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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자 지시로 전후 사정도 모르고 출동한 건데, 낙인 찍힐까 두렵다.”
13일 경정급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11일 이재명 정부가 49개 중앙행정기관에 ‘헌법 존중 정부 혁신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내란 참여·협조 공무원을 색출하겠다고 밝히자 불안감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상부의 지시를 매 순간 위헌·위법인지 판단한 뒤 따를지, 따르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하급자가 과연 있느냐”고 했다.
TF 설치 소식에 공직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특히 합동참모본부·검찰·경찰·총리실·기획재정부·외교부·국방부 등 정부가 밝힌 12개 집중 점검 기관의 분위기는 크게 가라앉았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조직 개편 등 미뤄둔 현안도 많은데 또다시 ‘청산 바람’이 불어 다들 몸을 낮추는 분위기”라며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12·3 비상계엄 직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계엄 선포 배경을 설명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주미대사에게 보낸 정황이 최근 드러나며 더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외교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계엄 해명’ 공문이 내부 제보로 드러난 것이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
12·3 비상계엄과 직접 관련된 국방부는 크게 술렁이는 분위기다. 전직 군 관계자는 “현역들은 비상계엄과 관련해 당연히 어떤 말도 못 할 것”이라며 “계엄 당시 특정 직책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란 공범으로 모는 건 정치 보복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말했다.

공직사회엔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TF때 앓았던 홍역을 다시 치러야 하느냐는 자조도 흐르고 있다. 경제 부처 한 선임 사무관은 “‘적폐 청산’ TF때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편이 갈리고 분위기가 안 좋았다”며 “그때 이후로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고, 복지부동하는 경향이 심해졌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군 당국자는 “문재인 정부 때 한번 겪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그때도 공직사회 내부에서 서로 상처를 주는 등 후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공직사회가 TF에 예민한 배경엔 인사 문제도 있다. 정부는 TF에서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 뒤, 참여·협조가 확인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기재부 내부에선 조직 개편과 함께 ‘추경호 라인’ ‘최상목 라인’으로 언급되는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최상목 전 부총리에게 전달한 쪽지를 넘겨받은 것으로 지목된 기재부 전 차관보는 최근 인사에서 결국 자리를 비웠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최 전 부총리와 가까웠던 국장급 이상은 주요 보직에 중용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경제 부처 핵심 보직을 맡았던 한 과장은 최 전 부총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외 파견 작업이 중단됐다는 얘기도 있다. 한 고참 사무관은 “당시 상사가 누구였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나”라고 말했다.
TF가 각 부처별로 설치하겠다는 내란행위 제보 센터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경찰 내부에선 총경 등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제보를 빙자한 허위 투서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 한 총경급 경찰은 “경쟁자를 제칠 기회로 여겨 허위 제보를 하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조사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보관하고 나중에라도 인사 참고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인사 조치를 면하더라도, 허위 제보가 접수되면 향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도 공직 사회엔 퍼져 있다.
TF가 공직자들의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 헌법에 명시된 영장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법무부 파견 검사는 “압수 영장은 범죄 소명이 있어야 나오는 건데, 계엄과 관련된 부서이거나 제보만 있으면 무조건 (휴대폰을) 보겠다는 것 아니냐”며 “비협조적이면 직위 해제하겠다는 것 또한 과하다”고 비판했다.
전 정부 인사로 분류되지만 이번 인사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평가받는 한 관료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언제 다시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