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여제 아닌 황제’ 신인감독 김연경이 보여주는 ‘지도자로서의 여성’
9,377 19
2025.10.21 18:21
9,377 19

MBC <신인감독 김연경> 포스터. MBC 제공

MBC <신인감독 김연경> 포스터. MBC 제공

 

 

한국 국적의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때 온라인상에서 퍼지는 자조가 있다. “귀한 분이 어쩌다 이런 누추한 곳에.”

 

영웅은 고난을 이겨내는 운명이라지만 튀는 존재를 찍어 누르는 한국의 문화, 비리와 친목으로 곪아가는 각종 협회 및 재단의 악행은 질이 낮고 소모적이다. 그럴수록 영웅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미운 짓 골라하는 조국과 장르에 헌신해 범인의 가슴을 울린다. 별 하나에 조수미, 별 하나에 김연아, 별 하나에 김연경, 아, 새롭게 빛나는 별에 안세영…. 2024~2025 V 리그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김연경은 남녀 불문, 명실상부 배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이며 화려한 커리어의 소유자다. 스타성도 뛰어나 각종 예능에서 활약하며 여자배구의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국가대표를 우선시한 김연경에게 소속 구단이 저지른 만행이나, 언론 및 배구 관계자들이 퍼부은 가혹한 비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배구협회가 20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배구 대표팀에 김치찌개 회식을 시켰고 이에 분노한 김연경이 사비로 선수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는 일화는 배구 문외한에게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2025년 가을, 김연경은 배구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이하 <신인감독>·MBC)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값으로, 국내 4대 스포츠 중 유일하게 단독 예능과 2부 리그가 없고 팬덤이 작다는 평가를 받는 배구를 공중파 스포츠 예능에 꽂아 넣으면서. 김연경이 왜 이렇게 배구를 사랑해. 9월28일 첫방송된 <신인감독>은 현재 3화까지 방영되었으며, 시청률과 화제성 측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신인감독>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김연경은 신생 구단 ‘필승 원더독스’의 감독을 맡아, 프로 제8구단 창단에 도전한다. 원더독스는 7개 팀과 맞붙어 과반의 승리를 목표로 하며, 3패를 당하면 해체된다. 원더독스에는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 실업팀에 소속된 선수, 은퇴 후 다시 도전하는 선수들이 모였다. 엘리트 스포츠의 가혹함이야 종목 불문이지만, 육성과 재정비를 담당하는 2부 리그가 없기에 실패와 부진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다.

<신인감독>은 1화부터 원더독스 선수와 프로 정상급 선수의 연봉을 비교하고, 관계자들이 선수를 평가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매콤하게 시작한다. 우수하지 않으면 모욕하고 부당한 대우를 당연히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좌절하고 낙오하며 배구를 그만두려 했던 선수도, 유명한 프로였음에도 자신을 ‘애매하다’고 평가하는 선수도 결국 돌아왔다. 배구가 좋아서.

 

잃을 것 없는 원더독스에게 남은 것은 비상뿐이다. 실력보다 얼굴로 주목 받았던 이진이나 느리다는 혹평을 받았던 문명화는 원더독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표승주의 애매함은 신생 팀을 이끄는 경험과 배짱이 되고, 프로 무대 진출이 좌절됐던 윤영인은 김연경의 믿고 쓰는 카드로 등극한다. 언더독의 간절함, 성장서사. 한국인이 미치는 맛이다.

 

 

중략

 

흥국생명 시절의 김연경. KOVO 제공

 

조지프 캠벨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9)에서 전 세계의 영웅 신화를 분석해 영웅의 17단계라는 이야기 구조를 추출했다. 17단계가 모든 영웅서사에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태어남-부름-모험-역경-귀환’(입문-모험-귀환)의 과정은 동일하다.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이것을 영화 제작에 사용 가능한 12단계로 정리했다. 1단계, 주인공은 일상 세계에 있다. 선수 생활을 끝내고 일반인(?)으로 돌아간 김연경은 은퇴 후 살이 쪘다는 말로 능청을 떨며 등장한다(마치 특수부대 출신의 아버지가 평범한 나날을 영위하다가 갑자기 납치된 딸을 구하러 가기 직전처럼). 그리고 2단계, 모험으로의 부름. 김연경은 MBC로부터 배구 예능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는다.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던 김연경은(3단계, 소명의 거부) 곧 예능이라고 해서 대충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한다. 이후 조력자(원더독스의 선수들, 코치진, 매니저 등)를 만나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첫 관문으로서 고교 배구리그 우승자인 근영여고와 경기를 치르고, 감독으로서의 첫걸음을 뗀다. 이후 첫 패배와 무기력을 맛보는 등, 김연경에게도 고난과 역경이 닥친다.

 

이처럼 영웅서사와 성장서사가 교차하며, 언더독이라는 만능 소스를 쓴 <신인감독>은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원더독스 선수들의 성장서사는 여성들의 스포츠 예능이라는 점에서 <골 때리는 그녀들>(SBS), <운동뚱>(유튜브 채널), <무쇠소녀단>(tvN), <달려라 불꽃소녀>(tvN)의 계보 속에 있다. 또한 예능이지만 프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수준 높은 경기를 치른다는 점에서 <최강야구>(JTBC, 2022~)와도 결이 비슷하다.


그런데 <신인감독>이 다른 스포츠 예능과 구별되는 점은 바로 ‘지도자로서의 여성’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처럼 여성 선수들이 주축인 스포츠 예능뿐만 아니라 여자배구, 여자야구, 여자축구, 여자농구의 감독 또한 전원 남성이거나 대부분 남성이다. 지도할 자격과 권위를 지닌 여성은 왜 이토록 보기 힘든 것일까?

