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위한 공부에 사용하겠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중앙도서관에서 ‘장학금 수여식’이 열렸다.
이 장학금은 지난 5월 아흔 살을 넘긴 한 어르신이 경희대에 남기고 간 5000만원으로 만들어졌다. 거동이 불편해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본관을 찾아온 어르신은 지나가던 교직원을 붙잡고 “기부를 하고 싶다”며 배낭을 열어 보였다고 한다. 어르신이 배낭에서 꺼낸 비닐봉지 안에는 5만원권 1000장이 신문지에 돌돌 싸여 있었다.
어르신은 “아끼고 아껴서 모은 이 돈을 제대로 써줄 곳이 학교라고 생각해 경희대로 왔다”며 “많이 배우지 못한 게 늘 한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써줬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했다. 당시 경희대 대외협력처 직원들은 이름을 묻고 사진 촬영도 요청했지만, 어르신은 “동대문구 회기동에 산다”는 사실만 알려주고 떠났다. 그래서 할머니의 5000만원은 ‘회기동 할머니 장학금’이 됐다.

경희대는 할머니 바람대로 어려운 형편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50명 선발해 20일 처음이자 마지막 장학금 수여식을 열었다.
늘 생활비가 빠듯했던 최보라(22·조리·푸드디자인학과 2학년)씨는 100만원이란 여윳돈을 처음 만져봤다. 아버지와는 수년 전 연락이 끊겼고 어머니 혼자 고등학생 동생을 키우는 상황이라 최씨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공부를 하고 있다. 피자집, 카페 아르바이트에 과외까지 하면서 월 160만원을 벌어도 월세와 식비를 내고 학자금 대출을 갚은 뒤 할아버지 용돈까지 드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고2 때 산 조리복이 해지고 구멍이 났지만 바느질로 꿰매 입고,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받은 패딩이 찢어져 입을 만한 겨울옷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장학금으로 조리복과 패딩을 새로 장만하고, 위생사 국가고시 시험비도 냈다”면서 “얼굴도 모르는 학생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 준 할머니처럼 나누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장학금 수여식에서 회기동 할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할머니께서 주신 장학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제가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됐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이겨내는 멋진 어른이 되겠습니다.”
박장산(23·경제학과 3학년)씨는 지난 10월 7급 공무원 2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기쁨도 잠시, 면접 대비 강의 수강료와 교재비가 30만원에 달하는 걸 알고 고민에 빠졌다. 퇴직한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긴 어려웠다. 그때 장학금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다. 박씨는 “장학금 덕분에 걱정 없이 강의와 교재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7급에 합격하면 행정고시에 도전할 계획인데 그때 남은 장학금을 쓰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몸이 안 좋은 어르신께서 큰 돈을 본인이 쓰지 않고 장학금으로 내놓으신 걸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다”며 “공무원이 돼서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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