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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NYT "모두를 미워하라…증오의 대중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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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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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
 
-마크 에드먼드슨 버지니아대 교수
 
 
image.png NYT "모두를 미워하라…증오의 대중화 시대"

얼마 전 모임에서 일론 머스크를 편들었다가 분위기가 싸해졌다. 펀치를 두어 잔 마신 탓도 있겠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머스크 전기를 막 읽고 나서, 아마 스타링크에 대해 좋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러자 대화하던 동료 교수가 마치 자기 개라도 걷어차인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냐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 즉 홀푸드(유기농 전문 고급 식자재 마트)에서 장을 보고 퇴비를 만들며 성별 대명사를 존중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은 머스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는 그를 증오한다. 한때 테슬라가 드림카였지만 이젠 아니다. 그의 모든 것이 혐오스러울 뿐이다.
 
오늘날 우리 문화에는 증오가 넘실댄다. 진보는 보수를, 보수는 진보를 증오한다. 사람들은 정치인, 엘리트, 마가(MAGA) 모자를 쓴 사람들을 미워하고, 손에서 놓지도 못하면서 소셜 미디어를 증오한다. 부자와 이민자를 향한 증오도, 언론을 향한 불신과 혐오도 만연하다.
 
기업, 자본주의, ‘깨시민(woke)’과 캔슬 컬처, 세계화와 세계주의자들, 그리고 현 대통령까지 모두가 증오의 대상이다. 물론 세상에 사랑도 있다. 비욘세나 페드로 파스칼, 심지어 현 대통령을 향한 사랑도 존재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 눈에는 증오가 사랑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생각하는 행위가 자아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된 게 아닐까. 우리가 무엇을 증오하는지가 곧 지금의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 지금, 증오가 정체성을 만드는 데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토록 정체성에 집착하게 됐을까.
 
안정적인 자아를 세워주던 전통적인 기둥들이 힘을 잃었다. 우리는 더 이상 사회 제도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그 자리엔 모든 것을 의심하는 파괴적인 회의주의가 들어섰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은 내가 자란 가톨릭 교회에 지울 수 없는 반감을 심어줬다. 은행 구제 금융,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폐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신 건강 논란 등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통해 기존 질서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과거 우리는 '보스턴글로브를 읽고, 민주당을 지지하며 레드삭스를 응원하는 가톨릭 신자'라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정체성을 확인했다. 이제 이 목록에서 그나마 확실한 건 레드삭스 팬일 뿐일지 모른다. 그마저도 프로 스포츠에 합법 도박이 판을 치면서, 한때 국민 스포츠였던 야구의 순수성마저 언제까지 지켜질지 의문이다.
 
정체성을 만들던 단단한 발판이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바로 증오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텅 빈 백지 같던 당신도 무언가를 증오하는 순간, 비로소 당신 자신이 될 수 있다. 반감을 통해 자아를 규정하는 것이다. "나는 교회를 증오해. 학교가 싫어. 부모님, 정부, 대통령, 파시스트, 공산주의자 다 증오해." 그러다 레드삭스마저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특정 스포츠팀을 미워하며 소속감을 다지는 사람도 흔하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듀크대 농구팀에게는 박수라도 쳐줘야 할 판이다.
 
증오를 통해 갑자기 안정된 자아를 갖게 된다. '누군가'가 되고 싶었는가. 이제 당신은 놀랍도록 다채로운 증오로 가득 찬 바로 그 '누군가'가 됐다. 긍정적인 소속감 없이, 부정적인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 모호함과 미묘함은 사라지고, 모든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 뚜렷하게 흐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본래 인간의 내면은 대부분 갈등 상태에 있다. 사랑과 증오가 공존하며 혼란스럽고 격렬한 파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노골적인 증오는 이 모든 복잡함을 단번에 정리해버린다. 물론 용기, 연민, 창의성, 지혜를 추구하며 내면을 통합하는 건강한 길도 있다. 하지만 증오처럼 유독한 길도 있는 법이다.
 
