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888641
초소형 카메라 구매, 연인과 성관계 몰래 촬영
"지웠다"던 영상 보관… 새 연인 신고로 체포
"성인식 왜곡, 실형으로 의료계 복귀 막아야"

게티이미지뱅크
2년간 교제한 연인을 상습적으로 불법촬영한 혐의를 받는 남성 산부인과 의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2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산부인과 의사 A(30)씨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지난 5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달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산부인과 전공의로 근무하다 지난해 전공의 파업에 동참해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2022~2024년 연인 B씨와 교제하는 동안 휴대폰과 초소형 카메라 등으로 B씨와의 성관계 장면을 6차례 불법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A씨가 불법촬영을 위해 구매한 위장 초소형 카메라. 탁상시계 형태지만 카메라 렌즈가 내장돼 있다. B씨 제공
재판부에 제출된 피해자 의견서에 따르면, A씨는 B씨의 강한 반대에도 휴대폰으로 촬영을 시도하다가 피해자에게 몇 차례 들통났다. 지난해 3월엔 탁상시계로 위장한 초소형 카메라로 범행했다가 피해자에게 발각됐다. 분노한 B씨가 "경찰서에 가겠다"고 하자, A씨는 무릎 꿇고 사과하며 "파일을 다 지웠다" "(영상을 보관해둘) 클라우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날 A씨는 B씨의 눈앞에서 휴대폰, 노트북 영상을 모두 삭제하고 탁상형 몰래카메라를 부쉈다.
A씨는 이 사건 2주 뒤에 죄책감이 든다며 B씨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영상이 삭제됐다고 믿은 B씨는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A씨가 새 여자친구 C씨와 교제하며 범행이 꼬리가 잡혔다. A씨 휴대폰에서 불법촬영 영상을 발견한 C씨가 경찰에 신고했고, 지난해 9월 A씨는 긴급체포됐다.
B씨 측은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영상만 6개이고, 추가 범행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B씨 측은 "즉석에서 적발한 촬영 시도 정황만 4번이다. 기록이 남지 않은 불법촬영이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A씨가 긴급체포된 뒤 B씨에게 보낸 메시지. '학창시절을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보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B씨 제공
A씨는 체포된 뒤 B씨에게 "그냥 뛰어내릴까 했었다" "내가 사라지면 되지 않을지"라고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냈다. "초중고·대학교를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졸업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아버지의 길을 따라 열심히 사회에 보답하려고 했다" 등 선처를 호소하는 듯한 글을 전송했다.
B씨가 합의 요구를 거절하자, A씨 측 변호인이 '(처벌을 받아도) 어차피 군대를 갈 거라 큰 의미가 없다'는 취지로 얘기했다는 게 B씨 측 주장이다. B씨 변호인은 "집행유예 선고 뒤 2년 군대를 가면 해당 기간 의사 면허 취소 등에 큰 타격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의사 면허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으면 취소된다. 다만, 집행유예 선고 시 유예기간이 지나고 2년 뒤, 실형 선고 시 형을 마치고 5년 뒤 면허를 재교부받을 수 있다.
B씨 측은 "피고인은 여성을 성적 욕망의 해소 수단으로 인식하는 등 왜곡된 성인식을 지녔다"며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A씨가 여성들의 신체를 다루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점에서, 실형 선고 등으로 의료 현장에 쉽게 복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건 후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B씨는 지난 12일 첫 공판에 직접 참석했다. B씨는 법정에서 "제 영상이 남아 있을까 봐, 보복형 유출을 당할까 봐 여전히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지난 1년 간 겪은 수면장애와 악몽을 조금도 완화시킬 수 없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