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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촌뜨기들’에서 생활 연기 펼치는 배우 홍정인, “그게 제 삶입니다”
‘파인: 촌뜨기들’에서 벌구 패거리 삼인방 ‘도훈’으로 맹활약 중
광주 촌놈에서 배우로… 기다림 끝에 긴 무대에 서다
유노윤호와 단짝, 손호준과 20년 지기… 배우 홍정인의 땀내 나는 인생 연기
“85년생 광주 출신 배우 홍정인입니다.”
디즈니플러스 '파인: 촌뜨기들'에서 ‘도훈’ 역으로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잔잔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홍 배우를 만났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천천히, 조금씩 연기 인생을 이어온 그는 누구보다 들뜬 표정이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음악 선생님이 ‘야, 너 목소리 좋으니까 노래나 한번 해 봐’라고 말씀해 주셔서 고민 끝에 연극영화과를 준비했어요.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게 됐는데, 고3 때 친한 친구인 유노윤호가 가수 동방신기로 데뷔하게 되면서 저도 같이 꿈을 꾸게 된 것 같아요.”
유노윤호와는 무슨 사이인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단짝 친구였어요.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죠. 이 친구가 데뷔하고 나서도 거의 항상 붙어 다녔던 것 같아요. 윤호에게 좋은 에너지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많은 대중이 아시다시피 열정이 조금 많은 친구거든요. (웃음) 자기 자신감도 넘치고, 항상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친구다 보니까 정말 사소한 일도 허투루 하면 안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배우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연극영화과를 준비하던 그 당시에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대입을 포기했는데, 그래도 배우라는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2011년쯤부터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도부터 손호준 배우가 주연인 영화 ‘크게 될 놈’에서 조연 만복 역할로 촬영했죠.”
끈끈한 광주 멤버들
홍 배우는 광주 출신 손호준 배우와도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호준이 형이랑은 20대 초반 서울에서 친해졌어요. 형이 20여 년 전 ‘바람’이라는 영화를 찍기 전부터요. 형이 그때 무명 시절을 겪고 있었을 때였는데, 군대 다녀오고 ‘응답하라 1994’에 캐스팅되면서 이름이 알려진 배우가 됐죠.”
사투리 연기는 일상이에요
전라도 출신인 만큼, 파인에서의 사투리 연기는 리얼리티가 그대로 묻어났지만, 인터뷰에서는 예상과 달리 차분한 표준어를 구사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와서 그런지 표준어와 사투리 둘 다 능숙하게 구사하는 편입니다. 시골 가서 이야기할 때는 아마 잘 못 알아들으실 거예요.” (웃음)
홍 배우는 영화 ‘크게 될 놈’ 촬영 직후, 손호준 배우와 ‘고백부부’에서 과 선배 역으로 다시 호흡을 맞췄다.
“이때 사투리 구사도 저의 제안이었어요. 대본 자체는 표준어로 적혀 있었지만, 어차피 전국 각지에서 오는 대학생들이니 상관없겠다 싶었죠. 제 연기의 대부분은 사투리를 써요. 우연찮게 이 ‘파인’이라는 작품 오디션을 준비할 때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어른들 세대의 말투를 제가 더 잘 살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당연히 파인의 도훈이인 것 같아요. 도훈이라는 역할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맛봤거든요. 이렇게 호흡이 길게 들어간 작품은 처음이라 정말 즐거웠던 순간도 있었고, 화가 났던 순간, 슬펐던 순간도 있었어요. 다양한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저한테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죠. 주변 지인들이 드라마를 보고 ‘생활 연기 하랬더니 그냥 생활을 하고 있다. 이건 그냥 너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돌이켜보면 가장 도훈이스러운 게 결국 저다운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연기할 때는 최대한 그 캐릭터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해요. 도훈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런 걸 계속 상상하면서요. 실제로 벌구, 필만이랑 셋이서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린 몇 살 때부터 친구였을까?’, ‘어떻게 친해졌을까?’ 이런 관계성부터 시작해서 상황 하나하나를 다져가며 캐릭터를 만들었죠.”
연기 인생에 영향을 준 배우가 있다면?
“호준이 형이 저한테는 제일 큰 선생님이에요. 형이랑 거의 일주일은 붙어서 연습한 적도 있어요. 이번에 파인 캐스팅 되고 나서도 대본 나오자마자 바로 형 집으로 찾아갔어요. 형이 팁을 준 게 있는데 제가 아직까진 카메라 위치를 잘 모르니 주인공들 사이에 있을 때 꼭 가운데에 잘 서 있으라는 거예요. 그럼 한 번이라도 더 보여준다고. 근데 그냥 바보같이 서 있으면 안 되고 리액션을 잘해야 한다고 말해줬어요. 실제로 드라마를 보시면 저는 항상 그 가운데에 껴 있어요.” (웃음)
파인 속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지금 6, 7화까지 나왔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씬이 대장 벌구를 배신하는 장면이에요. 황 선장이랑 관석이가 하는 이야기를 도훈이가 우연히 듣게 되거든요. 벌구를 죽이려는 얘기였어요.
사실 벌구-도훈-필만 이 셋은 정말 끈끈한 친구들이잖아요. 그런 얘기를 들었으면 어떻게든 벌구를 구하려고 해야 정상인데, 도훈이는 끝내 돈을 택하게 돼요. 알고 보면 정말 사악하고 나쁜 놈이죠. (웃음)
이 씬을 찍을 때 감정 기복도 제일 컸던 것 같아요.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하면서도, 도훈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했던 시간이었어요.”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저는 예전부터 사극을 정말 해보고 싶었어요. 장보고, 불멸의 이순신, 한산, 명량 같은 작품들을 너무 재밌게 봤거든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처럼 고증이 제대로 된 시대극 안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연기해보고 싶어요. 장군이나 장수 같은 역할도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고요. 기회가 된다면 꼭 사극을 해보고 싶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장르는?