니체는 "사람은 목적 없이 사느니, 차라리 공허함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상태는, 무언가를 증오하는 상태보다 더 견디기 힘들 수 있다. 증오는 우리에게 명확한 행동 계획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오는 들판에 마른 장작을 쌓는 것과 같다. 나도, 내 친구들도 장작을 쌓는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그저 인터넷에 올리는 글일 뿐이라고, 친구들끼리만 하는 이야기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그렇게 마른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이다가, 어느 날 작은 불씨 하나에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진다.
 
물론 지금 당장은 증오의 불길이 크게 번지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들이 있다. 경제는 나쁘지 않고, 집에는 대형 TV가 있다. 하지만 이 최소한의 안전마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증오가 본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은 더 커질까, 작아질까. 굳이 답을 찾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증오를 가지고 노는 것은 죽음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 그리고 오늘날 너무나 많은 이들이 이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정체성의 시대에 산다. 모두가 자신만의 프로필을 가져야만 할 것 같다. 노먼 메일러가 ‘나 자신을 위한 광고’라는 책을 썼듯, 이제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광고한다. 사진을 올리고, 성취를 과시하며, 계획을 뽐낸다. 철학자 애덤 필립스의 말처럼, 우리는 '좋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부러워할 만한 삶'에 안주한다.
 
관심은 최고의 상품이 됐다. 관심을 끌면 어떻게든 돈이 따라온다. 자아를 상품으로 만들려면, 팔 수 있는 자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아를 세울 버팀목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필사적으로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그중 가장 손쉽고 확실한 재료가 바로 증오다(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
 
프로이트는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헌신적인 친구와 무서운 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에게 자신의 진가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칼 융은 친절하게도 친구와 적의 역할을 차례로 맡아주었다).
 
훌륭한 작가이자 스승이었던 해럴드 블룸 역시 비판을 환영하며, 악랄할수록 더 좋다고 말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야유가 오히려 그에게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야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대신해 자기 일을 해주고 있다고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쉬운 답은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그게 과연 좋은 생각일지 의문을 제기했다.
 
회의적인 정신분석가들은 차치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사랑에 기반한 문화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까. 부처와 예수를 따르는 불완전한 신도로서 나 역시 그러길 바라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우리는 이미 반감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
 
대신, 오늘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전부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가끔은 자아에게 짧은 휴가를 보내주자는 것이다. 잠시 멈춰 서서 평화롭게 숨을 고를 시간을 주자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존 키츠가 말한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성급하게 사실과 이성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 불확실함과 미스터리, 의심 속에 머무를 줄 아는 능력이다. 키츠는 세상과 자아로부터 아름답게 거리 두는 법을 제안한다. 잠시만이라도 신념을 내려놓고, 셰익스피어처럼 세상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라고 말한다. 시끄러운 의견을 잠재우고, 끊임없이 보채는 자아를 쉬게 하라.
 
에밀리 디킨슨 역시 자아에 가하는 압박을 멈추는 법에 대해 멋진 시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가 자아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 이보다 더 날카로운 비판이 있을까. 우리는 밤낮으로 우리를 알아봐주길 바라며 이름을 외치지만, 그 대상은 사실 우리처럼 따분한 '누군가'들로 가득 찬 늪일 뿐이다. 디킨슨은 조언한다. 그냥 조용히 빠져나오라고. 어쩌면 증오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마지막으로 미셸 푸코의 책 ‘말과 사물’의 결론을 보자. 푸코는 해변의 모래 위에 그려진 인간의 형상이 파도에 씻겨 사라지는 모습을 그린다. 이 형상은 바로 서구 사회가 규정해 온 '인간'이다.
 
푸코에 따르면, '인간'은 특정 시대의 담론들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담론들도 파도에 씻겨나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열어줄 것이다. 푸코는 개인을 넘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인류'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일시적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자아 정의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길을 개인의 내면이 아닌, 거대한 담론의 전환에서 찾는다.
 
우리는 이 작가들을 단지 괴짜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사회가 정해준 재료로 억지로 자아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준다. '하나의 통일된 개인'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마침내 증오에서도 벗어날 가능성을 제시한다.
 
*에드먼드슨의 가장 최근 저서로 '죄의 시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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