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해서라도 수익 극대화 욕심…신용대출 일주일새 1조2000억원 급증
2021년 빚투 악몽 재현 우려…정부·여당은 되레 증시 참여 노골적 독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000선을 돌파면서 증시 랠리가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개미투자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도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주가 급등 경험의 자신감에 더해, 나만 뒤처질 수 있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까지 더해지면서 대출을 이용해서라도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투기성 심리에 불이 붙은 것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를 바탕으로 우상향 장세를 점치는 전망이 아직 우세하지만, ‘코스피 3300·코스닥 1000’ 돌파 뒤 급락해 오랫동안 개미투자자들을 괴롭혔던 2021년 빚투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늘고 있다.
직장대출에 신용대출까지 ‘빚투’ 열기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7일 기준 국내 증시 신용융자 잔액은 26조2165억원으로 연초(15조6823억원) 대비 10조원 넘게 늘었는데, 이는 종전 최고치였던 2021년 9월 25조6560억원을 5000억원 넘게 웃돈다.
신용융자 잔액은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금액으로, 빚을 내서라도 주식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심리가 커질수록 그 규모가 커진다. 주가 우상향에 대한 시장과 투자자들의 확신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지만, 급락기 투자자들을 빚쟁이로 내몬다는 점에서 그만큼 위험도 크다. 특히 대출 만기 상환에 실패하는 경우 증권사가 보유 주식을 강제로 매도하는 반대매매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 전날 종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매도돼 주가 하락의 뇌관이 되기도 한다.
낙관론 뒤 등장했던 급락장 이번에는 다를까
최근 시장 움직임을 보면 외국인이 시장에 주식을 던지고 나면 저가 매수를 노린 개인이 이를 고스란히 떠받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차익 실현에 나선 외국인은 이달 들어 불과 5거래일 만에 7조2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는데, 개인투자자는 7조4000억원 순매수로 이를 모두 받아냈다. 최근에는 외국인과 개인이 모두 팔자에 나선 가운데 이례적으로 기관이 물량을 모두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이지만,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11월 들어 하루를 제외하고 나머지 거래일 모두 순매도를 기록 중이다.
‘직진 앞으로’ 외치는 정부·여당…‘금투세’는 눈감아
개인의 빚투 규모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지만 정책 당국은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코스피 5000 도약’이 국정과제인 정부·여당이 코스피 4000 돌파에 환호하는 가운데, 금융·재정 당국에서는 오히려 노골적인 국내 증시 참여 독려가 이어지고 있다.
자본시장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위원회의 권대영 부위원장은 앞서 한 라디오 방송에서 ‘청년층 빚투 증가가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동안 너무 나쁘게만 봤는데 레버리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가 빚투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사과했다.
재정 당국 공식자료에서는 추가 매수를 부추기는 미국 월가의 격언이 등장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0월 28일 배포한 ‘경제동향 설명자료’에는 코스피가 4000선을 돌파했지만,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며 ‘바이더딥(Buy The Dip)’ 전략이 언급됐다. ‘바이더딥’은 가격이 일시적으로 하락했을 때, 이를 저렴한 가격에 매수하는 투자 전략을 의미하는데, 정부는 해외투자은행들이 한국 시장에 대해 ‘바이더딥’ 전략으로 접근하라는 주장을 내놨다며, 코스피의 상승 여력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썼다. 정부가 증시에 대한 낙관론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이어서 시장에서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코스피 4000 돌파를 두고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성과”(박수현 수석대변인),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일궈낸 성과”(전현희 최고위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쳐온 민주당의 ‘자본시장 개혁’이 이뤄낸 성과”(김현정 원내대변인) 등 환호가 이어지는 중이다.
급등세가 멈추고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증시를 추가 부양할 소재를 쏟아내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4000선을 반납한 직후 여당에서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당초 정부안(35%)보다 10%포인트 더 낮춘 25%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에서도 “일반 투자자 장기 투자 시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 강구”(이재명 대통령), “투자 기간이 길수록 혜택이 커지는 구조로 제도 개편”(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추가 당근책을 시사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를 이유로 폐지한 금융투자소득세는 주가 급등에도 논의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강행하는 것이 맞지만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며 금투세 폐지를 결정했다. 당시 당내에선 “코스피가 3000대 위로 안착하고 4000대를 가게 되면 시장 참여자들도 기꺼이 새로운 세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소영 민주당의원)이라며 금투세 폐지 목소리가 컸다. 코스피가 4000선을 넘어선 지금 금투세 도입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금투세 유보론자들도 코스피가 4000까지 안정적으로 도달했을 때 도입하자고 했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해소된 상황이라면 합리적인 금투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코스피 5000시대를 전망하면서도 종합적인 과세 개편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소영 의원에게 금투세 도입 시점과 자산 과세 강화의 필요성 등을 공개 질의했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 구윤철 부총리는 11월 1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금투세 재도입 가능성과 관련, “그 부분은 벌써 국회에서 결론이 났다.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증시 부양이라는 정부의 성과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데다 중도보수 정당 표방 뒤 얻은 표심을 놓치기 싫은 유혹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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