“영웅본색 같은 홍콩 느와르 장르를 좋아해요. 노래도 자주 듣는 편이고, 남자들의 생동감 있는 리얼리티한 느와르를 즐기는 편이에요. 강윤성 감독님도 느와르를 되게 좋아하시거든요.”
“저는 영웅본색 같은 홍콩 느와르 장르를 정말 좋아해요. 영화도 자주 보고, OST 같은 음악도 자주 듣는 편이에요. 남자들끼리 부딪히고 살아가는 그 리얼리티한 느낌이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강윤성 감독님도 그런 실제와 비슷한 느와르를 워낙 좋아하셔서 저랑 색깔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감독님 얘기 나오셨으니 여쭤볼게요.
존경하는 감독은?
“지금 파인의 감독이신 강윤성 감독님을 보고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 제 대사가 1화부터 10화까지 딱 세 마디밖에 없더라고요. ‘도훈이가 말을 못 하는 캐릭터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감독님이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도훈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 같아?’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감독님은 캐릭터를 처음부터 다 구체화해서 주시는 스타일이 아니세요. 디테일한 부분은 배우들에게 맡기시고, 배우가 만들어 가는 걸 존중해 주시는 분이에요. 그날 저랑 세 시간 넘게 독대하면서 도훈이라는 캐릭터를 같이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정말 커졌고,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해도 감독님께서 그걸 좋게 봐주셨어요. 대화의 절반은 애드리브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세 마디에서 시작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표현과 대사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됐죠. 저한테는 정말 ‘배우를 키워주시는 감독님’이세요.”
존경하는 배우는요?
“제가 아직 많은 선배님들을 만나 본 건 아니지만, 류승룡 선배님은 정말 리더십이 대단한 분이세요. 현장에서 메인 역할로 나오지 않는 후배들까지 잘 챙겨주시고, 세세하게 신경 써주시는 포용력이 있으신 선배님이시죠.
그리고 김의성 선배님도 항상 후배들 챙기시는 분위기 메이커신데, 현장에서는 늘 웃음이 끊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배 타는 사람 중에 여자 배우가 한 명도 없으니 남자 소굴이었지만, 그래도 선배님들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 항상 현장 가는 날이 기다려졌어요. 선배님 한 분 한 분 다 존경스럽고 멋있는 분이죠.”
촬영 현장 분위기도 궁금한데요
“작년 3월부터 10월까지, 7개월 동안 신안 임자도 안에서도 제일 끝인 쪽 전장포항 쪽에서 촬영했는데, 정말 뜨거운 날씨였어요. 제 의상이 또 스웨터에 가죽 의상이었거든요. 촬영하는 스태프들도 탈수 증세가 올 정도로 장난 아니었죠. 그래도 현장 분위기만큼은 날씨를 이길 만큼 항상 화기애애했어요.”
“또 웃겼던 건 어떤 처음 뵌 분이 저를 보고 ‘저분은 실제 생활하시는 분인가요?’라고 하신 거예요. (웃음) 저를 목포에서 현장 섭외한 줄 아셨대요. 사실 광주에 있는 제 친구들 보면 100에 90은 그런 애들이거든요. 얼렁벌렁하고, 번들번들하고, 어딜 가서 벤치마킹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친구들이랑 전화 통화 몇 번만 해도 캐릭터에 대한 감이 잡히거든요.”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사실 연기하는 건 힘들지 않았고요. 그냥 연기를 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될까. 언제쯤 한 작품 더 할 수 있을까... 제가 처음에 배우 한다고 했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요. 너 언제 TV에 나오냐고. 저에게 항상 꼬리표처럼 달린 질문이었는데, 저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어도 잘 오지 않는 기회였으니까요.”
벌구-필만-도훈 이 3인방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이번에 파인에서 이 셋이 만들어지면서 정말 좋은 친구가 또 생겼어요. 벌구인 윤호뿐만 아니라 필만이 역을 맡은 정현이가 우연히 동갑내기인 데다 같은 고향 출신이더라고요. 필만이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난 친구인데, 셋이 너무 잘 어울리고 장난도 많이 치니까, 주변에서는 오래된 친구들 같다고들 해요. 실제로도 촬영하면서 점점 더 끈끈해졌고, 현장에서 정말 재밌게 지냈던 것 같아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아무래도 저는 그냥 ‘저 친구 참 잘한다.’ 이 말 한마디 들을 수 있는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멋있고 화려한 역할은 저랑 잘 안 어울릴 것 같고, 그냥 ‘저 친구 재밌네’, ‘참 자연스럽네’ 이런 느낌을 주는 인상적인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작품을 하면서 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계속 존경하는 강윤성 감독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날 대본을 같이 쓰고 마지막으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그동안 왜 안 했어?’라고. 제가 ‘저는 열심히 도전했는데 참 기회가 잘 안 오더라고요’라고 답했죠.
그때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사람이 다 옷을 입을 때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범죄도시 때 진선규, 허성태, 박지환 이 친구들도 마흔 넘어서 캐스팅했는데 지금 봐라, 열심히 잘하고 있지 않냐. 너도 이제 그 옷을 입을 때가 된 거야.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