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나라 사신이 기록한 ‘고려도경’.
“고려에는 화려한 그림과 석상이 마을 곳곳 가득하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 남긴 기록입니다. 그의 눈에 고려는 ‘이미지’의 나라였습니다. 도성 안팎에는 불교 사찰이 발에 채이듯 많았고, 도교 사원과 토착 신들의 사당도 그득합니다.
부처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이 고려 귀족과 백성에 의해 경배받고 있었지요. 불교가 국교였지만, 그 외 민간신앙에 대해서도 폭넓게 인정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천왕사에 현존하는 지리산 산신상
신들은 목상, 석상, 동상, 그림으로 숭배됩니다. 고려 전역에 얼마나 많은 이미지들이 있었을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송나라 사신이 그 방대함에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저 미신을 모두 없애자”
‘조선판 성상파괴 운동’
조선이 개국하면서 사정이 달라집니다. 국가 토대로 삼은 유교의 교리에서 ‘이미지’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어서였습니다. 조선이 사대한 명나라 역시 조선의 ‘유교화’를 지속해서 관리 감독했었지요.
고려시대 지역 신들은 각자의 이름이 있고 가족도 있었던 인간적인 신이었습니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처럼요. 조선이 개국하면서 신령을 재현한 그림과 동상들이 제거됩니다. 정 모시고 싶다면 유교 방식의 ‘신위’로 제사를 지내라는 어명이 떨어지지요. 그림을 빼고 밋밋한 글자만 쓰인 나무패를 제사상에 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상을 만들어 제사 지내는 건 엄격히 제재받기 시작합니다.

세종, 고려 임금의 초상화를 땅에 묻다
“유교에 맞지 않은 상을 모두 없애도록 하라.”
고려시대의 그림과 상을 조직적으로 제거한 임금은 ‘성군’ 세종이었습니다. 아버지인 태종 때부터 시작된 성상제거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마침 이 때 세종에게 “여러 동상과 초상화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옵니다. 약간 훼손된 고려 태조 왕건상과 2대 혜종의 상과 초상 등 진귀한 유물들이었습니다.
(문화재 관점에서)시기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습니다. 세종은 모든 상과 초상을 제거하고 나무 위패로의 대체를 주도하고 있던 인물. 그에게 고려의 국보급 유물 여럿이 한꺼번에 보고된 것이었습니다.
세종은 역시 원칙을 내세웁니다. 복원 대신에 각 주인의 무덤에 함께 묻자고 결론 내리지요. 고려 왕 십 여명의 초상화가 그렇게 땅에 묻혔습니다. 남아있었다면, 국보 중 국보로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게 분명하지요.
선비들도 무속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민간에 퍼진 성상도 용납할 수 없다.”
세종이 불을 당긴 성상파괴운동은 조선 중기 유생들에 의해 계승됩니다. 여전히 민간에서 많은 백성들이 신상을 만들어 각자 제사(음사)를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이도와 박성림이라는 두 유생은 당시 민중의 종교생활에 분노해 의기투합합니다.
“사람들이 병에 걸려도 약을 구하지 않고, 무당을 찾아 기도만을 일삼는다. 저것들(성황당)을 태워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 성현의 도를 밝힐 수 있겠으며 긴긴밤에 요사한 기운을 없앨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은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유생들을 데리고 송악에 올라 신당을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대옹과 대부인이라는 나무 신상도 깨부수지요. 그들이 그날 제거한 사당은 7개에 달했습니다.

“자자, 거기 말고, 저 사당이나 사찰에 쏘라고.”
방화 주범인 유생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처벌에 직면하자 전국 유생들로부터 상소가 빗발칩니다. “군자가 기풍을 바로잡아줬다”는 칭찬과 함께였습니다. 조사를 위해 서울로 끌려왔을 때에는 관청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받기도 했었지요. 결국 명종은 이들을 벌할 수 없었습니다. 유교의 승리였습니다.
불교 국가 신라 수도였던 경주에 가도 목이 잘린 불교 석상이 쉽게 발견됩니다. 지역 유생들의 횡포였습니다. 문화재적인 측면에서 유교의 국교화는 임진왜란만큼이나 끔찍한 상흔을 남겼습니다.

경주 분황사 불상군. 분황사라고 하는 한 절에서 목에 잘린 불상들이 우물에서 대거 발견됐다. 유생들의 반달리즘이었다.
조용한 나라가 되어버린 조선
500년간 이어진 억불(抑佛)의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한반도의 예술은 점점 색을 잃어갔지요. 불교, 도교, 민간신앙의 주요 신상과 그림들이 사라진 풍경이었습니다.
19세기 조선을 방문한 성공회 선교사 J.R. 울프는 “한국은 종교가 없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느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숭배의 대상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고려 명화들은 국내에서 억불정책과 전쟁으로 많이 소실됐다. 모순적으로 일본에 유출된 작품들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일본 교토에 있는 고려 불화인 관경십육관변상도.
울프는 여기에 더해 한 마디 더 부연합니다. “불교는 조선에서 금지된 종교다. 지난 500년간 지배왕조는 불교를 폭력적이고 성공적으로 억압했다.” 화려했던 고려의 시대가 흔적을 남기지 않은 데에는 무채색의 조선이 있었던 셈입니다. 문화재는 야만 이민족의 침략에 의해서만 파괴되는 게 아닌 것이지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역사가 남긴 수많은 명작들이 사라져갔습니다. 문화재 소실의 비난을 외부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조선은 수많은 아름다움을 남긴만큼이나, 수많은 고려의 아름다움을 앗아간 나라였다. 서울 경복궁 경회루.
기사전문: https://v.daum.net/v/20240601161800121
너무 길어서 중간중간 생략해서 퍼옴 관심있는 덬들은 전문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