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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NYT 사설 "서구의 진보적 가치는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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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6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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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는 길을 잃었다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베를린 훔볼트대 교수
 
 
 
image.png NYT "서구의 진보적 가치는 붕괴했다"

 
계몽주의 이래 '진보'는 서구의 종교나 다름없었다. 과거를 넘어선 현재처럼,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야 한다는 믿음이 수 세기 동안 서구 사회를 이끌었다.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이 낙관론은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이런 생각에 '상실'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오늘날 이 거대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상실은 유럽과 미국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상실감은 1945년 이래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며 정치, 지성, 일상의 중심 화두가 됐다. 이제 문제는 상실을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더 많이, 더 좋게'를 향해 달려온 사회가 '더 적게, 더 나쁘게'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21세기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가장 극적인 상실은 환경 파괴다. 치솟는 기온, 극단적 기후, 사라지는 서식지는 인간과 자연 모두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현재의 피해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미래에 닥칠 파국에 대한 두려움, 이른바 '기후 우울감'이다. 심지어 기후 위기 대응책조차 상실을 요구한다. 한때 진보의 상징이었던 20세기 소비 중심 생활 방식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변화 역시 상실을 낳았다. 과거 번영을 누렸던 미국 '러스트 벨트'나 잉글랜드 북부 탄광 지대 같은 곳들은 이제 쇠락의 상징이 됐다.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20세기 중반의 낙관론은 역사상 아주 예외적인 막간극이었음이 드러났다. 탈산업화와 무한 경쟁은 사회를 승자와 패자로 나누었고, 수많은 중산층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여기에 유럽은 노령화 대륙이 됐다. 은퇴 인구는 계속 늘고 젊은 세대는 줄면서 사회 전체가 활기를 잃고 있다. 노년층과 그 가족은 삶의 여러 부분에서 상실을 고통스럽게 체험한다. 인구가 급감한 일부 농촌은 노인들만 남은 섬이 됐다.
 
유럽과 미국 전역의 공공 인프라도 약화됐다. 미국의 교육, 영국의 의료, 독일의 교통 시스템은 모두 한계에 부딪혔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제 기능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키웠다. 특히 대도시의 심각한 주택난과 비정상적인 집값은 중산층을 극심한 불안으로 내몰고 있다.
 
지정학적 퇴행도 심각하다. 냉전이 끝난 뒤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화가 승리하리라는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공세, 국제기구의 무력화는 자유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가 진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쟁과 폭력의 시대로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팽배하다. 이 또한 신뢰와 안보라는 무형의 자산을 잃어버린 경험이다.
 
물론 상실이 근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동성과 발전을 추구하는 근대 정신과 상실은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진보라는 근대의 종교는 상실감을 외면한다. 과학, 기술,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성장을, 자유주의 정치는 더 나은 복지를 약속한다. 중산층의 삶 역시 계속된 성장과 자아실현에 대한 기대 위에 세워졌다. 이처럼 상실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서구 근대성의 뿌리 깊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상실을 숨길 수 없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자 곳곳에서 상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래가 나아질 것이란 믿음이 사라진 사회에서 상실감은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일시적 시련이 아닐 수 있다는, 어쩌면 영원히 회복 불가능할 수 있다는 불안이 오늘날 위기의 핵심이다. 상실의 경험이 끝없는 진보라는 약속과 부딪치면서 사회 전반에 불만이 가득 찼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포퓰리즘은 쇠락에 대한 대중의 공포에 기댄다. "통제권을 되찾자"거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들은 상실에 대한 분노를 자양분 삼아 성장하지만, 결국 회복의 환상만 팔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상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포퓰리즘과 맹목적인 진보 신앙 외에 다른 길은 없을까.
 
첫 번째 대안은 '회복탄력성'의 정치다. 이 전략은 위기를 피할 수는 없지만,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보건 시스템을 강화하고, 국제 안보를 지키며, 주택 시장을 안정시켜 사회의 취약성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상실을 인정하되,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접근법이다.
 
두 번째는 상실을 '재평가'하는 전략이다. 상실을 잠재적 이득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환경 분야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 화석연료 기반의 생활 방식이 과연 진보였을까. 이를 포기하면 더 풍요롭고 지속 가능한 삶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진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개념 자체를 복지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바꾸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재분배' 문제다. 경제적, 환경적 손실이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면 정의롭지 않다. 이익뿐 아니라 손실 역시 사회 전체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 이것은 명백한 정치의 과제다.
 
