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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미 관세 협상, 정말 '외교적 승리'인가... 세 가지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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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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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80년경 에피로스 왕국의 피로스(Pyrrhus) 왕이 로마와 전쟁을 벌여 연이어 승리했다. 하지만 그 승리의 과정에서 정예 병력 대부분을 잃었다. 이에 피로스 왕은 "이런 승리를 한 번 더 거둔다면, 우리는 완전히 망할 것이다"며 탄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일명 '피로스의 승리'란 표현의 유래다. 형식적으로는 이겼지만 대가가 너무 큰 승리.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를 뜻할 때 쓰는 말이다.

지난 7월 30일, 한미 간 관세 협상 타결 내용을 접하면서 떠오른 일화다.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실용외교의 성과"라고 자평했다. 25% 관세를 15%로 낮춰 일본, 유럽연합(EU)과 동일한 조건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분명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협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난다. 우선 18년간 유지해 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인 '상호 무관세'가 사실상 폐기됐다. 우리는 15% 관세를 내지만 미국은 여전히 무관세다. 3500억 달러의 투자와 1000억 달러의 LNG 구매, 합쳐서 4500억 달러(약 626조 원) 투자를 약속했다. 이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약 409조 원)보다도 큰 돈이다. 이 자금의 운용 주체 및 방법, 이익 배분에 대해 아직 불명확한 점이 많지만, 이 투자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프로젝트에 사용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과연 이것이 외교적 승리인가? 정말로 일본이나 EU보다 훨씬 잘한 협상일까? 마주하기 불편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오류가 있었다면 시정해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류가 발생했을 때 시정하는 능력에 있지 않던가.


쟁점 1: 한미 FTA의 일방적 폐기, 저항 없이 받아들인 정부

한미 FTA는 2012년 발효 이후 양국 무역의 기본 틀이었다. 핵심은 상호 무관세였다. 덕분에 우리의 대미 수출은 585억 달러에서 1157억 달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이번 협상으로 이 구조가 무너졌다. 우리는 15% 관세를 내지만 미국은 여전히 무관세다. '상호 무관세'가 '일방 관세'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제대로 된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양국 의회가 비준한 FTA는 쉽게 바꿀 수 없다. 트럼프 정부는 일방적 관세 부과로 FTA를 무력화했고, 우리는 이를 수용한 셈이다. 법적으로는 FTA가 유지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에게만 불리하게 개정된 셈이다.

정부는 "25%를 15%로 낮춘 성과"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일본과 EU는 애초에 미국과 FTA가 없었다. FTA 체결국인 우리가 오히려 그들과 같은 15% 관세를 내게 된 것이다. 18년간 쌓아온 무역 구조가 몇 주 만에 무너졌다. 과연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곱씹어 봐야 한다.


쟁점 2: 대미 투자 약속, 국민 부담 커졌다

이번 협상의 진짜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숫자가 아니라 상대적 부담에 있다. 우리가 약속한 3500억 달러는 일본(5500억 달러)이나 EU(6000억 달러)보다 작아 보인다. 하지만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의 2024년 국내총생산(GDP)은 1조 8700억 달러로 일본(4조 달러)의 절반이 안되고, EU(19.4조 달러)의 10분 1에 불과하다. GDP 대비로 환산하면, 한국 18.7%, 일본 13.7%, EU는 겨우 3.1%다. 여기에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1000억 달러까지 더하면 총 4500억 달러, GDP의 무려 24%에 달한다.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조선 펀드를 제외하면 일본의 35%"라고 변명했지만, 정부가 약속한 총액은 변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돈을 누가 어떻게 쓰느냐다.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는 반도체·원전·이차전지·바이오 등에 투자된다. 첨단기술 협력이라는 명분은 좋지만, 트럼프는 이 자금을 "본인이 결정한다"고 못 박았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한술 더 떠 "수익의 90%는 미국민에게 간다"고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황급히 "재투자 개념"이라고 해명했지만, 김용범 정책실장이 "정상적 문명국가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한 것은 오히려 합의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정부는 "수출입은행 대출·보증이 대부분"이라며 직접 투자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대출이든 보증이든 결국 국가 신용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3500억 달러, GDP의 18.7%가 미국에 묶이면 그만큼 국내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본이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2배 이상 큰데도 현금 출자를 1~2%로 제한하려는 이유를 우리 정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자금의 실제 흐름이다. 3500억 달러는 삼성, 현대차, SK,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아 미국에 투자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들이 미국에 진출하면 우리 정부의 손을 떠난다는 점이다. 수익은 현지에 재투자되고, 국내로 돌아오는 경로는 불분명하다.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하면서도 그 과실을 국민경제로 환류시킬 장치는 없다. 대기업은 공짜 자금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국민은 626조 원의 부담만 떠안는 구조다. 따라서 향후 기술 이전, 부품 수출, 일자리 창출 등 명확한 환류 조건을 걸어야 한다.


쟁점 3: 방위비 청구서가 기다린다

일본과 EU는 관세 협상에서 방위비 카드를 미리 털었다. 일본은 수십억 달러의 무기 구매를, EU는 GDP 5% 국방비 증액과 7500억 달러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반면 우리는 관세와 투자만 합의했다. 시간에 쫓긴 협상의 결과다.

현재 우리의 방위비 분담금은 연 11억 달러(약 1조 5414억 원)다. 그런데 트럼프는 한국이 연 100억 달러(약 14조 120억 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의 약 9배다. 일본은 무기 구매로 우회했고, EU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차원의 약속으로 개별 부담을 피했다. 우리만 직접적인 현금 증액 압박에 노출됐다.

2주 내로 예정된 정상회담이 고비다. 트럼프의 협상 패턴을 보면 항상 막판에 추가 조건을 요구한다. 이미 4500억 달러를 약속했다고 해도 경제와 안보는 별개라며 추가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생중계되는 백악관 오벌 오피스 기자회견장에서 요구할 가능성까지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번 협상이 압박하면 한국은 양보한다는 위험한 선례를 만들었다. 특히 투자 펀드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구조인 만큼, 미국이 원하는 속도와 방향으로 집행되지 않으면 문제 삼을 여지가 많다. 펀드 구성과 이행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투자 지연을 빌미로 방위비 인상이나 무기 구매 같은 추가 요구가 나올 수 있다. 최종 협정 문안에 서명하기 전에 꼼꼼하게 챙겨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번 협상이 남긴 교훈

이번 협상의 결과는 명확하다. 첫째, 18년간 유지한 FTA 상호 무관세가 일방 관세로 바뀌었다. 둘째, 대미 투자금으로 GDP의 18.7%라는 압도적 부담을 떠안았다. 일본(13.7%), EU(3.1%) 보다 훨씬 더 큰 규모다. 셋째, 시간에 쫓겨 방위비 카드를 빼놓은 탓에 추가 압박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시간에 쫓긴 협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사례다. 단기적으로는 투자 이행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고, 방위비 추가 요구에 대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 전략은 외국 첨단기업들을 유치해 결국 미국기업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하더라도 완전히 미국기업이 되어 국부가 유출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국내 경제와의 연계를 유지하는 투자 전략이 필수다.

정부는 최악을 피한 성과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단기 위기를 모면하려다 장기 부담을 떠안은 승리 같지 않은 승리다. 626조 원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낸 만큼,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닥칠 경제적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얻어야 할 최소한의 교훈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83161?s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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