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규: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오?
나영:재미있지 않습니까?
상규:무엇이요?
나영:보십시오. 한 길도 넘던 끈이 이제는 한 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한테... 설교를 하고싶으신 게요?
나영:서얼의 설움이 깊을까요? 계집의 설움이 더할까요?
그대로는 눕지도 앉지도 못하실 걸요? 도령께서 살고 계신 세상은 고만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상규: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오.
나영:스스로를 얽매고 자신을 핍박하는 장부는 계집이 보기에도 옳지 않아 보인다는 말씀을 드리는 겝니다.

나영 :서책방에는 저를 찾아오시었습니까?
상규 : 물 한 잔 얻어 마실까하여 감히 실례를 무릅썼습니다.

나영:지봉선생께서 명나라에서 익힌 견문을 적으신 서책입니다.
읽어보시지요. 갈증을 푸는 데에는 물보다 나을 것입니다.


이조판서: 무학이 태조대왕께 이런 말을 했지요.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
박인빈 : 감히 돼지라? 상놈 피가 섞인 서자라더니, 하는 말마다 천박하기 이를 데없구나.
이조판서:조선 백성 절반 이상이 상놈입니다. 제 몸에 그 피가 섞였으니 비로소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피 아닙니까?
궐 밖을 보십시오. 여전히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 짐을 싸들고 몰려드는데, 이미 도성은 굶주린 백성으로 차고 넘칩니다.
양반 피만 흐르니 상놈들은 뵈지도 않는 겝니까?


이조판서: 딱도 하십니다. 이런 얄팍한 장사치의 농간에...
박인빈 : 그만 두시게. 장사치는 백성이 아닌가? 어찌 자네 말 옳다는자들만 이 나라 백성이라는 게야.
궐문앞에 모인 자들은 그럼 다른 나라 백성이란 말인가?
이조판서: 요란 떨며 격쟁하는 대다수가 제 이익이 사라질까 두려운 장사치나사대부의 하수인들임을 모르십니까?
여론을 호도치마십시오, 대감. 호의호식하며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운 자들과
끼니 걱정에 그나마 삶의 터전을 잃을까 두려운 자들을구별하십시오!
박인빈 : 말 한번 잘했네. 잘 먹고 잘 입으면 죄인인가?
그들 역시 이 나라 백성이고 부자가 되려고 무진 애쓴 자들일세.
헌데 허구한 날 술 마시고 투전판에 세월을 보낸 자들만 백성이라 하니, 이런 언어도단이 어디 있는가?
이조판서: 그 누가 잘 살려 애쓰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을 벗어 날 수 없으니 허망함에 그런 겝니다.
애쓴만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나라의 녹을 먹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니까, 대감!


정조:최선이 아니라 차선, 절대가 아니라 상대가 지배하는 세상,
세상은 필요에 의해선 풍족하지만 욕심에 의해선 항상 궁핍하다.
모두가 만족하는 최선의 선택이란 이 세상에 없는 것이야 언제나 어느 한쪽이 우선하는 차선만이 가능하다
언제나 어느 쪽을 우선할까 선택해야하는 순간에 놓이기 마련이다.
나는 항상 다수를 위한 차선을 선택해야하듯,
너는 항상내게 칼을 드는 자의 목숨을 가차 없이 베어야하는 것이다

시전을 없앤다 몇 차례나 통공을 선포하고 꾸준히 시전수를 줄여왔습니다.
군역을 양반에게 지우는 것 또한 이미 선대왕 때부터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급작스럽다, 느닷없다 하는 것은 아니하겠다, 못하겠다 하는 말이지요!
몇 안 되는 자들의 사정을 마치 백성 전체의 일보다 큰일인 양 부풀려 핑계 삼는 것은 저쪽 당 위인들만으로 충분하네!

정조:아귀처럼 이 복마전에서 살아남으려는 이유는, 고통 받는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조선을 만들겠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다.
나의 간절한 소망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
허나 당쟁은 줄지 않고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가 않는다.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다.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나가고 내가 꿈꾸던 새로운 조선은 저만치서 다가오질 않는다.
아무리 소름이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나는 결코 저들을 이길수가 없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다.
나의 신념이 현실에 조롱당하고, 나의 꿈이 안타까운 희생을 키우는데 포기하지 않는 나는 과연 옳은 것이냐? ...

