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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예는 곧 사회 질서였고,
사서오경 중 예기는 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경전이었습니다.
높은 자일수록 예를 먼저 지켜야 한다.
과거시험의 핵심 과목이기도 했던 예기
예로써 다스린다는 통치 철학은
그런 겸손과 모범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절대 권력의 왕도 왕실 공간을
아무렇게나 드나들 순 없었고
오로지 예법과 의례, 절차에 따라야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곳곳엔 왕이 예법을 어기자
신하들이 간쟁을 하고,
왕이 스스로 시정하는 일화도 나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예의와 절차, 규정이 존재합니다.
특정 권력자가 즉흥적 의지로
국가 문화재를 열고 닫을 수 없습니다.
문을 열라.
명성황후의 침전이자, 시해를 당한 곳인
곤녕합 앞에서 이렇게 말한 그 부부는
닫힌 문을 열게 해 들어갔다고 합니다.
높은 자일수록 예를 먼저 지켜야 한다.
예기의 관점에서 이런 즉흑성은
곧 무도함으로 간주됩니다.
앵커 한마디였습니다.
오대영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