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체코 플젠시의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와 함께 터빈 블레이드에 서명한 뒤 웃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한국전력(한전)이 원전 수출 때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1기당 1조원 이상의 대가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논란을 일으킨 ‘원전 협정’에는 ‘독자 기술’을 인정받기 불가능할 정도로 일방적인 중복 검증 절차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한수원·한전이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쓰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등 협정 곳곳에서 ‘징벌적’ 성격이 드러난 것이다.
7일 한겨레가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을 통해 확인한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웨스팅하우스 간 기술사용 협정’ 내용을 보면, 한수원·한전은 ‘독자 노형’(소형모듈원전 포함)을 수출하려면 웨스팅하우스 기술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웨스팅하우스 쪽에 제시해야 한다. 이를 확인한 웨스팅하우스가 이견이 있을 경우, 미국 기반 전문가단을 통해 다시 검증하는 절차도 있다. 사실상 한국 쪽이 ‘독자 노형’을 인정받기 어렵게 중복 검증 절차를 담은 것이다.
게다가 지식재산권 분쟁에서 피해를 주장하는 쪽(웨스팅하우스)이 아닌 피고(한수원)가 독자 기술임을 증명하는 것은 일반적인 법 원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 협정이 지닌 ‘징벌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에너지·전기공학)는 “자사 기술을 가장 잘하는 웨스팅하우스에 한수원이 기술 침해가 아니라는 걸 증명받는 건 상세한 기술 기밀 등을 제공하는 등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며 “한국 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건 그간 홍보와 달리 스스로 독자기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협정에는 한수원·한전이 국외 원전 입찰 시 1호기당 5500억원 규모의 신용장을 보증 성격으로 웨스팅하우스에 발행한다는 의무 조항도 포함됐다. 이 협정에 따라 한수원·한전은 웨스팅하우스 기술이 포함된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기술실시권을 부여받고,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1기당 8억2500만달러(약 1조1500억원) 규모의 기술료 및 설계·부품조달·시공(EPC) 역무를 제공받는다. 그런데 한수원·한전이 웨스팅하우스와 하도급 계약을 맺지 않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겨도, 웨스팅하우스는 이 신용장을 활용해 자신의 몫을 일정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협정의 유효기간은 애초 50년으로 알려졌으나, “쌍방이 종료하기로 합의하지 않는 한 5년씩 자동 연장”한다는 조건이 있어서 사실상 무기한인 것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기술실시권을 주는 대가로 원전 수출 1기당 8억2500만달러를 받는 웨스팅하우스가 종료를 원하지 않는 한 영구적으로 효력을 지니는 셈이다. 웨스팅하우스가 협정을 종료시킬 땐 한수원·한전이 기술실시권에 대해 “이의 및 분쟁을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협정의 ‘징벌적’ 성격에 대해,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수원·한전은 2010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때 이미 웨스팅하우스에 기술사용료를 지급했는데, 그 뒤로도 별 근거 없이 ‘독자 기술’을 주장하며 수출을 시도하다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괘씸죄’가 적용돼 ‘영구 협정’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 지적했다.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 사이의 지식재산권 분쟁은 이미 2010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 때 불거졌고, 당시 한국 쪽은 1기당 1조원가량의 기술사용료 등을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하는 내용으로 10년짜리 기술사용 협정을 급하게 맺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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