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만이 살 길… 부실 브랜드 접고 수입 브랜드로 생존 모색
22년 차 엠비오 접고 수트서플라이 도입한 삼성물산, 수입 브랜드가 해법?

올해 22년차 엠비오는 한때 이종석, 정일우 등 한류스타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했지만, 다음 달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사진=엠비오
“이대로만 가다오.”
올해 패션업체들의 사업목표는 현상유지다. 이미 빠질 대로 빠진 매출이지만 이대로만 유지해도 좋다는 것이 공통된 입장이다.
장기불황과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면서 업체들은 인원 감축과 브랜드 철수 등 특단의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돈 안되는 사업은 과감히 접고, 될만한 사업에만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한 패션업체 임직원은 “워낙 불경기라 눈치만 보고 있어요. 신사업 계획은 엄두도 못 내죠. 요즘 같아선 뭔가를 해보고 싶어도 성공 여부가 불확실해 선뜻 나서기 어려워요. 그저 소비심리가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 패션업계 구조조정 본격화… 대기업부터 아웃도어까지 예외 없다
지난해 12월 현대백화점그룹이 자회사 한섬을 통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하면서 국내 패션시장은 강자들의 전쟁터가 됐다. 특히 롯데·신세계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들이 패션사업 비중을 확대하면서 중견패션기업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패션 대기업으로 꼽히는 삼성물산 패션부문, LF, 이랜드그룹 등도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패션시장의 흐름은 더 예측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패션부문장 이서현)은 다음 달 남성복 엠비오, 패션 잡화 브랜드 라베노바의 사업을 철수한다. 또 로가디스 그린, 로가디스 컬렉션을 각각 로가디스 스트리트와 갤럭시에 흡수시켜 매출이 저조한 남성복 부문의 몸집을 줄인다. 빈폴 키즈 역시 남성복 빈폴의 키즈 라인으로 흡수시킨다. 대신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구호, 르베이지 등 여성복 사업과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에 주력한다. 특히 이들 브랜드의 글로벌화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 5일 수트서플라이 청담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다. 수트서플라이는 가성비가 높아 ‘수트계의 이케아’로 불린다./사진=수트서플라이 제공
올해 론칭 22년 차인 엠비오는 한때 800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제일모직의 대표적인 수익 사업이었지만, 최근 4~5년간 매출 부진을 겪으며 2015년에는 매출이 480억 원으로 떨어졌다. 오랜 세월 국내 남성복의 시그니처 브랜드 역할을 했던 엠비오를 중단하면서,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내놓은 대안은 비슷한 컨셉의 네덜란드 남성복 수트서플라이다.
◆ 삼성물산, 22년 장수 엠비오 접고 수트서플라이 론칭… 수입 브랜드가 답?
2000년 론칭된 수트서플라이는 젊은층을 타겟으로 한 남성 캐릭터 브랜드로, 가성비와 고급화 면에서 높은 평을 받으며 ‘수트계의 이케아’로 불리고 있다. 지난 5일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수트서플라이에, 한국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지 삼성물산은 물론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LF(대표 구본걸)도 지난해 여성복 질바이질스튜어트와 남성복 일꼬르소의 백화점 매장을 철수하고, 이를 온라인 브랜드로 전환했다. 효율이 적은 여성복과 남성복을 접고 헤지스, 라푸마 등 트레디셔널과 스포츠 사업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올 상반기 질스튜어트 스포츠를 론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대표 박동문)은 올해 중순,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진다. 주력 사업인 코오롱스포츠, 시리즈, 쿠론 등의 수익성이 좋지 않아 사옥 이전과 함께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향세를 겪고 있는 아웃도어 업계도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었다./사진=이젠벅, 노스케이프
중견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하향세를 겪고 있는 아웃도어 업계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네파는 데일리 아웃도어 컨셉의 이젠벅을 접고 네파와 네파 키즈에 집중하기로 했다. 패션그룹형지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케이프를 중단했고, 밀레는 엠리밋을 스포츠 브랜드로 새단장했다. LS네트웍스는 프로스펙스만 남겨두고 잭울프스킨, 스케쳐스 등을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전체 직원의 절반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비효율 사업을 철수한 기업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해외 브랜드 판권 수입에 눈을 돌리고 있다. 불황과 소비심리 여파에 크게 반응하는 패션업계에서 해외 브랜드는 경기를 덜 타고 투자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한 현대백화점그룹도 국내 브랜드보다는 타미힐피거와 클럽모나코의 인수에 더 관심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입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패션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고가와 저가로 뚜렷하게 갈리면서 애매한 포지션을 지닌 중가 브랜드로는 생존이 어려워졌다.
◆ 수입 사업 확대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해외 브랜드의 시장 개척만 돕다 끝날 수 있어
토종 스포츠 브랜드 EXR을 전개하던 리앤한은 EXR의 사업을 접고 해외 명품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택했다. 2001년 설립 당시 캐포츠(캐릭터 스포츠)라는 신분야를 개척하며 급부상한 EXR은 2011년 1500억 원으로 매출 정점을 찍은 후 2014년 매출이 800억 원대까지 떨어졌다. 회사 측은 해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영입하는 등 체질개선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승산이 없자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 대신 벨기에 명품 델보와 고가 스니커즈 브랜드 골든구스, 프리미아타 등으로 수익성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여성복 미샤로 유명한 시선인터내셔날은 칼리아, 캘번, 르윗을 철수한 데 이어 독일 리빙 브랜드 동키를 수입해 라이프스타일 사업에 도전했으며, 아이잗바바를 전개하는 바바패션 역시 블루마린, 에세셜, 안토니오마라스 등 수입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수입 사업 확대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해외 브랜드의 국내시장 개척을 돕는 역할만 하다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랜드와 푸마의 스토리가 좋은 예다. 1994년 푸마를 도입한 이랜드는 당시 100억 원대였던 브랜드를 2007년 2천 억원의 외형으로 키웠다. 그러나 2008년 푸마가 직 진출을 선언하면서 사업을 고스란히 빼앗기게 됐다. 이랜드는 그해 매출이 24% 급감했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자체 브랜드를 새로 론칭해 시장에 안착시키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수입 브랜드는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인지도가 높아 마케팅 비용도 적게 든다. 수입 브랜드 확보는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