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홍수
7월 11~12일. 황해도 이남 지역에 "시간당" "300mm" 이상의 초집중호우
한강, 금강, 낙동강 등 중남부지역의 주요 하천들 대부분 범람
2차 홍수
7월 16일. 대만에서 생성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여 수도권을 관통
서울, 경기지방에만 누적강수량 65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림
한강에 쌓았던 제방이 무너지면서 숭례문 바로 앞까지 물바다가 되었고
서울(경성)에서만 익사자 400여명, 유실된 가옥만 1만 2천채가 넘었음
이 홍수로 지층이 싹 쓸려가버리는 바람에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발견되었고 풍납토성 서벽이 유실되었다고 함
3차 홍수
양쯔강 일대에서 발달한 저기압의 영향으로 8월 초 관서지방 (지금의 평안도)에 호우가 쏟아지면서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등이 전부 범람하였음
4차 홍수
8월 말 태평양에서 발달한 태풍이 9월 초 또다시 한반도에 상륙하였고
이번에는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 등 남부지방의 주요 하천들이 전부 범람하였음
총 피해 규모 (1단보는 지금 단위로 약 300평)
논 3만 2천여 단보, 밭 6만 7천여 단보 유실 -> 대지면적 약 3천만평
붕괴된 가옥 1만 7천여호, 침수된 가옥 4만 6천여호
총 사망자 647명
이재민 10만명 이상
피해액 당시 기준으로 1억원 이상. 조선총독부 총예산의 60%

이 을축년 대홍수때문에 사람이 도보로도 걸어다닐 수 있었던 신천은 완전히 한강의 본류로 편입되었고
서울과 경기 동부, 충청권역을 이어주던 송파나루와 송파시장은 전부 쓸려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음
덕분에 1970-80년대 잠실택지지구 개발, 가락시장 개장, 아시안 게임, 서울 올림픽, 롯데월드 개장 등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이 일대는 약 50년 이상의 기간동안 버려진 땅 취급을 받아야 했음



을축년 대홍수 당시 봉은사의 주지였던 청호스님은 (강남구에 있는 그 봉은사 맞음)
절의 재산을 모두 털어서 이재민들을 구조하였는데 그 수가 700여명에 달했고
스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청호 스님을 기리고자 하는 공덕비를 세웠는데 그게 아직도 봉은사에 남아 있음
참고로 대홍수 당시 사람들이 매달렸던 느티나무는 잠실 개발이 시작되었던 1970년대까지 남아있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