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상'은 완벽한 미학으로 평가 받는다. 신체 곳곳에 숨어 있는 황금비율, 골격과 근육 라인은 물론 핏줄까지 표현한 디테일, 그리고 '인간은 신의 완벽한 형상'이라는 르네상스 사상까지, 우리는 지금까지도 조각같이 잘 생긴 외모를 빗대어 '다비드상'이라 말한다.
조각은 두 개의 결과물을 낳는다. 다비드상의 본질은 하나의 대리석이다. 하나의 결과는 예술로 남아 지금까지 찬사를 받고 있다. 다른 결과물은 바로 대리석에서 나온 파편들이다. 조각을 위해 불가피하게 제거된 부산물에 시선을 두는 이는 드물다. 분명 그 파편 또한 예술을 위한 한 부분이었을텐데, 그저 쓰레기로 치부되어 돌가루로 사라진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조각도시'의 '안요한'(도경수)도 조각을 한다. 표면적인 직업은 대한민국 최고 보안 업체의 대표로 재벌에 준하는 권력과 재산을 쥐고 있다. 그는 작게는 기괴한 형상의 오브제를 조각하고, 크게는 우리 도시를, 즉 사회를 조각한다. 요한은 '대한민국 !% 권력자를 위한 면죄부'라는 예술품을 만든다. '범죄'라는 재료에 '누명'이라는 정을 두고 '조작'의 망치를 휘두른다. 그리고 이 예술은 '피해자'라는 파편을 생성한다.

일종의 창조주다. 요한은 자신의 예술품을 위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선택한다. 이는 누군가에겐 생사의 기로가 된다.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완성된 조각처럼 아름답다. 매끈하고 논리적이고 흠이 없다. 그러나 그 완성 뒤에는 말 없이 사라진 사람들, 부서져버린 진실, 바닥에 쌓인 돌가루 같은 희생자들이 있다.
'박태중'(지창욱)은 요한의 창조물이다. 허나 조각 후 남겨지는 예술품이 아닌 버려지는 파편 쪽이다. 누구보다 선량한 청년이건만, 하루 아침에 강간살인마가 된다. 그 순간 친절했던 사회는 자신에게 침을 뱉는다. 단순한 우연의 오해인 줄 알았는데, 철저한 악의에 조작된 누명을 썼다. 대중들의 시선은 정교하게 깎여진 범죄 조각에 쏠릴 뿐, 깎여나간 파편은 쓰레기라 말한다. 그렇게 태중의 삶은 돌가루처럼 부서져 감옥이라는 거대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조각도시'의 시작은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조작된 도시'부터다. 원작은 물론 '모범택시' 시리즈의 각본가인 오상호 작가가 기존의 세계관을 확장, 12부작의 드라마로 새롭게 매만졌다. '조각도시'가 인기를 끌면서, 원작 영화까지 OTT 플랫폼에서 역주행을 하며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른바 올바른 리메이크의 일례다.

고무적인 건 전체적인 완성도다. '완전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손색이 없다. 전작이 제한된 러닝타임으로 인해 액션이나 추격신 같은 장르적인 재미에 치중했다면, 이번 디즈니 오리지널에선 길어진 타임라인 위에 여러 캐릭터 간의 관계를 풍성하게 표현한다. 덕분에 서사의 개연성이 더해지고, 누명 스릴러에 필요한 요소들이 강화된다.
무엇보다 누명 스릴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조작되는 과정이 치밀해졌다. 태중이 여자친구를 비롯해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면 당할수록 작품의 긴장은 더해진다. 태중의 처지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마다 시청자의 가슴 속 불안은 더욱 커진다. '나에게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납득됐을 때 '조각도시'가 가진 누명 스럴리의 매력이 시작된다.
태중의 수감 생활은 그 몰입을 위한 화룡점정이다. 여러모로 작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억압과 폭력 속에 돌가루처럼 부서졌던 태중이지만, 결국 심경의 반전을 이루면서 리벤지 스릴러의 서막을 연다. 또한 아군인 죄수 '노용식'(김종수)과 교도관 '양철환'(김재철), 빌런인 '여덕수'(양동근)와 '도강재'(음문석)와의 관계도 쌓아간다. 이후 태중의 행동이 개연성을 갖추는 과정이다.

다만 원작에 없는 시퀀스 '레이싱 게임'에선 다소 고개가 갸웃해진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연상되는 장면인데, '글로벌 시청자를 겨냥한 포석이 아닐까'라는 의구심까지 피어오른다. 소중하게 쌓아왔던 장르의 결이 급변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않아도 좋다. 박태중의 다음 스텝을 위한 합리적인 포석이다. 제작진의 노고가 돋보이는 부분이니 마치 안요한처럼 관객의 입장에서 지켜봐도 좋을 일이다.
그렇게 '조각도시'는 누명 스릴러, 그리고 리벤지 스릴러의 정석을 밟아간다. 그 배경엔 지창욱이 서있다. 이미 충분히 흥행했던 원작의 주인공이었기에, 쉽사리 선택할 수 없던 이번 작품이었을 터다. 같은 캐릭터이기에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는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창욱은 과감하게 기존의 조각 위에 새로이 망치질을 가했다. 덕분에 박태중은 '조작된 도시'의 주인공 '권유'보다 더 애처롬고, 더욱 절박하게 자신의 가혹한 삶을 이겨내고 있다.
빌런에 도전한 도경수는 다소 아쉽다. 연기는 충분한데, 외적인 요소가 빌런의 위압과 거리가 있다. 그동안 쌓아왔던 똑바르고 모범적인 청년의 이미지가 방해가 되는 모양새다. 안요한이 상당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는 것도 페널티가 됐다. 그럼에도 기존의 빌런과 다른 분위기가 표현됐다는 것은 분명 도경수표 빌런의 매력이며,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조각도시'가 남겨둔 에피소드는 단 두 편이다. 불안한 것은 누명 스릴러의 엔딩은 종 잡을 수 없다는 지점이다. 진실이 밝혀지고, 권선징악으로 귀결되더라도 주인공의 말로가 꼭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누명 스릴러 '오인'(누명 쓴 사나이)의 주인공 '매니'의 삶은 진실과 별개로 심하게 파괴됐다. 영화 '골든 슬럼버'의 경우 일본 원작과 한국 리메이크작의 결말이 판이하게 달랐다. 현실성이 있어야 재미있을 장르이기에, 엔딩 역시 같은 결을 취하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하여 '조각도시'의 엔딩 역시 방심할 수 없다. 태중의 고생을 아는 시청자 입장에서야 당연히 해피엔딩을 바랄 것이다. 허나 태중의 삶이 예전처럼 행복해지기엔, 현실의 벽이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결국 '조각도시'의 세계는 허구의 산물, 영화나 드라마 같은 극적 결말이 있다해도 욕할 사람은 없다. 조각의 부서진 파편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모아 자신의 조각을 빚어내고 있는 태중의 남은 활약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계속 응원하며 지켜볼 필요가 있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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