명분이 있어야지, 명분이... 정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목을 치면 나라꼴이 뭐가 되는가?
지나치게 억압하면 반발만 강해져서 오히려 상대를 결집시키네.
아무리 나약한 상대라도 적당히 행세하도록 놓아두는것이 정치일세.
내가 치켜들 때도 상대가 수그릴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하는 법!

임 금 : 한 나라의 재상이 왕권을 부정하는 민란을 지원하다니...
이참판 : 양이들의 역사처럼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것이 저였을 뿐입니다.
임 금 : 나를 도와 왕권을 강력히 하고 경장을 실현시키는 것이... 더 옳은 길이지 않았겠소?
이참판 : 조선 백성의 미래를 위하는 그 뜻이 같음은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하.
임 금 : 한때 내가 흠모해 마지않던 이공의 마음 모르는 바 아니나, 그것은 너무도 먼 미래의 꿈, 아직은
그 때가 아니오. 조선의 현실을 직시했어야지요!
이참판 : 전하, 현실은 늘 신념을 어둡게 하지요. 어찌 희생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다.

박인빈:네 놈 계집 목숨 구한다 이 사지에 뛰어든 것이, 내가 권세를 위해 목을 거는 것과 무엇이 달라?
돈에 목숨 거는 장사치가, 얼굴에 목숨 거는 기생이 나와 다르냐 아니면 너와 다르냐?
사내 계집 각각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어 하는 엄연히 다르거늘 왜 네가 하는 것이 옳고 남이 하는 것이 그르다는 거냐?

박인빈:과시에 급제하여 처음 입궐하던 때가 떠오르는구나. 나 역시 백성을 위하여 마음으로 정치를하리라 수 없이 다짐했다.
허나 백성들은 고사하고 나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현실...
내가 권력만을 좇는다 경멸하였더냐? 나 역시 내 아비에게 그리 말했었다.
허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된 후에 어느새 나도 내 아비처럼 됐다!
자식 한번 낳아 보거라, 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건...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뒤집혀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만오 : 어찌 감당키 힘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비정하다 더럽다 세상 탓만 하십니까?
세상에 발맞춰 살아보겠다 버둥대는 자들은 부도덕하다 손가락질하며,
대체 언제까지 이리 도망만 다니실 참이오

세상이...
제가 알던 세상이 아니더이다.
노비가 되어 경험한 세상은... 양갓집 규수가 사는 세상이 아니더이다.
태어났다는 이유로 살아가는 민초들 대개가 하루를 연명하듯,
노동하다 지치면 그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그리운 님 추억으로 인내하려는 노비에게...
세상은 참으로 모질고 잔인한 것이더이다.

도련님께서야 아실 리 있습니까, 알아도 느낄 수 없겠지요...
타고 나지 못해 가지지 못한 자들의 그 고통, 그 괴로움...
실낱같은 미련과 연민을 모두 버리니 고통이 없어지더이다.
잔인한 세상에 소망 하나 갖지 않으니 삶의 이유 절로 분명해지더이다.
그리하여 이제 갈 길은 한 가지만이 남았습니다. 제게 죄가 있다면 오라를 채우십시오.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떠나십니까?
왜... 모두 떠나는 겁니까?
살아선 가질 수 없는 소망이기 때문입니까?
허면... 죽어 가질 수밖에요...
이제... 제가 품은 소망을 아무도 막지 못하겠지요...

평생을 내 가슴에 품고 살았던 한 여인... 그 여인이 평생을 가슴에 품었던 한 사내를
그 둘이 함께 품었던 작은 소망과 함께... 그 여인 곁에 묻었소...
나는 이제 그들과 함께 묻은 그 소망을 잊을 것이오. 어쩌면 그 둘을 잊고 싶을 것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먼훗날, 그들을 묻은 자리에서 싹이 나고, 그 싹이 온 세상을 뒤덮는 우거진 나무로 자라난다면...
나는 그 사내와 여인을 기억할 것이고, 어쩌면 다시 소망을 품어 볼 것이오...


월향: 멀리 가신다 들었습니다.
만오 :어디든 여기 조선이 아닌 곳으로 갈 것이네.
따라 나서겠다면 내 기루 정도는 하나 열어줄 수 있네.
월향 : 고맙습니다... 허나 전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 아이에게 아비가 소망하던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혹여 이 아이가 그 세상을 보지 못한다 해도,
이 아이의 자식이 두 분 원하시던 그 세상에 살겠지요.
만오 : 부질없네...
월향 : 그리 한 번 소망해 보는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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