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강아지와 아기가 뒤엉켜 노는 영상, 판다가 죽순 먹는 영상 같은 걸 자꾸 보게 되는 건 '무해함'이 주는 위로 때문이다.
독한 스트레스와 도파민의 홍수 사이를 오가는 일상에서 순하고 다정한 것은 점점 더 귀해진다. 긴장된 마음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키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속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 분)의 존재도 그렇다. 회사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신세지만, 누굴 원망하지도 않고 조용히 자기 상처를 보듬는다. 그런 와중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이웃이 도움을 부탁하자 온 마음을 다해 돕는다.
이웃의 사정이라는 것은 다소 황당하다. 조용하고 유순한 선지(임윤아)가 새벽만 되면 악마에 씌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
혼자서 딸을 챙기는 게 버거워진 아버지 장수(성동일)는 듬직하고 착해 보이는 길구에게 아르바이트 겸 선지의 보호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데뷔작 '엑시트'(2019)로 큰 사랑을 받은 이상근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가족애와 로맨스, 코미디를 적절히 배합한 이야기에 피식피식 웃다가도 뭉클함이 한 번씩 치고 들어온다. 다정하고 순한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잔잔하게 각인시킨다.
13일 개봉. 112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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