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관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시민이 건넨 편지를 읽는 모습('25.8.17)
지난 8월 17일,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독립군'을 관람하기 위해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이 대통령에게 자신을 '유족'이라고 소개한 시민이 다가가 편지를 건넸습니다. 시민의 편지를 받아 든 이 대통령이, 영화 상영을 위해 조명이 꺼지기 전까지 편지를 펼쳐 유심히 읽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이 편지를 건넨 사람은 김성진 씨. 30년 전 경비교도대원으로 군 복무를 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 김성철 일교(일병)의 여동생입니다.

고 김성철 일교('23.12.23 뉴스데스크 「26년 만에 순직 인정됐지만‥보상금으로 또 '눈물'」)
고 김성철 일교는 육군에 입대한 뒤 경비교도대로 차출돼, 마산교도소에서 복무하던 지난 1995년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교도소 측 사고 사례 자료에는 고인이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만 남아 있었는데, 지난 2021년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인이 군 복무 당시 애인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치약·반합 뚜껑에 머리 박기'를 비롯한 구타와 욕설 등 숱한 가혹행위를 당했던 것으로 조사된 겁니다. 이런 괴롭힘을 묵인하고 방관한 부대의 관리 소홀도 김 일교가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판단돼, 고 김성철 일교의 '순직'이 인정됐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559호 법정. '고 김성철 일교의 유가족들에게 국가가 6억 원을 배상하라'는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살아있었다면 올해로 쉰둘.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듯 쓸어내렸습니다.
소송을 도맡아 끌어온 김 씨 역시 기쁨보다는 깊은 안도감과 먹먹함이 먼저 찾아왔다고 합니다. 김 씨는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긴 시간 동안 오빠는 '약해서 죽은 병사'라는 오명 속에 갇혀 있었다"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그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되레 법무부는 1995년 김성철 일교의 사망이 언론에 보도되자 "실연·열등감에 의한 자살인 듯"이라는 자료를 내는 등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기기까지 했습니다(해당 자료는 현재도 웹상에 남아 있습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한 군인이 주검으로 돌아왔다면, 누군가는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 김성진 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1년 반 만에 나온 법원의 결정은 사실상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유족에게 도움이 됐던 건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기록이었습니다. 약 4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 '나 역시 고인과 함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선·후임병들의 구체적이고 방대한 진술 등이 담겨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배상 책임 인정과 고인의 명예 회복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제 남은 건 국가의 항소 여부입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강석민 변호사는 "법원이 고인의 사망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한 만큼, 소송을 담당해 온 법무부도 이를 인정하고 항소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이렇듯 김성진 씨 같은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줬던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2023년 9월 법으로 정한 활동 시한이 종료되면서 문을 닫았고,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조사 관련 업무는 국방부가 전담하게 됐습니다. '군에서 발생한 사고를 군이 객관적으로 조사할 수 있겠냐'는 의문 부호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습니다. 군 사망 유가족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움을 품어왔던 김 씨가,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를 다시 설치해 달라'며 이 대통령에게 직접 쓴 편지를 건넨 까닭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특히 군 사망사고 유가족들에게는 '지연된 정의'라도 실현되는 게 중요하지 않을지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고 김성철 일교를 비롯한 군 사망 피해자들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홍의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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