GPT가 학생들을 망치고있는중... 14 14:59 2,190
1632109 이슈 소수 매니아층이 있다는 특이 식성 265 14:55 12,614
1632108 이슈 나인우 이전 스타일리스트가 올린 글 24 14:53 6,315
1632107 이슈 잡곡을 싫어하진 않는데 맛의 존재감 튀면 얄짤없이 퇴출시키는.. 밋밋한 밥을 좋아하는 사람들 32 14:50 1,269
1632106 이슈 時裝 LOFFICIEL China 잡지 화보 찍은 SMTR 슴 연습생들 1 14:49 330
1632105 이슈 섹트 DM 성장서사...... 45 14:49 3,564
1632104 이슈 알라딘 서점 현재 점검중 (오후 13시-16시) 사이트 이용 불가능 9 14:47 590
1632103 이슈 로마 콜로세움에 지하철역 C선 새로 오픈!! 4 14:46 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