그렇다고 이 전략이 모든 상실을 없앨 수는 없다. 1950~60년대의 산업사회와 동질적인 중산층은 영원히 사라졌다. 기후 변화 이전으로,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마지막 전략, 즉 상실을 '인정하고 통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심리치료처럼, 상실을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거기에 매몰되지도 않는 것이다. 부정은 분노를 낳고, 집착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대신 상실을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이야기 일부로 받아들여,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미래에 결정적이다. 정치가 계속해서 끝없는 성장과 발전만을 약속한다면, 배신감에 빠진 대중은 포퓰리즘에 기댈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상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 사회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며, 진보의 의미를 새롭게 쓰고 회복탄력성을 추구한다면,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사회의 연약함을 받아들이며, 상실을 민주주의의 일부로 껴안는 것이 오히려 활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한때 상실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이제는 상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기에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성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더 깊은 의미의 진보일 수 있다.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박사는 사회학자이며 현대 문화와 사회에 관한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베를린에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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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독자 반응
 
-이 글은 기후 변화와 출산율 감소라는 두 가지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 둘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다루지 않았다. 기후 변화는 출산율 감소의 주된 원인이다. 많은 사람이 기후 위기에 대한 정부의 무대응을 보며 아이들에게 암울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 출산을 포기한다. 지난해 지역 식당에서 옆자리 여성과 대화를 했다.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이사 왔다고 말하자 그는 이유를 물었다.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답하자 그는 즉시 이해했다. 그녀 부부도 같은 이유로 조지아 해안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다. 그는 해양 탄소 순환과 단세포 생물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기후 과학자였다. 그는 다가올 미래를 예측했기에 남편과 몇 년 전부터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고, 나는 바로 그 결정을 이해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사려 깊은 글이지만, 실제 쇠퇴보다는 현대 심리에 더 가깝다. 이제 서구의 삶엔 세계대전이 없고, 수명이 길어졌으며, 공기가 더 깨끗하고, 도시가 더 안전해지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이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우리는 내면의 고민으로 눈을 돌린다. 어려움이 없는 삶에서 많은 사람은 지루함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씨름한다. 오늘날 '기후 우울감'의 상당 부분은 실제 재앙이 아닌, 끊임없이 쏟아지는 종말론적 정보 속에서 비롯됐다. 역설은 더욱 깊다. 여성이 가장 큰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 가장 가난하고 전통적인 곳에서 출산율이 높다. 편안함과 안전은 승리일 수 있지만, 한때 진보에 대한 믿음을 지탱했던 갱신의 감각을 약화시킨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풍요 속에서 삶의 목적을 재발견하는 것일지 모른다. (루이지애나)
 
-레크비츠 박사는 질병을 정확히 진단했지만, 환자가 삼킬 수 없는 약을 처방했다. 그의 해결책인 회복탄력성, 재평가, 재분배, 통합은 그의 진단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하는 바로 그 요소, 즉 제대로 작동하는 제도, 교육받은 대중, 미묘한 사고를 위한 집단적 여유에 달려 있다. 교육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상실의 '인정 및 통합'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나. 이를 위한 기관이 약화되고 있는데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구축할 수 있을까. 주거 불안정과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진보에 대한 철학적 재정립을 어떻게 요구할 수 있나. 포퓰리즘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답을 제공하기 때문에 번성한다. 그들에게 '더 양가적인 서사'를 발전시키라고 하는 건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여유와 안전을 전제로 한다. 이는 의도치 않게 계급 구분을 드러낸다. 엘리트 지식인들이 위기 자체가 파괴하고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해결책을 제안하는데, 이는 최악의 상실로부터 격리된 사람, 즉 상실을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접근 가능한 해결책이다. 우리는 악순환에 갇혔다. 위기가 바로 그 해결책에 필요한 역량을 파괴하고 있다. 이 자기 생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갇힌 상태로 남을 것이다. (미상)
 
-이 칼럼니스트가 서구 세계의 상실로 정의한 것은 사실 나머지 세계에게는 이득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대영제국, 프랑스, 미국, 소련의 질식할 듯한 지배를 받던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기를 원하나. 그 나라 중산층의 번영이 소수 집단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시절, 빈곤 국가를 착취한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들이 항상 대규모 이주민 유입을 경험했다. 부당하게 얻은 번영 덕분에 그들을 흡수하고 착취해서 허드렛일에 고용함으로써 생활비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어떤가. 이제 서구 부의 원천이었던 추악한 공장을 가진 많은 산업 기반이 사라졌다. 석탄 채굴과 같은 착취적이고 오염 유발적인 채굴 산업도 사라진 마당에, 우리는 이 상실을 한탄해야 하나. 그리고 그 상실 때문에 우리가 이전에 착취를 위해 이용했던, 바로 그 이주민 유입으로 인해 물질적 안녕 방식이 위협받는다고 느껴야 하나. 내가 보기에는, 현재 벌어지는 일에 대한 심각하게 결함 있는 분석이다. (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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