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로드 스튜어트(80)가 최근 미국 공연에서 망자(亡者)가 된 음악가들을 인공지능(AI)으로 부활시키는 ‘헌정 영상’을 상연한 이후 ‘AI의 윤리성’ 논쟁이 불붙고 있다. 스튜어트는 지난달 29일 노스캐롤라이나 공연에서 최근 별세한 헤비메탈의 거장 오지 오즈번에게 ‘영원한 젊음(Forever Young)’이라는 노래를 헌정했다. 배경 영상에서 젊은 시절 오즈번이 천국에서 프린스, 커트 코베인, 마이클 잭슨, 프레디 머큐리 등 이미 고인이 된 스타들과 ‘셀카봉’을 들고 웃고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선 “정말 기괴하다” “고인과 가족에게 무례한 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평론가는 영국 더타임스에 “AI는 간사하고 사악한 짐승”이라며 “이런 영혼 없는 쓰레기 같은 넋두리는 소위 ‘AI 예술’의 가장 모욕적인 형태”라고 했다. 더타임스는 ”‘AI 부활’이 고인의 초상권·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했다. 사이버 심리학자인 일레인 캐스킷은 ”망자는 동의할 기회도, 반박할 권리도, 통제할 권한도 없다“며 ”각종 이득을 위해 디지털 자료가 부정적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선 유언장에 ‘나를 AI로 부활시키지 말라’고 명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AI 부활’은 고인의 생전 이미지와 음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일종의 딥페이크다. 2018년 미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기 난사로 17세 아들을 잃은 미국 기자 짐 아코스타는 지난 5일 AI 버전의 아들과 재회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미국의 인기 소셜미디어 ‘레딧’의 공동 창업자인 알렉시스 오해니언도 지난 6월 오래전 별세한 모친을 AI로 되살려냈다. 한국에서도 2020년대 들어 요절한 연예인, 순직 군인, 불의의 사고·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린 자식 등의 생전 모습을 AI로 재현해 다시 만나는 콘텐츠가 다수 제작됐다.
망자를 AI로 살려낸 캐릭터를 뜻하는 ‘데스봇(deathbot)’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죽음(death)과 특정 작업 수행 프로그램(bot)의 합성어다. 이런 흐름에 “인간의 본질적 감정인 슬픔마저 상품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디언은 “데스봇 열풍은 동아시아에서 처음 불기 시작했다”며 “중국에선 망자의 데스봇을 만드는 데 커피 한 잔 값인 20위안(약 3800원)밖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의 한 장례 업체는 망자를 디지털 세계에서 계속 만나볼 수 있는 서비스를 5만위안(약 960만원)에 제공한다. 중국의 AI 망자 관련 시장 규모는 2022년 2조3000억원 규모에서 올해 4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가디언은 윤리학계와 신학계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인간에겐 초월, 사후 세계, 사랑의 영속을 바라는 ‘존재론적 갈망’이 있다. 이를 다뤄온 전통 종교가 쇠퇴하면서 AI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지적이다. ‘AI와 사후 세계’ 저자인 네이선 믈라딘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 데스봇에 의존하도록 만들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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