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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갑작스럽게 죽음을 예감한 말은 정리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예외없이,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잘 지내라, 등의 흔한 말을 남긴다. 하지만 그 흔한 말은 예외없이 가슴을 찢는다.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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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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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잠든 깊은 새벽,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서울로 향하는 도로에서 승용차가 터널 벽에 충돌했다. 환자는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한 채로 발견되었다. 구급대원은 구겨진 보닛이 환자의 다리를 눌러 구출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중년 남성은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우선 손상을 파악했다. 복부가 부풀어 있었고 손을 대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했다. 머리나 흉부는 비교적 양호해 보였지만 왼쪽 다리가 찰과상과 함께 구부러져 있었다.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메고 충돌한 전형적인 손상이었다.

"중증외상입니다." 의료진에게 빠른 처치가 필요함을 알렸다. 중증외상환자는 분초가 생사를 가를 수 있다.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여서 타임라인을 맞춰야 했다. "정맥로 두 개를 확보합니다. 적혈구를 신청하고 수액을 5L까지 준비합니다. 경추를 고정하고 바이탈 확보되었을 때 시티부터 확인합니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다리를 맞춰서 고정했다. 시티를 확인하자 염려했던 결과 그대로였다. 장간막이 파열되어 복강 내 출혈이 심했다. 외과 당직에게 연락을 취하자 그는 응급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새벽이라 아내와 딸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사촌 형이 보호자로 인천에서 온다고 했다. 이제 수술방에 올라갈 때까지 생체 징후를 확보하는 일만 남았다. 어깨에 포를 덮고 수혈용 관을 넣자 의식이 약해지던 환자가 말했다.

"저, 죽을 수도 있나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괜찮을겁니다."

"무조건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정확한 건, 수술을 해봐야 압니다."

응급수술에서 환자가 반드시 살아난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수혈이 시작되었지만 그의 손발이 더욱 창백해졌다. 환자가 죽음을 느끼고 무엇인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확인해야 하는 검사 결과가 실시간으로 쏟아졌다. 새벽 4시 14분, 드디어 수술방에서 호출이 왔다. 내원한지 1시간 16분 만이었다. 침대 난간을 붙들자 양손에 주사바늘을 꽂은 그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부탁이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보았다.

"가족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핏기 없는 얼굴에서 절실함이 느껴졌다. 나는 무엇인가 깨닫고 소지품 봉투에서 그의 핸드폰을 꺼냈다. 마침 사용했던 기종이라 녹음 버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죠."

그제서야 그는 약간 안도한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예감한 말은 정리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예외없이,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잘 지내라, 등의 흔한 말을 남긴다. 하지만 그 흔한 말은 예외없이 가슴을 찢는다.

"아빠가 미안하다. 출장 때문에 매일 늦게 들어오고, 그래도 아빠 딸로 태어나주어서 고맙다. 사랑한다. 이제 아빠 없이도 잘 살아..."

그가 말을 마칠 때까지 나는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말을 견뎠다. 응급실의 기계음과 죽음을 예감한 마지막 고백이 교차했다. 일 분 남짓 한 시간이 영원처럼 길었다. 그가 다 되었다고 하자 파일을 저장하고 휴대폰을 소지품 봉투에 넣었다. 혹시 모를 상황이 생기면 반드시 음성을 가족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말을, 고민하다가, 하지 않았다.

"이제 가겠습니다."

나는 손에 힘을 주고 침대를 굴렸다. 불과 몇 시간 뒤 자신의 생사를 알 수 없다면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있다. 나의 일은 그의 생존이었지만, 그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나는 일에 몰두하느라 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았던 셈이었다. 수술방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로 떠났다. 밤새 전산에는 그가 생존해 있었다. 아침이 밝으면 그의 가족이 병원에 찾아올 것이다. 그는 웃는 얼굴로 가족을 안심시키고, 간밤의 음성은 그와 나만 아는 것이 되어야만 했다. 반드시 그럴 것이었다.


https://m.blog.naver.com/xinsiders/223970458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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