 

운동을 둘러싼 젠더적 제약 때문에 여성 운동 선수의 풀 자체가 적고, 여성을 지도자로 육성하는 인프라가 부재하며, 여성 지도자를 향한 강도 높은 검열과 낮은 신뢰 등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저 그런 선수들도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동안, 여성 감독은 ‘김연경 정도는 되어야’ 기회를 얻는 것이다. 김연경이 처음인데도 감독으로서 빛나는 것은 경이롭지만, 동시에 안타깝기도 하다. ‘신인감독’이 종종 ‘신(God)인 감독’의 말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우수해야, 여성 감독에게는 실패하고 헤맬 기회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뚫고 나올 수 있나 싶다.

 

이 여성 지도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표정과 태도는 <신인감독>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선수 시절부터 감독과의 충돌도 피하지 않고, 분하면 거침없이 욕을 내뱉는 모습으로 ‘식빵언니’라고 불린 김연경은 감독으로서는 또 다른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여성 감독이 매섭게 선수들을 질책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며 밀어붙이고, 묵묵히 선수를 응원하고, 예민해지거나 무뚝뚝하게 굴고, 서포트 역할을 맡은 남성(부승관 매니저)이 눈치 보는 모습이 주는 해방감이란.

 

여성은 어떤 정체성을 입고 어떤 업적을 이룩하든 여성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그 사실은 운동 선수마저 여성성의 틀에 묶어두었다. 배구계의 영웅인 김연경의 업적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우리 누나, 김연경>(SPOTV)인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았으며, 여성 운동선수를 조명한 <다큐 인사이트>(KBS)의 이은규 PD는 “과거 운동하는 여성을 다룬 다큐들을 보면, 꼭 여성 선수들이 수를 놓거나 뜨개질하는 모습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신인감독>의 공식 소개나 <나 혼자 산다>(MBC) 등의 미디어가 김연경을 ‘배구 여제’가 아닌 ‘배구 황제’로 부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지난하고 ‘유난스러운 이의제기’를 했던가.

 

만듦새를 놓고 보더라도 <신인감독>은 준수한 프로그램이다. 배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관련 지식을 적절하게 제공하는 방식이나 언더독과 성장을 다루면서도 신파로 빠지지 않는 연출, 월드 아이돌이지만 배구를 향한 열정으로 몸 사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세븐틴의 부승관 매니저와 김연경 감독의 케미, 세 번째 경기를 바로 한·일전으로 끌고 가는 패기 등은 숨가쁘게 날아다니는 배구공처럼 시선을 사로잡는다. 새로운 막이 열리는 여성 스포츠 예능의 세계, 김연경의 등에 업혀 배구에 빠져 보길 권한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10211432001

목록 스크랩 (2)
댓글 1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베지밀X더쿠🧡 베지밀 신제품 바나나땅콩버터쉐이크 꼬르륵잠금🔒 체험단 모집! 430 04.03 20,024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024,781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093,70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009,83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405,916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82,267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5 21.08.23 8,535,194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9 20.09.29 7,447,801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07 20.05.17 8,660,37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8 20.04.30 8,539,535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452,636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33720 정치 1년전 오늘 있었던 일 14:31 98
3033719 이슈 타짜 성대모사 40초 릴레이. 허간민이 하나됐던 몇안되는 순간임 14:31 162
3033718 유머 [KBO] 이상적인 리빌딩이라는 NC 내야진.jpg 14:27 548
3033717 유머 감독이 아무 한국말이나 하라고 시킴 6 14:26 792
3033716 이슈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경북 경산시 일대에서 음식 배달업에 종사하는 분이나 배달 대행 업체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7 14:24 989
3033715 이슈 아니 미피 신상 색조합 이거 꿀떡이잖냐!!! 15 14:24 1,675
3033714 이슈 드디어 만난 닮은 꼴 연예인,아이돌 조합 3 14:23 624
3033713 이슈 안성재셰프가 시영이에게 또... 7 14:22 1,644
3033712 유머 지나가던 행인이 리트리버 만져도 되냐고 물어봄 28 14:21 2,436
3033711 이슈 [자막뉴스] '썸'만 타다 끝났는데 집착 살해…"얼마나 더 죽어야" 절규해도 13 14:20 810
3033710 이슈 엄마 혼자 낳은 아들 12 14:20 1,663
3033709 이슈 아니 근데 솔직히 이렇게 키스하는 남자 어케 잊냐고;;;;;;;; 8 14:18 2,486
3033708 이슈 은하계 악명높은 빌런의 저주받고 꼬인 인생....jpg 8 14:17 958
3033707 유머 방탄소년단 뷔 틱톡 2.0 챌린지 (with우가팸) 6 14:16 812
3033706 이슈 대학생활도 대충하고 웹툰만 그리던 작가의 최후 23 14:13 2,439
3033705 이슈 헤일메리 PET 포스터 받았더염 24 14:11 2,153
3033704 이슈 서인영 각인시킨 건 초코송이 머리지만 이 때가 진짜 예뻤다는 사람들 많음...gif 7 14:10 2,742
3033703 이슈 입사 한달 차.... 5 14:09 1,001
3033702 유머 진짜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베이징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상디.onepiece 9 14:08 908
3033701 이슈 화장으로 사람을 못 알아보는 거.... 소설이나 웹툰적 허용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구나. 10 14:08 3,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